Gourmet :: China

BURNING  & TEMPTING SICHUAN FOOD

사천요리의 얼얼한 중독  만물이 침잠하는 겨울이 다가온다. 유독 긴 환절기 때문일까. 체력은 물론이고 정신까지 자꾸 어디론가 외출을 나서는 것 같다. 나를 위한 특별한 보양식을 찾다가 이룬 중국 사천요리의 재발견. 사천요리는 기운을 북돋는 식재료들에 일명 ‘마라’라 일컫는 얼얼한 매력의 산초를 아낌없이 더해 식탁 앞에 앉은 모든 몸을 화끈하게 데우는 요리이다. 이를 제대로 맛보기 위해 경리단길의 캐주얼한 사천요리점 ‘단단’을 찾았다. 흔히 접하기 힘든 사천의 서민음식들에 가벼운 술 한 잔까지 곁들일 수 있는 이 공간. 참 금쪽같다.
글 이소윤 기자 사진 진하정 기사 취재협조 단단 070-7757-5880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 나라

세상 만물을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구분한다는 중국 사람들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일화가 있다. 독일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빌헬름 2세가 당시 중국의 실권자였던 위안스카이에게 애완용 개 한 마리를 선물했다. 얼마 후 독일황제가 위안스카이로부터 받은 답장은 “맛있게 잘 먹었소이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듣고는 잠시 배꼽을 잡았다. 중국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이 무언지 아주 단순하게 드러나 있지 않은가. 한국 사람들이 당연히 ‘의식주’라 부르는 인간 생활의 3대 요소 역시 중국 사람들에게는 ‘식의주’로 통한다. 우리에겐 예의나 상황에 맞춰 옷매무새를 갖추는 일을 예부터 중요하게 여겨 왔지만, 중국인들은 언제나 음식을 생존을 위한 최고의 근본 요소로 꼽았다.

하지만 사실 우리들이 중국 음식에 관해서 흔히 접하는 건 한국식 중식 요리나, 중국 여행 중 음식 때문에 겪었다는 지인들의 고생담 정도가 아닐까. 물론 기자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처음 만난 북경에서는 식사 때마다 배탈이 났고, 태어나 처음 접한 비둘기 요리는 그 맛도 보지 않고 거부했다. 이런 단편적인 경험을 토대로 중국 음식에 대한 약간의 편견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무 한 그루만으로 숲 전체를 평가해선 안 되는 법. 마치 코끼리 앞에 가까이 서 있으면 두터운 다리만이 눈에 들어오듯, 중국의 음식은 대륙 위에 퍼진 그 종류와 맛들이 워낙 방대하여 외국인으로서는 전경을 눈에 담기가 매우 어렵다. 일단 지구 위 땅의 15분의 1이라는 국토 면적과 13억 명도 훌쩍 넘는 인구수는 가히 세계적이다. 없는 것 없다는 이 땅에서는 땅속 자원만큼이나 풍부한 산해진미 식재료들이 펑펑 쏟아지고 있다. 허나 지역별 지형과
기후가 워낙 다르니 그 입맛도 대륙의 동서남북이 다르고, 전국 32개의 성이 다르며, 그 속으로 몇 천개는 나뉘는 마을들이 전부 달라서 이 나라의 음식이란 결코 하나로 정의 내릴 수 없다.

매운 것을 두려워 말라

이토록 뚜렷한 중국의 지역 음식들은 크게 4개의 파로 구분된다. 물론 8대 요리로 나누기도 하고, 그보다도 더 세세히 구분도 가능하지만 주로 북경요리와 상해요리, 광동요리, 사천요리의 네 가지 구분이 일반적이다. 흔히들 북경요리는 짜고, 상해요리는 달콤새콤하며, 광동요리는 담백하고, 사천요리는 맵다고 한다. 특히 중국 서부의 사천지역은 해발 2,000미터 산들에 둘러싸인 분지 속의 습한 기후 때문에 시고 매운 맛이 지배적인 요리로 유명하다. 그 매운 맛이란 그저 혀를 따갑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얼얼함과 동시에 땀을 낼 만큼 속을 데우는 깊이가 있어서 특히 한국의 입맛에 잘 맞는다.

알수록 빠져드는 사천요리의 묘미를 깨우치게 한 곳이 바로 ‘단단..’이다. 이곳은 사천의 대표적인 면 요리인 단단면의 이름을 붙인 사천요리 주점으로 최근 경리단길 좀 걸어 봤다는 이들이 즐겨 모이는 ‘회나무로 13가길’에 위치하고 있다. 중국에서 직접 구매한 그림들로 장식된 실내만큼, 진정성과 세련미 모두를 갖춘 맛과 시간을 선물해주니 이만큼 귀한 술집이 어디 있을까. 슬슬 찾아드는 추위로 웅크리고 있을 내 몸의 양기를 다시 살려 줘야 할 요즘. 그러니 일단 사천의 매운 맛을 두려워 말라. 한 번 깨우치면 나의 혀에도 몸에도 모두 이로운 일일지니. 이제 기자는 산초와 술기운에 얼얼하고 싶은 밤이면 단단의 빨간 간판을 이정표 삼아 걸음을 옮긴다.

주소 서울 용산구 녹사평대로 46길 7
영업시간 13:00~24:00 (매주 월요일 휴무)
가격 훠궈 탕 大 7천 원, 훠궈 음식 세트 3천~8천 원, 요리 1만 원대, 칭다오 6천 원

붉게 끓어오르는 그대, 훠궈火.

담백한 기존의 샤브샤브는 잠시 잊어달라. 중국식 샤브샤브인 ‘훠궈’는 붉은 ‘마라탕’과 하얀 ‘백탕’ 중 하나를 택하거나 모두 시켜 끓이며 각종
식재료들을 빠뜨려 먹는 음식이다. 이 음식의 본 고장은 사천의 충칭重慶. 그곳에서는 한 집 건너 하나가 훠궈집이다. 또 굳이 훠궈집에 들어가
지 않더라도 마치 우리네 어묵 꼬치처럼 길거리에서 마라탕에 다양한 꼬치들을 담가 놓고 파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이 역시 사천지역의 대표 길거리 음식인 ‘마라탕麻辣.’이다.

이름부터가 ‘뜨거운 가마’라는 뜻을 지닌 훠궈는 이처럼 격식 없는 편안한 음식이다. 허나 이 음식에 붙은 ‘징기스칸의 요리’라는 별명은 그리 평
탄하지만은 않았던 훠궈의 유래를 담고 있다. 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정복했던 징기스칸의 시대, 우두머리의 야망 아래에서 병사들은 느긋하게
끼니를 챙길 기회도 자주 갖지 못했다. 그래서 가끔 짬이 날 때면 자신이 쓰고 있던 철모에 물을 담고 끓인 후, 육포나 구하기 쉬운 채소 등의 음
식을 넣고 끓여 먹기 시작한 것이다.

병사들이 짧은 시간 안에 체력을 키우기 위해 고안했던 이 보양식의 효험은 날이 갈수록 더 좋아지고 있다. 단단의 훠궈에 나오는 마라탕은 10
여 가지의 한약재와 산초, 고추 등으로 심해와도 같은 깊은 맛을 우려낸 시간의 작품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국물을 대량으로 끓여 내는데, 오직
위 재료만으로 이토록 중후하고 건강한 향의 탕이 탄생된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런 덕분에 마라탕의 첫 맛은 무조건 향이다. 탕이 끓자마자 풍기는 한약재의 향취에 취해, 익힌 재료만 먹는 현지 스타일을 망각한 채 그 국물부터 열심히 떠먹었다. 한약재가 내는 진중한 맛 뒤로 고추와 산초의 따끔하면서도 얼얼한 느낌이 입안을 감쌌다. 순결했던 각종 채소와 두부, 양고기, 버섯 등에 사악한 마라탕의 얼얼함이 스며든 맛은 희열에 가깝다. 결국 다섯 접시 이상의 재료들을 모두 빠뜨리고, 밥 한 공기까지 곁들이고 나서야 중독적인 식탐을 멈출 수 있었다.

가지가 녹아요, 단단 치에즈茄子

사천 토박이들 중에는 평생 바다 냄새를 맡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그래서 생선이 들어가지 않지만 생선의 맛이 나도록 만든 것이 ‘위샹’이라는 양념이다. 어느 재료로 요리를 해도 새콤달콤하다. 그 소스에 통통한 가지와 갖은 야채들을 살짝 튀겨 볶아내면 가장 간단하면서도 사천스러운 한 접시가 완성된다. 가지가 이토록 부드러울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식감의 축제, 꿔바로우.包肉

물론 이는 북경식 탕수육이다. 하지만 뜨거운 마라탕과 시뻘건 사천요리들 사이에서 맥주를 부르는 기름칠을 곁들이고 싶다면 주저 없이 선택하자. 단단의 꿔바로우는 내 짧은 중식 경험을 모두 뒤집는 맛이었다. 튀김옷을 빼곡히 메운 기포들이 이빨에 닿자마자 일제히 터지
는 듯 바삭하다. 시큼하면서도 달콤한 맛 속에는 부드러운 돼지고기와 허연 찹쌀 덩어리가 나를 반긴다. 바삭하고 쫄깃하며 부드러운 모든 식감을 동시에 즐기다니, 축제나 다름없다.

고량주가 판을 치는 중국에서 맥주는 음료의 개념이다. 그 깊은 고소함이 독보적인 칭다오 생맥주는 단단에서 놓쳐선 안 될 감초 같은 존재.
이와 유독 어울리던 세 접시의 맛깔난 요리들은 이리 저리 먹어 봐도 그저 황홀경이다.

두 팔 걷어붙이는 화끈함. 라즈지辣子.

라즈지는 닭보다도 고추와 산초가 더 많이 보이는 화끈한 닭볶음요리다. 훠궈의 고향인 충칭에는 라즈지 전문점들이 많은데 그중엔 자신이 먹을 닭을 직접 고르고, 뜨거운 맥주를 꼭 곁들이는 곳들도 있다. 찬물로는 도저히 잡을 수 없는 매운 맛 때문이다. 단단의 라즈지 역시 큼직한 고추 속에 숨은 보물을 찾듯 닭고기를 찾아 먹어야 한다. 입안에 닭고기를 넣는 순간 자극적인 짠 맛과 매운 맛이 혀로 흡수된다. 먹다 보면 언제 양이 이렇게 줄었는지 의아할 만큼 입맛을 당기는 요리. 나중엔 고추마저 집어먹고 싶었으니 이 얼마나 중독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