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Essay :: Italy
Italy Rome

로마에서 보낸 오직 나만을 위한 시간

20일 동안 7개국을 여행하려다 보니 이탈리아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오직 3일이었다. 어지간히 욕심을 부린 탓에 발은 잰걸음으로 빠르게 움직였고, 손은 연신 셔터를 눌러 댔으며, 입은 끝없이 들어오는 젤라또를 받아들이느라 쉴 틈이 없었다.
글과 사진 임소정 에디팅 이소윤 기자  

임소정 l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6동
저는 재미난 것 투성인 세상을 조금씩 매일 여행하고 있습니다. 허허 웃고 싶은 날이면 친구 집으로 여행을 가고, 활력이 필요할 땐 시끌벅적한 초등학교로 여행을 가기도 하고, 활활 날고 싶을 땐 꿈속을 여행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여행은 자연스레 스며든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노을 앞에서 사랑을 확인하는 연인들.

늠름한 개선문.

서바이벌 이탈리아 야행

서바이벌게임이라 칭하고 싶은 이번 여행은 이탈리아행 야간열차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처음 타는 야간열차이기도 하고, 특히 이탈리아행 야간열차는 조심해야 한다는 글을 많이 읽은 터라 뜬눈으로 밤을 샜다. 물론 지금 돌이켜 보면 굳이 그렇게까지 긴장을 할 필요는 없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아주 평안히 코를 골며 꿈나라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1단계는 클리어! 이젠 한 단계 높은 곳으로 이동할 차례였다. 집시가 많은 떼르미니역에서 일명 ‘집시로부터 나의 모든 것을 사수하라!’. 그들이 다가와 표를 끊어준다거나 가방을 들어주겠다고 하면 단호하게 “NO”를 외치거나 무시하면 된다. 아무나에게 도움을 청하는 순간 빈털터리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하다면 역 직원에게 부탁하면 된다. 어디를 가더라도 자신의 몸가짐이나 행동을 바르게 하면 위험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여행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다.

옛 로마의 흔적.
골목을 누비는 재미가 쏠쏠한 로마. 집집마다 주인의 취향이 제각각이다.
한 프레임 안에 담기 어려웠던 거대한 콜로세움.

아무것도 몰라도, 그래도 여행

무작정 자유를 외치며 떠나온 여행이라 여행지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 그래도 콜로세움은 책에서 자주 보던 곳이라 반가운 마음으로 찾아갔다. 멀리서 보아도 웅장한 자태를 띄는 건물은 누가 뭐라 해도 콜로세움이었다. 하지만 워낙 거대해, 이리 찍고 저리 찍어 봐도 콜로세움을 한 프레임 안에 담는 것은 무리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단렌즈만 챙겨 간 터라 전체는커녕 애꿎은 모서리만 찍었다.

콜로세움 입장권을 구매하여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햇빛이 둥근 경기장을 강하게 비추고 있었는데 마치 그곳에서 처참하게 피 흘리던 이들을 기리기 위해 밝게 비추는 빛과 같았다. 콜로세움에서는 검투사와 맹수가 싸우거나 검투사끼리 싸워 목숨을 잃은 사람도 많다고 한다. 아래의 경기장을 보고 있자니 눈앞에 그 광경이 펼쳐지는 것 같아 눈을 질끈 감았다. 또 경기장 내부의 벽엔 여전히 핏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다고 하여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러나 곧 어두움은 구름이 걷히듯 지나가고 밝아오는 아침을 새롭게 맞이하듯 따뜻한 햇볕이 계속 내리쬐었다.

콜로세움 앞에는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이 늠름하게 서 있다. 콘스탄티누스 1세가 ‘밀비우스 전투’에서 거둔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이 개선문은 파리 개선문의 시초라고도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콜로세움 근처에는 많은 유적지들이 모여 있다. 길가에는 로마시대 황제의 궁전이나 과거 귀족들의 호화로운 저택들이 남아 있었다. 한때는 위엄을 보였던 건물들이 이젠 거의 폐허가 되었지만, 남아 있는 흔적만으로도 그 시대의 영광을 느껴볼 수 있다.

바티칸시국에서 직접 느낀 천지창조의 위엄

로마에서의 둘째 날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인 ‘바티칸시국’으로 향했다.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대로 갔다간 다리만 고생할 것 같아 바티칸투어를 신청하였다. 들어가기 전에 가이드로부터 바티칸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와 역사에 대해 듣고 그 안의 유명한 작품들에 대한 소개를 들었다. 발을 내딛는 곳곳이 모두 예술품이었고 작품이었다. 책에서 한 번은 봤을 법한 유명한 작품들을 직접 눈으로 볼 때마다 내가 정말 여행을 오긴 왔구나 생각이 들었다. 바티칸 시국 안의 바티칸 궁전, 시스티나 성당, 성베드로 대성당 등 모든 건물 전체가 하나의 예술품이었다. 그곳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단연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린 프레스코화인 ‘최후의 심판’ 과 ‘천지창조’라고 외칠 것이다.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모르더라도 미켈란젤로의 신적인 예술 솜씨에 온몸이 짜릿할 정도였다. 프랑스의 소설가 로맹 롤랑은 “천재를 믿지 않는 사람, 혹은 천재란 어떤 것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미켈란젤로를 보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미켈란젤로 그는 천재를 넘어서 인간의 한계까지 넘어선 예술가이다. 작품 아래에서 가만히 위를 올려다보니 미켈란젤로의 혼이 그대로 쏟아지는 듯했고, 몇백 년이 지났어도 그의 작품에선 오로라가 뿜어져 나왔다. 아마 그곳에 있던 모든 이들이 미켈란젤로의 작품 아래에서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돌아와서 보니 그곳에서의 사진 한 장이 없었다. 당시엔 설명을 들으며 감상하기 바빠 카메라에 담아야 한다는 사명감을 잊은 것이다. 하지만 덕분에 깊은 감동을 느꼈다 생각한다. 누구든 그곳에선 온전히 작품만을 즐기길 바란다.

사랑을 속삭이는 곳, 천사의 성

물 흐르는 대로, 사람 가는 대로 가다보니 ‘천사의 성’ 앞이었다. 오페라 ‘토스카’에서 사랑하는 연인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노래의 무대가 바로 ‘천사의 성’이다. 그보다 더 나의 눈길을 끈 곳은 천사의 성 앞의 로맨틱한 다리였다. 세심하게 조각된 동상들 뒤로 붉은 해가 지니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애절한 사랑을 속삭이던 곳이었던 만큼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이 많았다. 저마다 사랑을 속삭이는 방식이 달랐지만 연인을 보는 눈빛은 하나같이 따뜻했다. 하늘이 노을의 오묘한 파스텔 톤으로 바뀌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커플들은 키스를 했다. 평소라면 부러움에 입이 삐죽 튀어나왔겠지만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괜스레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여행을 하며 만난 가장 따뜻한 순간이었다. 본래는 당장 남자친구의 손을 잡고 가야할 곳이 프라하의 카를교였다면, 이 이후로는 자연스레 천사의 성 다리로 바뀌었다. 그곳에서 관광을 하거나 특별히 무엇을 하진 않았지만 다리에 걸터앉아 가만히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허전했던 내 안의 무언가가 꽉 채워진 느낌이었다. 그곳에 앉아 로마에서의 이틀을 그렇게 따뜻하게 마무리했다.



바티칸성 뒤로 아름다운 파스텔톤 노을이 진다.



바티칸 박물관에서 바라본 로마 시내의 전경.
바티칸시국의 산피에트로 광장에 오벨리스크가 우뚝 솟아 있다.
천사의 다리를 지나는 사람들.
천사의 성 앞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