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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azing  Penguin Habitat... Falklands

경이로운 펭귄 서식지, 포클랜드의 손더스 아일랜드  

여행자들에게 다소 낯선 곳인 포클랜드는 남미대륙 끄트머리에 자리한 면적 1만2천 평방킬로미터의 작은 섬이다. 이곳은 무엇보다 1982년 이곳에서 벌어진 아르헨티나와 영국간의 전쟁으로 유명하다. 현재 영국령인 포클랜드에는 여행자들의 눈을 휘둥그래할 만큼 거대한 펭귄서식지가 군데군데 자리해 있다. 포클랜드 북서쪽에 자리한 손더스 섬은 그 중에서도 수 천 마리의 펭귄이 한곳에 모여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글과 사진 김후영(여행작가) 취재협조 란항공 www.lan.com

손더스 섬 펭귄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젠투펭귄.

이른 아침 일어나 서둘러 아침식사를 했다. 변함없이 케이 B&B의 여주인인 78세 고령의 할머니 케이는 씨리얼과 두 개의 계란후라이, 토스트와 주스, 커피를 준비해 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텐트를 접고 담요를 챙겼지만 택시 기사는 정확히 7시45분에 필자를 데리러 왔기 때문에 5-10분 가량 짐을 제대로 챙길 시간이 모자랐다. 대충 챙겨 넣고 두 개의 배낭을 밴에 실었다. 스탠리Stanley 공항은 차로 약 10분 거리였다. 하지만 택시비는 5파운드로 꽤 비싼 편이었다. 스탠리 공항은 국제선 여객기가 이용하는 군용 공항인 마운트 플레즌트Mt Pleasant 공항과는 달리 민항기를 위한 공항이었고 규모도 휠씬 작았다. 공항청사 규모가 고작 편의점 정도의 크기였다고나 할까? 이 공항을 이용하는 비행기는 모두 경비행기이다. 내가 탄 비행기는 조종사까지 포함해 10인승 프로펠러 경비행기였는데, 필자와 조종사외에도 두 명의 노부부가 탑승했다.

손더스 섬까지 네 군데 경유
사실 우습게도 오늘 비행시간이 어제 결정된 것처럼 이 비행기가 스탠리 공항을 이륙해 손더스 섬까지는 가는 데에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어느 곳을 경유하는지 어떠한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몰랐지만 나중에는 그 기막힌 이유를 알 수 있었다. FIGAS(Falklands Islands Government Air Service)라는 항공사에서 운영하는 이 항공서비스는 포클랜드의 유일한 민항 항공사로 포클랜드 내 어느 곳이나 날아가는 항공사였다. 마치 콜택시처럼 하루나 이틀 전에 어디에서 어디까지 가고 싶다 하면 승객을 목적지까지 데려다 준다. 따라서 일반적인 인기 노선은 있지만 정기적인 노선이나 운항 스케줄은 없다. 성수기인 여름철에는 포클랜드(전체 인구 약 3천명)의 수도인 스탠리(인구 약2천2백명)에서 손더스 섬이나 씨라이온 섬, 카커스 섬, 페블 섬 등을 오가는 승객들이 있기에 거의 매일 운항하기도 한다. 

필자가 오늘 탄 비행기의 경우 먼저 다윈Darwin이란 곳에 가서 승객 몇 명을 태웠다. 그리고 씨라이온Sea Lion 섬에 가서 스탠리 공항에서 탑승했던 노부부를 내려주었다. 그러고는 포트 하버Port Harbour에 착륙해 한 명의 승객을 더 태웠다. 다음에 페블 섬에 들러 다윈과 포트 하버에서 탄 손님들을 내려주었다. 다윈이든 포트하버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마을이었는데, 이곳의 공항 역시 공항이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에어필드에 불과했다. 다시 말해 넓은 들판에 비행기가 이 착륙하였던 것이다. 마침내 나는 다섯 번째 착륙 만에 손더스 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직 비행기안에는 스탠리로 돌아가는 한 명의 여성승객이 남아있었다. 이렇듯 FIGAS항공사의 비행 편은 마치 합승택시처럼 이곳 저곳에서 손님들을 태우고 내려주곤 했다. 하지만 합승택시와 달리 항공요금은 매우 비쌌는데 무려 스탠리에서 손더스 섬까지 왕복 요금으로 236파운드를 지불했다. 오래된 론리플래닛 가이드북 정보가 정확하다면 15년전 요금인 130파운드보다 거의 두배 가까이 요금이 오른 셈이었다.

1 상공에서 내려다본 이스트 포클랜드에 자리한 다윈. 
2 손더스 섬의 에어필드, 공항청사는 물론 아트팔트로 만들어진 활주로도 없다. 
3 수잔이 칼로 그물을 잘라 그물에 발이 묶인 펭귄을 구해주려고 하고 있다. 
4 수잔이 지정해준 해안암벽에 텐트를 치다.

데이빗 수잔 부부가 운영하는 세틀먼트의 농장
다른 곳과 별반 다를 게 없을 정도로 손더스 섬에서도 활주로조차 그려 있지 않는 텅 빈 허허벌판에 비행기가 내렸다. 공항청사가 없음은 당연했다. 필자를 마중 나온 섬 주인의 차량만이 벌판에 놓여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건넨 수잔 부인은 자신의 랜드로버 차량에 태우고 먼저 그들의 정착촌인 세틀먼트Settlement로 향했다. 수잔과 그의 남편 데이빗은 이 섬의 주인이다. 따라서 몰래 숨어들어오지 않는 한 이 섬을 오가는 모든 사람은 수잔과 데이빗을 거쳐야 한다. 필자 역시 이러한 정보를 스탠리의 케이 B&B에서 함께 머물던 제이콥으로부터 미리 들어 알고 있었다. 제이콥은 이곳을 며칠 전 방문했던 영국 청년으로 22살의 생물학자이다. 사실 이 세틀먼트 옆에는 포트 에그몬트Port Egmont라는 작은 유적지가 있다. 이곳은 1740년경 찰스 손더스 경을 비롯한 영국인들이 포클랜드에서 처음으로 정착했던 곳이다. 

현재 이 섬에는 수잔과 데이빗, 데이빗의 여동생 가족 등 모두 여섯 명이 세틀먼트에 살고 있다. 세틀먼트를 제외하고 섬의 어느 곳에서도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 세틀먼트에는 여러가지 농기계와 트랙터, 포크레인 같은 차량 따위가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세틀먼트에 잠시 내려 버너스토브에 쓸 가스를 하나 빌렸다. 버너스토브는 케이로부터 빌린 것이었다. 수잔과 필자는 다시 세틀먼트에서 하룻밤을 보낼 넥the Neck까지 비포장도로를 달렸다. 거리는 고작 16km였지만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길이었다. 바위가 듬성듬성 드러나 있는 곳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차량의 타이어가 온전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차량은 80년대식 오래된 랜드로버였다.

그물에 다리가 감긴 펭귄을 구해주다
넥은 두 개의 해변으로 이루어진 가는 지면으로 마치 두 개의 서로 다른 섬을 연결하고 있는 육지와 같은 곳이었다. 넥에 도달하니 수 천 마리에 달하는 펭귄들의 서식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실로 믿을 수 없는 진풍경이었다. 내 생애 지금까지 그 어느 곳에서도 이처럼 많은 펭귄을 보진 못했다. (전에 남아공과 호주 서부에서 펭귄 서식지를 방문한 적은 있었다.) 수잔은 필자가 캠핑할 수 있는 곳을 보여주기 위해 해변 근처로 차를 몰았다. 그리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한 마리 펭귄이 누워 퍼덕거리는 모습을 발견했다. 보아하니 방치된 어부의 그물에 펭귄의 발이 걸려 묶여있던 것이었다. 어떻게 어부의 그물이 이 해변까지 들어오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물은 매우 단단한 재질로 되어있었는데, 펭귄의 발을 심하게 조이고 있었다. 수잔은 차에서 날카로운 칼을 꺼내 가져왔다. 수잔이 펭귄의 목을 손으로 잡자 펭귄은 몸서리치며 저항했다. 

자신을 그물로부터 구해주고자 하는 사실을 알 리가 없을 듯. 수잔은 필자에게 펭귄의 목을 잡으라고 했다. 평소 치킨포비아(일종의 조류공포증)가 있는 탓에 발버둥치는 펭귄의 목을 잡기란 여간 두려운 일이 아니었다. 대신 수잔이 펭귄의 목을 잡고 내가 펭귄의 발을 묶고 있는 그물 줄을 칼로 잘랐다. 그물 줄은 정말이지 단단한 재질로 되어있어 날카로운 칼로도 쉽게 잘리지 않았다. 20여분의 시간을 그렇게 애쓰며 보낸 끝에 수잔이 단숨에 칼로 남아있던 그물 줄을 끊어내는 데 성공했다. 수잔이 실로 대단한 여자처럼 보였다. 그녀는 칼로 자신의 양도 잡고 총으로 소도 잡는다고 했다. 필자같이 대도시에서 태어나고 대도시에서 자란 씨티보이가 하기에는 모두 벅찬 일이었다.

해안 암벽에서 나 홀로 캠핑
수잔이 떠나고 홀로 넥에 남아 무거운 짐을 지고 수잔이 일러준 해변 옆의 해안암벽의 한곳으로 이동했다. 섬 주인인 수잔의 허가 하에만 캠핑을 할 수 있다. (사실 카커스 섬이나 씨라이온 섬만 해도 캠핑이 불가하다.) 이제는 이 드넓은 자연공간에 홀로 홀로였다. 살아 숨쉬는 것이라곤 수천 마리의 펭귄들이 대부분이었다. 해안암벽으로 이동하는 길에 마젤란 펭귄 무리를 만났는데, 그 옆을 지나가자 이 녀석들은 두려운지 서둘러 암벽을 기어올라갔다. 암벽 바로 위에는 목초지가 있었고 그곳에는 몇 마리의 양들과 기러기들이 있었다. 필자가 텐트를 칠 곳은 암벽 아래 움푹 패인 곳이었다. 눈 앞에는 바위가 널려있었고 바다 위에는 다시마처럼 보이는 거대한 해초가 이리저리 엉켜있었다. 

이보다 더 멋진 캠프사이트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무도 없는 펭귄서식지에서 홀로 밤을 지새워야 한다는 생각에 약간의 두려움도 엄습했던 게 사실이었다. 게다가   주변에는 독수리들이 진을 치고 있었으니…… 캠핑그라운드가 아닌 아무도 없는 곳에서의 와일드캠핑은 생애 처음이었다. 우선 텐트를 치고 자리를 잡은 뒤 케이가 빌려준 버너스토브와 수잔이 빌려준 가스로 음식 만들 준비를 했다. 음식은 스탠리의 수퍼에서 산 냉동식품인 야채를 곁들인 오리엔탈 누들이었다. 음식 냄새를 맡고 독수리들이 몰려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했다. 하지만 그건 기우였다. 식사를 할 무렵 내 앞에 꼬리를 오르내리며 움직이는 물체가 시야에 포착되었다. 보아하니 돌고래였다. 
한 마리가 아닌 여러 마리였는데, 이 순간을 제외하고는 다시 이 녀석들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순간 얼마 전 보았던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e>가 떠올랐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파이가 미어캣이 사는 무인도에서 고래를 만났던 장면이 생각났다. 필자 역시 이 낯선 곳에서 돌고래들의 환영을 받게 되자 마치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털갈이를 하는 락하퍼 펭귄 둥지로 찾아가다
카메라를 들고 다시 해변으로 나왔다. 본격적으로 펭귄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였다. 해변 위에도 수 백 마리에 달하는 펭귄들이 있었지만 해변가 주변의 작은 구릉 위에도 수 천 마리의 펭귄들이 군데군데 무리를 지어 있었다. 게다가 반대편 해안에도 상당수의 펭귄들이 있었기에 아마도 모두 그 수를 합치면 1만 마리 이상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이곳 포클랜드에는 크게 네 종류의 펭귄이 있다. 킹King 펭귄, 젠투Gentoo 펭귄, 마젤란Magellanic 펭귄, 락하퍼Rockhopper 펭귄이다. 이곳 넥에 있는 대다수의 펭귄은 젠투 펭귄이었다. 그 속에 마젤란 펭귄이 따로 무리를 지어 모여있었다. 킹 펭귄은 수십 마리 밖에 없었다. 필자에게 가장 흥미로운 펭귄이었던 락하퍼 펭귄은 해변이나 해변 구릉에 있지 않았다. 이 녀석들은 해변 끝 벼랑에 둥지를 트고 있었다. 해변을 걷자 앞에 있던 펭귄들이 모두 허둥지둥 다른 곳으로 피하기 시작했다. 자고 있던 펭귄들도 일어나 이동하기 시작했다. 펭귄들이 많은 만큼 곳곳에 펭귄들의 시체도 널려있었다. 시체 곁을 떠나지 않고 있는 펭귄도 있었는데, 아마도 죽은 펭귄의 새끼였던 것 같다. 하늘에는 조니루크Johnny Rook(카라카라Caracara로 불리기도 한다)라 불리는 매와 갈매기가 허공을 빙빙 맴돌고 있었다. 걸을 때마다 갈매기가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낯선 이의 출현을 알렸다. 이 소리를 듣고 펭귄들은 필자를 경계하였다. 꽤 길고 긴 해변을 지나 락하퍼 펭귄이 자리한 해안 절벽에 다다랐다. 

해안절벽 인근에서는 두 마리의 조니루크가 죽은 시체임이 분명한 무언가를 열심히 먹고 있었다. 이곳에 머물면서 조니루크가 직접 펭귄을 사냥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절벽을 조심스럽게 올라 락하퍼 펭귄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신기하게도 필자가 오르는 길목에 한 마리의 마젤란 펭귄이 열심히 절벽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펭귄은 날개도 짧고 다리도 짧아 어딘가를 오르고 내리는 데 체형적으로 무척 불리하다. 자세히 보니 이 녀석은 부리를 최대한 이용해 절벽을 오르려 하고 있었으나 안쓰럽게도 제대로 오르지 못했다. 도대체 왜 이 녀석은 마젤란 펭귄이 아닌 락하퍼 펭귄 무리들이 모여있는 절벽의 중턱까지 오르려 하던 것일까? 혹시 길을 잘못 찾고 헤매고 있는 게 아닐까? 마젤란 펭귄은 이곳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모여있는데, 이 녀석은 분명 가족을 잃고 헤매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락하퍼 펭귄들은 젠투 펭귄이나 마젤란 펭귄과는 달리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내가 본 락하퍼 펭귄들은 대부분 털갈이를 하거나 털갈이를 막 마친 새끼들 같았다. 해변을 등지고 돌아서 부는 바람에 털을 날리며 떨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게 중에는 보송보송한 털을 거의 털어버린 녀석들도 꽤 있었다. 이 락하퍼 펭귄 바로 옆에는 독수리 한 마리가 지긋이 앉아 있었다. 낙오된 녀석들은 이 독수리의 먹이가 되기에 충분해 보였다.

1 해변 인근 육지에 무리를 지어 서식하는 손더스 섬의 펭귄들. 
2 붉은 눈과 머리에 난 노란색 털이 인상적인 락하퍼 펭귄. 
3 손더스 섬의 넥에는 그리 많지는 않지만 수십 마리의 킹펭귄이 서식하고 있다. 
4 늘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대고 있는 마젤란 펭귄들. 
5 내가 캠핑한 곳 근처에서 한두살 먹은 바다코끼리를 만나다. 
6 내가 캠핑한 곳 옆에서 나를 줄곧 경계하던 붉은머리 수리.

한두 살 먹은 어린 바다코끼리를 만나다
다시 해변으로 돌아와 거대한 펭귄 무리의 숲을 헤치고 나아가 필자의 텐트가 있는 해안 암벽 쪽으로 다가갔다. 이번에는 암벽 한 켠에 자리를 잡은 바다코끼리Elephant Seal를 발견했다. 이 녀석의 몸체는 전에 갈라파고스에서 보았던 바다사자보다 적어도 3-4배는 더 커 보였다. 카메라를 들고 다가가자 덩치와는 달리 엄청 겁을 먹은 채 뒤뚱뒤뚱 거대한 몸을 끌고 물속으로 들어가 숨어버렸다. (나중에 스탠리에 돌아와 이 사진을 바다코끼리를 연구하러 온 생물학자에게 보여주었더니 내가 만난 바다코끼리는 나이가 한두 살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나이가 많은 놈들은 코끼리처럼 코가 쳐지는 특징이 있다.)

컨디션이 안 좋은 탓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까 낮에 텐트 칠 무렵 가까이에 있던 붉은 머리 수리Turkey Vulture 무리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케이의 B&B에서 두꺼운 담요를 가져오지 않았다면 아마도 추위 속에 잠자리를 설쳤을 지도 모른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니 빨간 부리를 지닌 검은머리물떼새Oyster Catcher 한 마리가 물위로 씽하며 날아갔다. 필자가 있는 암벽 쪽은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맑았지만 해변 쪽은 안개로 자욱했다. 바위에 걸터앉아 잠시 명상의 시간을 가지며 경계가 불분명해 보이는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이 순간만큼은 하늘과 바다가 모두 내 것 같았다. 하늘과 바다로 덮인 탁 트인 자연공간에서의 숨돌리기는 지친 일상으로 분주했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게 해주었다.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텐트를 접고 짐을 모두 챙겨 떠날 채비를 했다. 수잔이 오후 4시에 해안 위쪽에 마련된 게스트용 캐빈으로 데리러 올 예정이었다. 일단 게스트용 캐빈까지 가서 짐을 그곳에 놓고 알바트로스 둥지가 있는 곳을 둘러볼 생각이었다.

조니루크 무리와 씨름을 하다
오전 10시에 둥지를 떠나 이번에는 해변이 아닌 해변 위쪽의 낮은 구릉에 있는 펭귄 서식지를 둘러보았다. 내가 등장하자 난리가 난 듯 수줍음이 강한 마젤란 펭귄들이 줄행랑을 치듯 해변으로 무리 지어 달려가는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매우 인상적이라 그 장면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았다. 해변과 마찬가지로 구릉지대에도 펭귄의 붉은 똥과 털이 지천에 널려있었다. 펭귄 똥은 신기하게도 빨간색이다. 아마도 붉은 해조류를 많이 먹기에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펭귄무리 사이를 헤치고 나아가 드디어 게스트용 케빈이 있는 곳까지 다다랐다. 가는 도중에 펭귄의 알을 훔쳐 먹는 버릇이 있는 브라운 스쿠아스Brown Skuas라는 바닷새도 볼 수 있었다. 이 녀석은 갈매기와 비슷해 보이기도 했는데 부리가 더 단단하고 매서워 보였다. 이곳에 올라오는 동안 거의 다다랐을 무렵부터 필자를 쫓아오는 놈이 있었다. 바로 조니 루크였다. 어제 수잔과 넥에 도착했을 때에도 필자를 처음으로 반기던 놈들이었다. 케빈에도 세 마리의 조니루크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마치 자기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듯했다. 선뜻 매들이 진을 치고 있는 케빈에 내 배낭을 둘 수 없었다. 

배낭 안에는 음식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수잔은 내가 이곳 넥에 도달했을 때 매를 가리켜 ‘저 놈들은 길들여졌다Tamed’라는 표현을 썼다. 아마도 길들여졌다라는 의미는 인간들에게 친밀하다는 말인 것 같았다. 수잔은 필자에게 무언가를 땅에 내려놓고 가버린다면 녀석들은 달려들어 그것을 낚아채 가져갈 것이라 했다. 그래서 쫓아왔던 매 역시 나에게 무언가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녀석들이 원하는 것은 먹을 것이었다. 녀석들은 내가 무언가 자신들에게 먹을 것을 주길 원한 듯 했다. 아마도 예전에 이곳에 왔던 방문객들이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던 모양이다. 어느 새 앉아있던 곳 뒤에 한 마리의 조니루크가 허기진 듯한 모습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또 다른 한 마리가 내게 가까이 달려들자 이번에는 케빈에 있던 세 마리의 조니루크가 동시에 내 쪽으로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나는 다섯 마리의 조니루크에게 포위된 셈이었다.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 없었기에 얼른 울타리 쪽으로 다가갔다. 울타리의 작은 문 위에도 또 다른 조니루크가 앉아 있었지만 나무로 만들어진 문을 향해 돌을 던져 매가 그곳으로부터 나오도록 했다. 그리고는 서둘러 울타리 문을 열고 그곳을 나와 차량의 바퀴자국이 선명한 트랙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조니루크는 더 이상 쫓아오지 않았다. 울타리가 처진 안쪽까지가 녀석들의 영역이었던 것 같다. 안개 자욱한 아침에 매와 씨름을 벌인 탓에 이마에 진땀이 맺혔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나는 새인 알바트로스 둥지를 탐사하려던 계획도 무산되었다. 안개가 자욱해 알바트로스 있는 곳까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혼자 길을 찾아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세틀먼트까지 걸어가는 머나먼 길
원래 수잔이 차량을 몰고 오후 4시에 넥에 자리한 게스트용 케빈으로 와서 나를 픽업하기로 했지만 매들이 가득한 그곳에 계속 머물 수가 없었기에 하는 수없이 무거운 짐을 이고 세틀먼트까지 걷기로 결정했다. 가는 길 곳곳에서 만난 양떼들은 순순히 길을 비켜주었다. 어느 새 날은 환히 개고 화창한 날씨 아래 섬의 또 다른 면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포클랜드의 여느 섬과 마찬가지로 손더스 섬에도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았다. 대신 보그Bog라 불리는 특이한 식물이 가득했는데, 이 식물만이 이 섬의 이채로운 자연미를 드러내주었다. 세틀먼트로 가는 길을 가도가도 끝이 없었다. 필자가 짊어진 두 개의 배낭은 무게가 거의 20kg에 달했다. 구릉진 언덕을 오르내리면서 몸은 점점 지쳐만 갔다. 걷다서다를 반복하며 초원 위에 잠시 누워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고생에 대해 찾아온 보상
원래 세틀먼트에서 야영을 할 생각이었다. 야영을 하더라도 하룻밤에 20파운드를 지불해야 했다. 그런데 수잔이 나에게 오늘밤은 야영하지말고 게스트하우스에서 자라고 하는 것이었다. 물론 돈을 더 낼 필요는 없었다. 그녀가 제안한 게스트하우스는 일반 게스트하우스가 아니라 세틀먼트에 마련된 하나의 게스트용 집 한 채였다. 하얀 석조가옥은 나무 울타리가 쳐져 있었고 내부에는 침실은 물론 햇살이 들어오는 욕조, 샤워실, 드럼세탁기, 히터 등이 있었다. 부엌에는 각종 식기는 물론 마이크로웨이브, 토스트기, 커피, 미네랄워터, 각종 조미료 등이 갖추어져 있었다. 게다가 케이블TV와 신문까지 놓여있었기에 그녀의 제안은 실로 대단한 호사였다. 힘들었던 어제와는 달리 대지 위의 모든 생명체가 축복받을 대상으로 보였다. 야생에서 만난 펭귄, 바다코끼리, 돌고래, 조니루크, 검은머리물떼새는 없었지만 그대신 목초지 위엔 말과 양, 소와 닭, 거위가 있었다. 야생동물이 아닌 가축이었지만 이 동물들이라도 축복해주고 싶었다. 잠깐 하룻동안이었지만 펭귄 서식지에 머물면서 수천 마리의 펭귄과 시간을 함께하고 바다코끼리를 만나고 조니루크 무리에게 봉변을 당할 뻔했던 일은 그 어떤 여행지에서도 경험하지 못할 고귀한 체험이었다. 어제의 상황이 꿈만 같았다. 아직도 내가 영화<라이프 오브 파이>의 영화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은 이 손더스 섬을 떠나기 전까지는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하루가 겨우 지났는데 펭귄과 바다코끼리가 그리워졌다. 심지어 조니루크 마저도…… 주인공 파이가 영화 속 처음에는 적이었지만 나중에는 동반자가 되었던 <리차드 파커>라 불리던 호랑이와 이별 후 그를 그리워했던 것처럼 말이다

1 넥의 게스트용 케빈 옆에 자리한 조니 루크. 
2 여러 마리의 조니 루크가 모여 먹이를 먹고 있는 모습. 
3 양무리가 곳곳에 자리한 손더스 섬과 주변 풍광. 
4 세틀먼트 농장의 게스트하우스 내 침실. 5 세틀먼트 농장에 자리한 게스트하우스의 울타리와 주변 풍광.

Travel Info

1. 가는 길
탐Tam항공과 함께 라탐항공그룹 소속의 란항공(www.lan.com)은 산티아고, 리마, 부에노스아이레스, 상파울루 등지를 베이스로 한 중남미최대항공사로 중남미 내에서 다양한 항공 루트를 자랑할 뿐 아니라 북미, 유럽, 오세아니아 등지로도 운항 편을 제공하고 있다. 영국항공, 캐세이패시픽, 아메리칸항공 등과 함께 원월드One Wolrd 멤버인 란항공은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로스앤젤레스, 산티아고(칠레), 푼타아레나스(칠레)를 경유해 포클랜드의 마운트 플레즌트 공항으로 운항한다. 란항공은 포클랜드로 운항하는 세계 유일의 민간 항공사이다. 인천공항과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 사이는 대한항공과 공동운항한다. 인천공항-로스앤젤레스, 로스앤젤레스-산티아고, 산티아고-푼타아레나스 구간은 매일 운항 편이 있지만 푼타아레나스에서 포클랜드의 마운트 플레즌트 공항 사이의 운항 편은 주1회이다. 산티아고에서 푼타아레나스를 경유하여 포클랜드의 마운트 플레즌트 공항까지 운항하는 란항공의 출, 도착 정보는 다음과 같다. 출국편, 귀국편 모두 여름철인 12-4월 사이의 매주 토요일에만 운항한다. (문의 란항공 서울사무소 02-753-9114)
출발지
 출발시간
 목적지
 도착시간
 소요시간
 
출국편
 산티아고SCL
 07:45
 푼타아레나스PUQ
 11:15
 3시간30분
 
연결편
 푼타아레나스PUQ
 12:15
 마운트플레즌트MPN
 13:50
 1시간35분
 
귀국편
 마운트플레즌트MPN
 14:50
 푼타아레나스PUQ
 16:30
 1시간40분
 
연결편
 푼타아레나스PUQ
 17:30
 산티아고SCL
 20:55
 3시간25분
 
2. 포클랜드 여행하기
여러 섬으로 이루어진 포클랜드를 둘러보는 유일한 방법 중 하나는 포클랜드 정부에서 운영하는 FIGAS의 경비행기를 이용하는 것이다. 포클랜드 국내선 비행기는 마운트 플레즌트 공항이 아닌 스탠리 공항을 이용한다. FIGAS 운항편을 예약하려면 스탠리에 자리한 케이B&B에 머물면서 주인인 케이에게 예약을 부탁하는 것이 가장 좋다. 또 다른 방법은 스탠리에 자리한 관광안내소를 통해 항공편을 예약하는 것이다. 항공 예약은 최소 하루, 이틀 전에 하는 것이 좋다. 스탠리-손더스 섬 왕복항공요금은 235파운드로 꽤 비싼 편이다. 스탠리 중심가에서 스탠리공항까지는 택시로 5파운드이고 마운트 플레즌트 공항에서 스탠리까지는 미니밴버스로 12-14파운드이다. 참고로 스탠리에 머물면서 세계 최대의 킹펭귄 서식지 중 하나인 볼더스 비치를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투어 80파운드부터) 케이B&B나 관광안내소를 통해 예약할 수 있다. 

3. 추천 숙소
스탠리에서는 케이B&B(주소14 Drury St. Stanley / 전화 21071)에 머물 것을 추천한다. 아침식사 포함해 20파운드이며 저녁식사는 8파운드이다. 케이B&B의 앞마당에서 본인이 가져간 텐트로 야영을 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요금은 5파운드이며 아침식사와 샤워를 할 경우 추가로 5파운드를 내야 한다. 손더스 섬에서의 숙소는 크게 두 군데이다. 세틀먼트에서의 게스트하우스(전화 41298)의 경우 1인당 50파운드이며 넥의 게스트캐빈은 70파운드이다. 넥의 해안암벽에서 야영할 경우 20파운드를 내야하며 세틀먼트에서 넥까지의 왕복이동요금은 70파운드이다.

4. 비자
포클랜드는 영국령이기에 별도의 비자가 필요 없다. 대한민국 여권소지자의 경우 비자없이 30일까지 머물 수 있다. 출국 시 공항세 22파운드를 내야한다.

5. 환율
포클랜드는 포클랜드파운드를 통화로 사용하지만 영국 본토의 파운드화도 널리 사용된다. 따라서 포클랜드 방문 시에는 미리 한국에서 영국 파운드화를 가져가면 된다. 단 포클랜드 파운드화는 포클랜드 이외의 지역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현재 1파운드는 한화로 약 1750원.

6. 여행시즌
란항공은 12월부터 4월까지만 푼타아레나스-포클랜드 구간을 운항하기 때문에 이 사이에 방문하는 것이 가장 좋다. 이 기간이 포클랜드에서 가장 좋은 날씨를 선보이기도 하지만 포클랜드 날씨는 항상 예측불가하고 바람이 많이 불고 생각보다 꽤 쌀쌀하기에 따뜻한 옷을 잘 챙겨가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