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Essay :: Finland

Finland

스물다섯, 다시 한번 산타가 필요한 나이 
스물다섯, 복학 후 다시 만난 사회는 낯설었다. 2015년, 대한민국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부정적 어감의 단어들. 자기 자신을 수저로 나누고 터전을 지옥으로 묘사하는 또래 사이에서 전역자의 호기는 빠르게 식었다. 또한 군 복무 당시 스스로에게 물었던 끊임없는 질문 “나 뭐 먹고 살지”에 대한 답을 구하려다 “진정한 내 꿈은, 내 소원은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지금 내게 가장 간절한 것’은 매 순간 바뀌었고 터전 밖에서 답을 고민하고 싶었다. 그 후 떠오른 질문, “20년 전 당신은 산타에게 어떤 소원을 빌었습니까?”. 아마 20년 전의 크리스마스에 빈 소원은 ‘언론사 입사’나 ‘전액장학금’ 따위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하여 내가 겨우 다섯 살이었을 때 ‘인류의 평화’나 ‘내면의 중심잡기’와 같은 거창한 소원을 가졌던 것도 아니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아마도 새로 출시된 로봇이나 디즈니 영화 비디오를 받는 것이 소원이었겠지. 그럼에도 조금은 더 순수했다. 적어도 ‘힘든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대책’은 아니었을 테니까. 하지만 왜인지 지금의 소원이 조금 더 간절하다. 나의 노력과 정량적 성과를 넘어서 초인적인 존재의 도움이 절실하다. 이를테면 산타와 같은.
글과 사진 박재영 에디팅 이소윤 기자   

박재영 l 경기 안양시 신촌동
군 생활 동안 뚜르드몽드를 품에 안고 여행의 꿈을 키웠다. 15년 5월 전역한 이후 한 학기 동안 다양한 채널을 통해 중국, 일본, 러시아, 핀란드를 여행했으며 곧 인도에서의 봉사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학기 중에 떠나는 여행이 진짜 재미있는 여행이라는 신조를 가지고 있다.

산타마을의 밤.




오전의 헬싱키.
북유럽 최대 규모의 아카데미 서점.
헬싱키 식당아주머니.
암석교회.
헬싱키대성당.

산타를 직접 찾아서 또래의 꿈을 전달하고 앞으로의 길을 모색하겠다는 나의 이야기는 많은 분들의 공감을 받았다. 응원에 고무된 나는 ‘한국 청춘들의 꿈을 산타에게 직접 전달하고, 산타마을의 풍광을 담은 엽서에 나의 그림과 산타의 영험한 기운(?)을 담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발송한다’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운이 좋게도 아웃도어 의류 브랜드인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의 후원을 받아 같은 꿈을 가진 친구 세 명과 핀란드로 향할 수 있었다.

처음, 헬싱키

입국 심사에서 문제가 있었다. 까다로운 심사관과 그의 고압적 태도에 기분이 상한 나머지 나 역시 빈정댔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입국을 허가받기는 하였으나 다른 친구들은 별 질문 없이 들여보내는데 나에겐 왜 엄마 신용카드 한도까지 물어보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공항 밖 헬싱키Helsinki의 첫 인상은 구질구질했다. 오후 세 시임에도 어두운 하늘과 시원찮은 빗줄기. 과연 일주일간의 여정을 완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칼바람을 헤치며 숙소를 찾았다. 정돈된 느낌의 시내는 자그마해서 길 찾기가 수월하다. 유럽 양식의 건물들이 세워져 있지만 구역 기획은 현대 도시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무엇보다 도시가

깨끗했다. 그래서인지 조금은 기분이 풀린 것 같다. 저녁은 핀란드 가정식을 즐겼는데, 친절한 주인아주머니는 우리의 여정에 대해서도 많은 조언을 주었다. 따뜻한 연어 수프와 아주머니의 응원 이후에도 잔돈이 없는 우리를 위해 무료로 비닐 봉투를 내어준 점원 아가씨, 스푼을 찾는 한국인들에게 판매용 스푼을 뜯어 선물해주며 좋은 밤 보내라던 편의점 청년의 친절을 경험했다. ‘매끄럽지 못한 시작이 여행의 실패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발견한 핀란드에서의 첫날이 지났다.다음날에는 헬싱키의 건축물들을 구경했다. 해가 짧은 핀란드는 자연채광과 인공조명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건축물이 많았다. 도시 한 가운데 위치한 ‘캄피 고요의 교회’, 암석으로 만들어진 ‘템펠리아우키오 교회’에서
빛이 소중한 그들이, 어둠에 적응한 방식을 눈에 담았고 ‘헬싱키 대성당’에서 무사한 여행을 빌었다.

오로라의 땅, 사리셀카

오로라와 개썰매 등 겨울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는 사리셀카Saariselka로 향하기 위해서는 헬싱키에서 로바니에미까지 야간열차로 12시간을 달린 이후에 4시간가량 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사리셀카가 가까워질수록 창밖은 더욱 하얗게 변했다. 시야에는 끝없이 펼쳐진 눈의 땅만이 담긴다. 흰 눈은 알록달록한 하늘을 그대로 반사하며 숨막히는 풍광을 자아낸다. 입시미술을 해본 내가 설명하자면, 화이트 배경에 쉘핑크에서 네이플스 옐로우로, 또 호라이즌 블루에서 다시 화이트로 이어지는 그라데이션이랄까. 과연 자연은 가장 완벽한 팔레트였다. 현실이 아닌 것 같은 풍경에 ‘천국으로 가는 길이 이렇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착하게 살기로 결심했다. 여행에는 교화의 힘이 있나 보다.

사리셀카의 주민들은 마켓에 갈 때에도 스키를 탄다. 워낙 눈밖에 없고 차를 타기엔 마을이 작기 때문이다. 이를 따라 우리 역시 스키를 빌렸다가 5분 만에 벌러덩 넘어진 이후로는 얌전히 걷기로 했다. 대신 ‘허스키 사파리’ 즉, 개썰매를 타며 스릴을 만끽하였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개들이 금방 지치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썰매를 밀며 달리는 것은 개가 아닌 우리였다는 거다. 개들과 하나가 되어 신나게 땀을 빼고 나니 핀란드의 맥주가 더욱 달콤하게 다가왔다. 저녁은 순록 요리를 주문했는데, 소고기 질감에 순대의 돼지 간향이 나는 맛이다. 매시드 포테이토와 링곤베리 잼의 조합은 나쁘지 않았지만 객관적으로 맛있는 요리는 아니었다.

야간에는 오로라를 보기 위해 투어를 신청했다. 이틀에 걸쳐 첫날에는 미니버스를, 둘째 날에는 스노모빌을 이용해 관측에 나서기로 하였는데 변화무쌍한 밤하늘은 맑은 별들을 어느새 먹구름으로 뒤덮었고 아쉽게도 오로라를 만나지 못했다. 워낙 날씨 변화의 폭이 커서 현지인들도 오로라 발견의 확률을 예상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야밤의 캠프파이어에서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을 만나는 재미에 아쉬움이 줄었다. 이탈리아인 가족과 웃으며 쿠키를 나누던 밤은 참 정겨웠다.

로바니에미에서 산타에게 보내는 편지

우리 프로젝트의 핵심, ‘너에게 산타가’를 진행하기 위해서 산타의 집무실이 위치한 로바니에미로 이동했다. 산타마을에는 이미 세계 각국으로 편지를 보내기 위한 손님들이 가득했고, 산타의 업무를 보조한다는 ‘엘프’들은 워낙 과중한 업무 탓인지 신경이 날카로웠다. (산타가 그들에게 부탁한 업무는 카운터 담당이었다.) 한국에서 공모한 소원을 그림으로 그리고 친구의 캘리그라피로 정성들여 옮겨 적었다. 소원들은 제각각 다양한 사연을 담고 있었고 그 중에는 안타까운 이야기도, 기분이 밝아지는 이야기도 있었다. 소원의 내용이나 사연 배경이 어떻든 간에 받아 옮기는 과정에서 그분들의 소원이 현실화되길 간절히 빌었다. 이후 산타마을의 우표를 붙이고 크리스마스 시즌에 발송된다는 거대한 우체통에
옮겨 담았다. 누군가의 꿈을 응원한다는 것, 생각보다 기분 좋은 일이었다.

대부분 어른이 되며 산타를 잊는다. 아마 ‘콜라로 가득할 것 같던 산타의 다정한 뱃살은 알고 보니 아버지의 술배였더라’식의 깨달음을 얻었거나, 소원을 좌우하는 것은 결국 사회임을 자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아니 사실 조금 더 자주 변화무쌍한 현실에도 누군가의 도움이 간절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가끔은, 20년 전 크리스마스처럼 산타에게 마음을 잠시 의지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당신의 양말 가득히 행복이 찾아오기를 바라며, Merry Christmas And A Happy New Year!

사리셀카의 개썰매.
스키 타는 주민들.
길가 정류장.
포근한 숙소.
산타마을 내부.
편지 캘리그라피.
순록 요리.

독자 여러분의 여행기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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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내실 곳 이소윤 기자(soyun.lee@tourdemon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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