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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ee Mountains, Three Times Exclamation

세 개의 산, 세 번의 감탄사

하루에 하나씩, 세 개의 산을 올랐다. 처음 마주한 중국의 명산들을 대륙의 크기만큼이나 비현실적으로 광활하고 웅장했다. 중국의 역사가 엿보이는 태산부터 신비로운 모험을 떠나는 듯한 팔천협 대협곡, 인생 최고의 일출을 감상할 수 있는 왕망령까지. 명산들만이 가지고 있는 아우라에 온몸으로 감탄하고 매료되었다.
글과 사진 차예리 기자 취재협조 태산·왕망령·태항산대협곡 한국사무소

태산의 아름다운 풍광을 바로 옆에 두고 오르는 끝이 없는 계단들은 힘들지만 즐겁다. 저마다의 소망과 근심을 가지고 태산을 오르는 사람들.

가장 중국스러운 산, 태산에서 신성한 기운을 느끼는 것을 시작으로, 대륙을 가르는 태항산맥까지 향했다. 태항산맥은 중국 산서성과 하남성, 하북성을 거치며 남북 600킬로미터, 동서 250킬로미터로 뻗어있는 거대한 산줄기다. 이 웅장한 산맥은 크고 작은 능선과 협곡 등으로 끊임없이 이어져 있다. 그 중에서도 최고의 예술 작품이라 할 만한 왕망령과 팔천협 대협곡, 천계산을 차례로 올랐다. 이정도 가지고 광활한 중국의 산을 제대로 경험해봤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명산이 가진 아우라에는 충분히 매료되었던 시간이다.

기껏해야 뒷산이나 다니던 기자가 처음 경험한 중국의 명산은 대륙의 크기만큼이나 비현실적으로 크고 높았다. 눈이 압도당한다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 카메라로는 도저히 다 담을 수 없는 광경을 눈으로라도 오래 기억하기 위해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머리 위로 아찔하게 솟은 높은 절벽, 뽀얀 운무 위로 슬며시 보이는 기이한 능선들, 태양이 떠오르자 변화하던 하늘의 색, 협곡의 사이로 흐르던 산속의 에메랄드빛 물결은 기록보다 기억 속에서 더 생생하게 남았다.

중국의 역사가 깃든 태산泰山

중국 산동성 중부 태안시에 위치한 태산泰山은 세계자연유산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명산이다. 넓은 대륙의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넘쳐나는 산 중에서도 ‘천하 제1산’이라 불리며 중국 10대 명산으로 손꼽히는 이유가 궁금해진다. 태산은 중국 역사의 살아있는 현장이다. 태산에 오르면 천하가 태평해진다고 믿었던 고대 제왕들은 하늘에 제를 올리는 봉선제를 시행했다. 중국 「사기」에 따르면 진시황을 비롯한 총 72명의 제왕들이 태산 봉선제를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럼 중국 문화 속에서는 또 어떨까? 공자, 이백, 두보 등 중국의 명인들이 태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여 남겨놓은 시와 노래들은 지금까지도 교과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중국인들에게 태산은 뒷산에 오르듯 가벼운 마음으로 찾는 산이 아닌 각자의 간절함과 소망을 가득품고 올라 마음을 푸는 곳이다. 1,545미터의 높이만큼 간절한 기도를 차곡차곡 쌓아 모두의 걱정과 근심을 해결해 줄듯하다. 태산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사람들의 정신이 깃든 산으로 여겨진다.

먼 과거에는 산 아래에서 남천문까지 이어진 7,600여 개의 계단을 걸어서 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중천문까지 버스를 타고, 남천문까지는 케이블카로 이동할 수 있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남천문에 도착하여 가파른 계단을 내려다보며 이곳까지 걸어올라 왔을 이들에게 진심 어린 존경심을 품었다. 남천문을 지나서 하늘 위의 길이라는 천가를 따라 걸으면 벽하사碧霞祠와 당마애唐摩崖, 옥황정玉皇.이 차례로 등장한다. 벽하사는 태산의 여신인 벽하원군을 모신 사당으로 송대宋代 1009년에 축조되었다. 깊은 역사를 가진 이곳에서 기도의식을 지내 수 있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의식에 참여한 이들은 모두 겸허한 태도로 각자의 소원을 간절하게 빌었다.

조용한 벽하사와는 달리 태산에서 가장 북적이는 곳을 발견했다. 대관봉으로도 불리는 당마애 앞에는 온통 사진을 찍는 여행객들뿐이다. 거대한 바위에 들어찬 수많은 서예조각들 중에서 유명한 것은 당나라 현종이 쓴 ‘기태산명’이라는 비문. 높이 13.3미터, 넓이 5.3미터의 바위에
새겨진 총 1,000자의 비문은 태산의 산세를 칭송하고 당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내용이 남겨져 있다.

1 남천문을 지나자 시작되는 천가를 따라 상점과 음식점이 즐비하다. 
2 벽하사에 빈틈없이 매어있는 모든 이들의 소망. 
3 당마애의 여러 서예조각 중에서 가장 오른쪽의 금빛 조각이 당나라 현종이 남긴 ‘기태산명’ 비문이다. 
4 벽하사에서 올렸던 기도의식의 숭고한 분위기에 카메라 셔터를 조심스럽게 눌렀다.
5 중천문에서 남천문까지 곧장 이어지는 케이블카.

신비로운 미지의 여행, 팔천협八泉.

태항산맥의 줄기를 이루는 수많은 협곡 중에 하나인 태항산 대협곡은 웅장하고 훼손되지 않은 자연 경관으로 전 세계의 등산 마니아들을 불러 모은다. 태항산 대협곡은 팔천협과 홍두협, 흑룡담, 청룡협, 자단산 등 다섯 가지로 구성되는데 그 중에서도 팔천협은 올해 4월에 정식 개장하여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협곡이다.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은 만큼 가장 순수한 본래의 자연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처음 만난 팔천협은 일반적인 등산과는 거리가 한참이나 멀었다. 산에 흐르는 깊은 에메랄드 빛 물결도, 예술적으로 솟아있는 절벽들 사이를 헤매는 트레킹도, 길고도 긴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보이던 웅장한 풍경도, 절벽을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는 엘리베이터도 이제껏 보고 느껴왔던 산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팔천협은 협곡을 누비는 유람선을 타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찔하게 솟은 절벽을 가르는 물결을 따라 갈수록 깊고도 신비로운 숲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리저리 굽어진 협곡을 걷는 트레킹은 약 한 시간이 소요된다. 큰 칼로 광활한 대륙을 길게 잘라 깊은 협곡을 만들고 그 사이사이마다 멋대로 작은 길을 만든 듯하다. 잔잔히 내리던 비 덕분에 나무도 바위도 꽃도 수분을 듬뿍 머금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걷는 걸음마다 따라오던 물은 너무도 맑아서 노란 물고기의 움직임이 그대로 보인다. 고개를 들어보면 하늘은 절벽의 모양에 따라 제각각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길을 헤매듯이 몇 굽이의 협곡을 지나고서 만나는 것은 빨간 케이블카. 장담하건데 지금까지 타보았던 케이블카 중에서 가장 길고도 높다고 자부할 수 있다. 3킬로미터에 달하는 케이블카는 몇 개의 능선을 오르락내리락하며 하늘에서 대협곡의 웅장한 자태를 보여주었다. 유리창에 코를 박고 짙은 운무 사이로 장엄한 풍경을 한시라도 놓칠까봐 고개를 이리저리 굴렸다.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양쪽으로 거대하게 갈라진 대협곡의 풍광에 고소공포증도 잠시 잊혀진다. 팔천협의 대장정은 엘리베이터로 마무리된다. 갑자기 산에서 무슨 엘리베이터냐고 의아해할 수도 있지만 208미터 높이의 절벽을 곧장 따라 내려오는 천공지성天空之城 엘리베이터를 타면 순식간에 지상으로 돌아온다. 오랜 시간을 들여 올라간 것이 무색할 만큼 금세 허무하게도 현실 세계로 내려왔다.

1 빨간 케이블카에서 내려다 본 팔천협 대협곡이 안개로 뒤덮여 신비롭다. 
2 4 협곡 트래킹을 따라 흐르던 물 빛깔이 너무 예뻐서 자꾸만 바라보게 된다. 
3 촉촉이 내리던 비 덕분에 우비를 입고 걸어가는 사람들. 
5 절벽과 절벽 사이의 좁은 길로 아무렇게나 이어진 좁은 길. 
6 천공지성 엘리베이터의 유리 건물은 바닥까지 투명하다. 아찔한 208미터의 낭떠러지가 그대로 보인다.

왕망령王莽.에서 감상하는 태항산 최고의 일출

일출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별난 감동을 받는 편은 아니다. 해는 매일 뜨는 것이 아니냐며 건조한 말을 내뱉기도 했다. 그러나 왕망령의 일출은 아침잠을 반납하고서라도 매일 새벽마다 산을 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절로 들게 만들더라. 세상의 모든 드라이아이스를 얹어 놓은 듯 풍성하고 부드러운 운무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수십 겹의 능선들이 떠오르는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출렁거린다. 하늘은 물감을 흩뿌린 것처럼 수만 가지의 색으로 시시각각 변하며 아침을 맞이한다. 새벽 5시 20분, 파도 같은 운무 위로 태양이 뚜렷한 원을 그리며 등장했다. 좀처럼 얼굴을 보여주지 않던 태양은 수줍은 듯이 올라오더니 순식간에 높은 하늘 위로 떴다. 해발 1,730미터에서 굽어보는 왕망령의 일출을 마주하고 있으니 태항산 최고의 일출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귀한 걸음, 곤산괘벽공로昆山.壁公路

왕망령과 석애구, 곤산, 유수성 등 네 개의 관광구로 이뤄져 있는 왕망령 풍경구는 굽이치며 늘어선 기이한 능선과 봉우리들이 예술 작품과도 같은 곳이다. 왕망령 풍경구 중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곤산괘벽공로는 곤산마을 사람들이 아랫마을로 내려가기 위해 오로지 20여 년 동안 곡괭이와 삽 만으로 뚫은 동굴 터널이다. 1,250미터의 길을 어떻게 오직 사람의 힘만으로 뚫었는지 동굴을 걸으면서도 도무지 상상이 되질 않았다. 곧게 솟은 절벽 사이로 숭숭 뚫린 구멍이라니. 맞은편에서 걸어가는 사람들이 구멍들 사이로 빼꼼하게 보일 때마다 손을 흔들어 인사를 건넨다. 구멍은 자연 액자 노릇을 톡톡히 한다. 같은 풍경이라도 프레임 다르니 제각각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동굴 속은 구멍을 통해 빛을 듬성듬성 받아 낮과 밤이 교차된다.

천계산天界山을 보려면 아침 일찍 일어나세요

보통의 여행 코스는 왕망령에서 시작하여 곤산과 석애구를 거쳐 천계산으로 이어진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천계산에서는 한식당 간판과 알록달록 등산복을 쉽게 마주칠 수 있다. 천계산의 모습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어야만 한다. 오전 11시가 되면 안개가 올가오기 시작하여 오후가 되면 구름 한복판에 있는 듯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아직은 안개가 떠오르지 않은 시간, 천계산에서 전동카를 타고 운봉화랑을 한 바퀴 돌면서 7개의 전망대를 감상했다. 전동카로 천천히 둘러보기까지 1시간 정도가 소요되는데 두발도 걸어 다니는 열혈 여행자들도 적지 않다. 7개의 전망대 중에서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제7전망대. 아찔한 계단을 타고 한참을 내려가는 것은 힘들지만 수고를 들일만큼 훌륭한 전망이 기다리고 있다.

세 개의 산을 매일 연속해서 오르면서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았던 이유는 단 한 번도 똑같은 풍경을 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세 개의 산은 같은 자연을 가지고 있지만 전혀 다른 분위기와 기억을 남겼다. 매번 다른 종류의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던 명산들은 지금도 그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다.

1 기다리고 기다리던 왕망령의 일출이 시작된다. 
2 해가 떠오르자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능선들. 
3 구멍이 뻥뻥 뚫린 곤산괘벽공로. 구멍 앞마다 아름다운 풍경을 촬영하기 위해 멈춰서게 된다. 
4 천계산의 7개 전망대 중에서 제2전망대. 한 번에 6명까지만 올라갈 수 있는 전망대의 끝에 서면 하늘에 붕 떠있는 신기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