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with my own relaxation, Kitakyushu and Yamaguchi

나만의 쉼표를 찾는 여행, 기타규슈와 야마구치 현 

바쁜 일정의 여행은 진부하다. 쉬어가며 다니는 여행이 대세다. 2박 3일, 일본의 소박한 시골 마을을 느긋한 마음으로 다니며 쉼표를 찍었다. 그런데도 느낌표와 마침표만이 선명하게 남았다. 여유로운 걸음도 흥미롭고 강렬한 여행의 기억으로 보답하는 곳. 기타큐슈와 야마구치 현이다.

 

일본인들이 사랑하는 시골 동네, 기타큐슈

기타큐슈는 1963년 모지門司, 고쿠라小倉, 와카마츠若松, 야하타八幡, 토바타戸畑 등 5개의 시가 합병돼서 탄생한 곳이다. 인구 95만명으로 큐슈에서 후쿠오카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 인구가 많다는 건 여러모로 유리한 점이 많다. 시골이지만 공항을 비롯해 대도시 못지않은 편의 시설을 갖춰 불편함이 없다. 저렴한 물가와 함께 안정된 교육과 의료환경, 철도, 버스, 모노레일 같은 다양한 교통수단 등 삶에 필요한 인프라도 잘 정비돼 있다. 그래서 로컬들은 살기 좋은 동네라고 자랑한다. 

 

시내에서 차를 타고 30분만 이동해도 펼쳐지는 목가적이고 아름다운 전원의 풍경은 연예 관계자들이 특히 사랑한다. 셀 수 없이 많은 TV 드라마나 영화가 기타큐슈를 배경으로 촬영되어 왔다. 음식도 빼놓을 수 없다. 인근 바다에서 나는 풍부한 해산물을 가지고 조리된 음식들은 싸고 맛있고 신선하고 푸짐하기까지 하다. 

야키카레, 야키우동 등 이 지방에서 시작된 요리들은 일본에서도 특별한 진미로 통한다. 일본 최고의 출판사 중 하나인 '타카라지마샤宝島社'가 매년 실시하는 '살고 싶은 시골 베스트랭킹' 조사에서 기타큐슈가 2018년 전국 1위를 차지했다는 당당한 소식, 그래서 놀랍지 않다.

독특한 스타일의 성城과 아름다운 정원庭園

기타큐슈의 첫 목적지는 고쿠라小倉다. 기타큐슈 공항에서 자동차로 30분이면 닿는다. 예로부터 이 지역의 번주藩主가 기거했던 ‘성城의 아랫마을(조카마치城下町)'로 발전을 거듭, 현재에도 기타큐슈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는 곳이다. 예전 모습 그대로 영업해 오고 있는 상점가와 시장을 비롯한 볼거리가 많아 꼼꼼히 둘러보면 반나절도 모자랄 정도다. 

그 가운데 대부분의 여행자가 반드시 찾는 곳이 고쿠라성小倉城이다. 성의 시작은 거슬러 1602년, 전국시대의 무장인 호소카와 타다오키細川忠興가 7년의 세월을 들여세웠다.

과거 많은 일본의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1866년 화재로 전소된 후, 1959년 재건해 현재에 이른다. 사실 여행자들이 이곳을 구경하는 것은 독특한 천수각의 모습 때문이다. 일본성의 천수는 위로 갈수록 작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곳은 최상층인 5층이 바로 아래층인 4층보다 큰 형태를 가지고 있다. 

이는  당나라의 스타일을 따른 것으로 '가라즈쿠리唐造り'양식이라고 부른다. 고쿠라성이 축성된 당시만 해도 일본에서는 유일했다는 귀띔이다. 성의 바로 옆에 위치한 고쿠라성 정원小倉城庭園은 호소카와의 뒤를 이어 성의 주인이 된 '오가사와라小笠原' 가문이 조성했다. 

성주의 기호에 맞춰 꾸며진 전형적인 '다이묘大名'식 정원이자, 중앙에 놓인 연못을 따라 돌며 주변의 풍경을 음미할 수 있는 '지천회유식(치센카이유시키池泉回遊式)'을 채택했다. 연못 한쪽에 서 있는 큼지막한 목조 건물은 특히 시선을 사로잡는다. 성주가 책을 읽고 휴식을 취했던 서원書院으로 이곳에 서면 정원 전체가 한눈에 포착된다. 

산책하며 둘러보는 것이 제맛인 지천회유식이 무색하게 여기에 앉아서 감상하는 풍경이 진짜배기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팁을 더하자면 서원의 회랑을 걷다가 문득 나타나는 고쿠라성에는 카메라의 셔터를 아끼지 말 것. 고즈넉한 정원 뒤로 병풍처럼 서 있는 성의 자태가 예사롭지 않은 아름다움을 뽐낸다.

산학협력의 올바른 모델, 탄가시장旦過市場

고쿠라에서 또 하나의 머스트 비짓 스폿은 탄가시장이다. 시장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13년에 문을 열었으니 10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쇼와시대 당시의 분위기를 유지한 채 120여 개의 점포가 현재도 영업 중이다. JR고쿠라역에서 도보로 10분, 접근이 편리하고 유명세가 더해져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빈번하고 상인들의 표정에도 활기가 넘친다. 

살아 움직이는 시장의 생생하고 따스한 온기에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기타큐슈를 대표하는 맛있는 지역 음식들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는 것, 탄가시장이 가진 최고의 장점이다. 

과거 고쿠라 번주도 사랑했다는 '누카타키ぬか炊き'는 등 푸른 생선에 쌀겨를 혼합한 된장을 발라 조림한 음식으로 탄가시장을 대표한다. 얇게 자른 빵에 생선살과 채소를 넣은 후 말아서 튀겨먹는 카나페カナッペ는 바삭바삭 쫄깃한 식감의 오묘한 조화로 많은 사랑을 받는다. 

솜씨 좋은 장인의 손길을 거친 오뎅이나 흔치 않은 고래 요리도 빼 놓을 수 없는 탄가시장의 명물이다. 맛있는 향토 음식과 더불어 시장을 움직이게 만든 데는 ‘대학당大學堂’의 역할이 지대하다. 2008년부터 시장과 ‘기타큐슈 시립대학’이 협업하여 운영하는 식당이다. 탄가시장에서 반드시 들러봐야 할 명소로 소문이 자자한데 시스템이 재미있다. 

먼저 식당을 찾은 손님은 200엔을 내고 밥을 산다. 그리고 시장을 돌며 자신이 원하는 음식들을 반찬으로 사서 다시 식당으로 돌아온다. 그 후 밥 위에 사 온 음식들을 얹어 자신만의 덮밥을 완성해 먹는다. 밥 외에 식당에서 살 수 있는 사이드메뉴는 된장국과 커피밖에 없다. 탄가시장이 주로 음식을 취급한다는 점에 착안한 방법이다. 

현역 대학생 20명이 날마다 번갈아 가며 가게의 대표를 맡는 구조도 인상적이다. 그중 최고 연장자는 70대다. 노소의 구분 없이 모두 최선을 다해 대학당과 탄가시장을 위해 헌신한다. 한결같은 모습으로 이어져 온 전통시장과 많은 얘깃거리를 만들어 내며 시장에 활력을 불어 넣는 식당의 공생. 제대로 된 산학협력 모델에 자꾸만 마음이 간다.  

걷는 재미 가득한, 모지코 레트로門司港レトロ

모지는 기타큐슈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동네다. 기타큐슈가 큐슈의 최북단에 있으니 모지는 큐슈 전체에서도 가장 북쪽에 자리한 셈이다. 일본 역사에서 수많은 전투의 배경이 되었던 칸몬해협関門海峡과 마주한 탓에 예부터 어업 마을로 번영을 누렸다. 특히 개항 후인 메이지 시대부터 쇼와 초기에는 일본 굴지의 무역항으로 전성기를 누렸다. 

돈이 돌고 물자가 넘쳤으며 외국과의 왕래로 정신없이 굴러갔다. 그에 맞춰 아우라 넘치는 서양식 건물들이 모지 항구 주변으로 속속 들어섰다. 그때를 살아가던 일본인들에게는 놀랄 만큼 이색적인 모습이었을 테다. 그 시절을 주름잡던 근대 서양식 건물들이 1995년부터 복원, 정비됐다. 그리고 하나의 거리로 탄생했는데 이름하여 '모지코 레트로門司港レトロ'다. 

참고하자면 모지코의 '코'는 일본어로 '항港'을 일컫는다. 모지코 레트로는 걷는 재미가 넘친다. 고전적인 분위기는 타임 슬립을 가능케 한다. 건물들이 품고 있는 사연들도 깨알 같다. 1921년 미쓰이 물산의 영빈관으로 건축되었던 '구旧모지 구락부'는 아인슈타인 박사 부부가 머물렀던 장소로 눈길을 끈다. 

체류 당시의 사진과 함께 박사 부부가 사용했던 침실과 물건들이 전설처럼 남아있다. 붉은색 외관과 특수한 벽돌 쌓기 공법으로 건축돼 화제가 된 '구 모지세관'이나 팔각형의 탑이 돋보이는 '구 오사카 상선'도 발 도장을 찍기에 아깝지 않다. 하루 6번, 20분씩 열리는 도개교 '블루윙모지'는 다리가 내려온 후 처음 건너는 커플은 평생 이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연인들의 성지로도 불린다. 모지코의 밤은 아름답다. 그리고 로맨틱하다. 

해가 저물어 갈 무렵이면 약 30만 개의 전구가 일제히 빛을 발한다. 이때가 되면 모지코 레트로 전망대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해야 한다. 모지코 레트로의 중심에우뚝 솟은 이곳은 지역의 랜드마크다. 지상 103M, 31층에 자리 잡은 전망대에 서면 사방이 탁 트여 시선이 닿는 곳마다 시원하다. 

모지코 레트로의 전경은 물론 멀리 칸몬 해협의 넘실거림까지 마음을 사로잡는다. 일본 처음으로 바나나가 모지코를 통해 들어왔다는 것도 이 동네의 자랑거리다. 이것을 기념하듯 들어선 바나나 모양의 동상은 의심할 여지없는 인기 포토스폿으로 놓치면 아쉽다.

복어의 본고장, 시모노세키下関

야마구치 현은 혼슈의 서쪽 끝에 있는 작은 현이다. 지역자체의 인지도는 물론 여행지로서도 우리에게는 낯설기만 하다. 그건 일본인들에게도 마찬가지여서 야마구치만을 여행의 목적지로 삼는 일본인 여행자는 드문 게 사실이다. 그래서 대부분은 인접해 있는 이웃 지역과 묶어 여행하는 것이 보편적인 여행 패턴이다. 

기타큐슈가 특히 그렇다. 야마구치현의 서쪽 끄트머리는 모지코와 칸몬해협을 사이로 마주 보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의 도시 '시모노세키下関'다. 다리(칸몬바시関門橋)하나면 건너면 닿을 만큼 지리적으로 가깝다 보니 시모노세키와 모지는 많은 부분을 공유한다. 

모지코 레트로 못지않은 복고적인 분위기도, 음식문화도, 삶의 방식도 그렇다. 하지만 시모노세키에서 절대로 양보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복어(일본어로는 후구ふぐ)'다. 시모노세키는 명실상부한 복어의 본고장이다. 이 동네의 자랑인 가라토 시장唐戶市場을 찾으면 그 분위기가 확연하게 전달돼 온다. 

일본에서 유통되는 복어의 80%가 이 시장을 거친다. 말 그대로 복어의 성지다. 특히 금~일요일 및 공휴일은 '이키이키 바칸가이活きいき馬関街'라 불리는 초밥 좌판이 열리는데 복어사시미, 복어초밥 등 이 배가 불룩한 어류를 이용해 만든 온갖 요리를 흐뭇한 가격에 만나볼 수 있어 즐겁다. 

그뿐만 아니라 그날 잡은 신선한 생선들도 초밥으로, 때로는 해산물 덮밥의 재료로 선보인다. 보통의 여행자들은 이때가 방문의 적기다. 인산인해의 사람들과 함께 시장의 열기는 상상 이상이다. '초밥 배틀'이라고 불릴 만큼 가게 간의 경쟁이 대단하다. 덩달아 호객행위도, 초밥 크기의 인심도 치열하다. 

어느 가게에서 진열해 놓은 음식을 찍고 있으니 "사진만 찍지 말고 좀 사 주구려"라는 이쪽 지방의 억양이 짙게 밴 주인아주머니의 투정이 들려온다. 물론이다. 일본의 여느 시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솔직하고 인간적인 모습. 어찌 지갑을 열지 않을 수 있을까!

자연의 걸작, 아키요시도秋芳洞

야마구치의 호젓한 마을 미네美祢, 일본이 자랑하는 자연의 걸작이 숨어 있었다. 거대한 종유석 동굴인 '아키요시도秋芳洞'다. 푸르스름한 물빛이 고여 있는 동굴의 입구부터 예사롭지 않다. 그로부터 약 1km, 40분간 이어지는 동굴탐험 여정은 감탄의 연속이다. 30만 년의 시간이 깎고 다듬은 종유석들은 자연의 경이다. 

누군가 바위를 북북 뜯어낸 듯도 하고 촛농이 녹아내리는 모습이기도 하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종유석들은 당장 떨어질 듯 아찔하고 이채롭게 깎인 바위들은 환상적이다. 그 가운데 최고 볼거리는 '햐쿠마이자라百枚皿'. 백 개의 접시가 차곡차곡 포개진 형상을 가졌다 해서 이름 붙여진 암반으로 실제는 500개를 훌쩍 넘는다. 

세계에서도 드문 규모라는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뿐만 아니라 후지산을 닮은 '후지산 바위', 괴수 고질라를 연상케 하는 '고질라 바위', 높이 15m, 폭 4m에 달하는 거대한 종유석이 황금빛으로 빛나는 '황금기둥', '마리아 관음' 등도 눈길을 사로잡기는 둘째가라면 서럽다. 

해외도 감탄한 비경, 모토노스미 이나리진자元乃隅稲成神社 단언하건대 야마구치 현 최고 절경이다. 층층이 포개진 붉은색 도리이들이 바다를 향해 뻗어 있는 모습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123개의 도리이들이 늘어서 있는 거리만도 100m에 달하는데, 1987년부터 10년의 세월을 거치며 완성됐다. 

처음에는 몇몇 사진가와 미디어에 의해 소개되며 일본 안에서 유명세를 타다가 2015년 CNN이 '일본의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로 이곳을 꼽으면서 해외에도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언덕 위에 서 있는 6m 높이의 커다란 도리이는 자신의 운을 점칠 수 있는 장소로 흥미롭다. 

도리이 중앙에 걸린 새전함(신에게 돈을 바치는 상자)속으로 동전을 던져, 들어가면 운이 따른다는 속설이 있다. 물론 한 번에 던져 넣어야 좋은 운을 예상할 수 있는데 절대 쉽지 않아 다섯 번 만에 성공했다. 인생은 '사전오기四顚五起'라고 자신을 다독거릴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