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ce
나의 특별했던 프랑스 여행기

나는 불어불문학과를 나왔다. 즉 4년간 불어와 불문학을 공부했다는 것인데, 전공과 상관없이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어쨌거나 불어불문학과를 나온 죄(?)로 나는 사람들에게 전공을 이야기 할 때면 항상 이런 질문을 받는 곤경에 처하곤 한다. “불문과요? 그럼 프랑스 가보셨겠네요?” 너무나 당연한듯한 질문에 땀을 삐질 흘리며 민망하게 아니오. 라고 답하기를 수 년째…… 금전적인 사정 때문에 문턱도 못 밟아 본 프랑스가 한이 되어서 서른 번째 생일에 결심했다. 프랑스에 가서 살아보자!

에디팅 편집부 글과 사진 송미애
 

송미애 경남 양산시 소주회야로
영어강사로 프랑스에서 3개월간 너무 특별한 시간을 보내 여행의 맛에 푹 빠져있다.
 

프랑스를 즐기는 특별한 선택
일을 덜컥 그만두긴 했지만 오랫동안 손을 놓아버려 녹이 슬 대로 슬어버린 프랑스어 실력과 특별히 프랑스에서 관광해보고 싶었던 곳이 없던 나는 몇 개월이나 허비하며 비행기 티켓도 끊지 못한 채 허송세월 했다. 나름대로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는데 평범한 관광객처럼 루브르 박물관이나 에펠탑 등을 보고 돌아와서 프랑스에 갔다 왔다고 하기 싫었다.

나는 진짜 프랑스를 느끼고 싶었고 오만하다는 편견이 씌워진 프랑스 사람들과 부대껴보고 싶었다. 하지만 금전적인 여유가 없어서 내가 꿈꾸는 프랑스 생활을 하기는 무리였다. 가고 싶다는 생각만 하다가 문득, 몇 년 전에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갔던 호주에서 우프(wwoof)를 했던 것이 떠올랐다.

Wwoof란 Willingly Workers On Organic Farm의 약자로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 유기농 농장에서 4-5시간 정도 일을 하고 숙식을 공짜로 제공받는 프로그램이었다.

호주에서 10개월간 있었지만 우프를 했던 3개월만이 진짜 호주와 호주사람을 겪었던 좋은 경험이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사실 체력이 약한 나는 4-5시간도 너무 힘들어 매일 허덕였기에 다시는 이런 체험을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3개월 동안 현지인들과 함께 현지의 문화를 경험하기에 최고의 기회란 생각에 그 날로 바로 프랑스 wwoof 홈페이지에 들어가 소정의 가입비를 내고 마음에 드는 농장 몇 개에 메일을 보냈다.

호주에서는 메일보다는 전화가 더 답이 빨리 왔기에 일부러 다섯 개의 농장에 미리 연락을 했는데 이게 웬일, 이틀 후에 무려 세 곳에서 오라는 연락을 해왔다. 나는 첫 번째로 답장이 온 Alain Mazure씨 댁에 가기로 하고 그날로 바로 티켓을 예약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파리의 아름다움
출국 일이 되자 앞으로 3개월간 경험하게 될 모든 일이 기대되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프랑스에 도착! 나는 우프를 시작하기 전에 파리도 조금 둘러보고 싶어서 이틀을 파리에서 묵었다. TV나 영화, 혹은 인터넷으로 워낙 많이 접했던 루브르 박물관의 피라미드나 에펠탑은 사실 별 감흥 없을 거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커다랗고 웅장한 박물관의 규모와 피라미드의 사이즈를 보고 나는 턱이 떡 벌어졌다. 눈이 개안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 날 하루 종일 루브르 박물관을 구경했다. 다음 날은 세느 강변을 산책하고 저녁 때쯤 에펠탑을 보러 갔는데, 내가 좋아하는 작가 기 드 모파상이 흉물스러워서 꼴도 보기 싫어했다는 점 때문에 별 기대가 없었다. ‘그냥 철골 구조물이지 뭐.’ 하지만 메트로에서 내려 조금 걸어 간 길 끝에 거대하지만 섬세한 에펠탑이 눈에 들어왔을 때 내 입은 이미 귀에 걸려있었다. 너무나 아름다웠던 것이다. 나는 에펠탑 앞에서 3시간 동안이나 서서 에펠탑을 감상했다.

함께 지내게 된 첫 번째 가족
그리고 나니 점점 시골에 가기 싫어졌다. ‘역시, 그냥 여행으로 올걸 그랬나 봐.’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가기로 했던 사퐁쿠르(Saponcourt)는 파리에서 기차를 한번 번 갈아 타고도 버스까지 타고 5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약속은 약속이었으니 나는 출발했다. 기차가 파리를 벗어나고 점점 동양인이 뜸해지기 시작하니 조금씩 무서워졌지만 어설픈 내 불어에도 잘 대답해주는 프랑스인들 덕에 마음이 편해졌다.

사람 구경 바깥 풍경 구경을 하다가 보니 이제 버스만 한번 타면 목적지 도착이었다. 비가 오는데다 플랫폼을 헷갈린 탓에 정말 아슬아슬하게 버스에 탄 나는 커다란 버스에 혼자 탄 동양인이었고 가면 갈수록 나를 제외한 모두가 하나 둘씩 내리고 있었다. 버스에 나 혼자 남게 되자, 친절한 기사 아저씨가 어디로 가냐고 물으며 목적지에 누군가가 날 기다리고 있는지 물어봐 주었다. 그땐 왜 그런지 몰랐지만 도착해서 깨달았다.

그곳은 쥐쎄(Jussey)라는 역으로 그 버스의 종점이었는데 아주 황량한 곳이었던 거다. 기사님께 몇 번이고 고맙다는 말을 하고 내리니 낡은 트럭에 기대 나를 보며 웃으며 파이프를 피우고 있는 알렝 아저씨가 보였다. 전형적인 프랑스 아저씨의 콧수염을 한 알렝 아저씨를 보고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때마침 내리던 비도 그치고 좋은 시작을 알리는 듯이 커다란 무지개가 떴다.

아저씨는 젊은 시절 세계 곳곳을 여행한 분으로 기본적인 영어가 가능했고 매우 친절한데다 쾌활한 분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알렝 아저씨의 부인 안느(Anne)아줌마와 두 딸 뤼씨(Lucie)와 마고(Margo)가 나를 반겨주었다. 초등학교 4학년인 마고는 굉장히 활발하고 사교적이라 우리는 만나자마자 매우 친해졌다.

내가 도착한 날은 금요일 밤이라 저녁을 먹고 내가 쓸 캐러반으로 갔다. 제법 큰 캠핑카 였는데 침대도 넓고 큰데다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주방도 있었다. 다음 날 일어나보니 그곳은 10 헥타르가 넘는 커다란 농장이었는데 땅의 대부분은 양들이 풀을 뜯는 목초지였고 작은 밭이 하나 있었다.

밭에서는 토마토, 여러 종류의 호박, 해바라기, 감자, 고구마 등 딱 네 식구가 먹고도 남은 것을 조금 판매할 수 있는 규모였다. 내가 먹는 음식을 직접 수확해서 먹는 것도 큰 재미였지만 내가 여기서 제일 좋아했던 것은 동물이었다. 수십 마리의 양들, ‘따퀴’라는 이름의 커다란 개, 고양이 에투왈(‘별’이라는 뜻이다)과 나폴레옹, 그리고 호전적인 거위들과 오리, 수십 마리의 닭,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나 농장에서 같이 살고 있는 말 한 마리였다.

특히 말은 어느 날 그냥 나타나서 키우고 있다고 했는데 말이 그렇게 아름답다는 걸 처음 알았다.

매일 일을 마치고 나면 나는 양이 풀을 뜯는 것을 구경하거나 말을 따라다니며 귀찮게 굴었다. 주말에는 종종 벼룩시장에 가곤 했다. 개를 좋아하는 마고의 손을 잡고 다니다 보면 마고가 지나가는 개를 볼 때마다 주인에게 “개를 만져도 되나요? 무슈/마담?”하고 정중하게 묻고는 마음껏 강아지와 놀곤 했기에 5분마다 멈춰서 그녀를 기다려야 했지만 즐거운 추억이었다.

그리고 한번은 알렝 가족이 나를 가족 모임에 초대해줘서 스위스 국경에 가까운 낚시터에서 맛있는 점심도 먹고 생애 처음으로 낚시를 해보기도 했다. 이미 물고기를 풀어놓은 곳이라 비교적 낚시가 쉬워서 나는 커다란 물고기 한 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곤 연이어 두 마리나 놓치고 말았지만 가만히 앉아 낚싯대를 드리우고 아저씨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는 것은 너무나 즐거웠다.

프랑스 초등학교에 가보다!
또 한번은 수다쟁이 마고가 학교에서 내 자랑을 한 모양인지 마고의 담임 선생님이 학교 영어 시간에 나를 초대해 주셨다. 시골이라 외국인이 없어 영어를 배워도 쓸 일이 없었기에 와줘서 고맙다고 했다. 한국인이 프랑스에서 영어를 가르친다고 수업에 들어간다는 사실이 마냥 재미있었는데 외국인을 본다는 점에 있어 아이들에게는 아마 더 재미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눈을 초롱초롱 빚내며 나를 보고 앉았다. 나는 그들의 아담하고 아늑한 교실에서 영어로, 나와 한국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고 이어 아이들이 나에게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들의 영어 실력이 아직 썩 좋지 않았기에 아이가 손을 들면 선생님이 귓속말로 질문을 듣고 영어로 번역해준 것을 따라 하는 수준이었지만, 어느 나라 국기가 제일 좋은지, 프랑스에 또 오고 싶은지, 다른 나라는 어디를 가봤는지 등 흥미로운 질문이 많아 즐겁게 대답해주었다.

특히 국기에 대한 질문은 당연히 한국의 태극기가 제일 좋고 두 번째로 좋은 국기는, 프랑스 국기인데 세 가지 색깔이 상징하는 바도 좋고 예뻐서 좋아한다고 대답해줬더니 선생님의 통역을 듣고 처음에는 실망했지만 곧이어 환하게 웃으며 좋아하는 아이들의 얼굴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정말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었다. 그 외에도 주말이나 오전 일을 마치고 나면 알렝씨네 가족은 항상 나를 데리고 나들이를 가곤 했는데 그 덕에 아무도 가보지 못했을 곳에 많이 가보았다.

그렇게 한 달을 지내고 나니 프랑스 사람들이 오만하다거나 거만하다는 말은 전혀 믿지 않게 되었다. 프랑스 인들은 프랑스어에 자부심이 커서 영어를 쓰면 싫어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었지만, 내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위해 프랑스어보다 영어를 써주려고 노력했고 영어를 못한다고 미안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영어를 못하는 경우에는 나를 위해 매우 천천히 말해주었기에 언어에 있어 큰 장벽을 느끼거나 차별을 느낀 적은 한번도 없었다. 어쨌든 나를 진짜 가족의 일원처럼 대해준 알렝 아저씨네 가족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나폴레옹의 체취가 묻어있는 곳, 퐁텐블로
두 번째로 가게 된 농장은 파리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유명한 퐁텐블로(Fontainebleau) 지역이었다. 그것은 나폴레옹이 살았던 퐁텐블로 성이 있는 지역으로 락 클라이밍과 퐁텐블로성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나는 그것을 모르고 갔지만 현재 퐁텐블로의 주인인 발렌틴(Valentine)씨가 운영하는 유기농 농장에서 일을 하게 되어 주말에는 다른 우퍼(wwoofer)들과 등산을 가곤 했는데 그곳에서 한 달이나 있으면서도 퐁텐블로 성에는 가보지 못했다.

그래서 마지막 날에 관광을 하려고 했는데 마침 그 날은 관광객을 받지 않는 날이었다. 울상이 된 나를 보고 내 호스트였던 델핀(Delphine)이 성의 관리자에게 전화해서 성에 들어갈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평소라면 관광객들로 북적 이는 퐁텐블로 성을 혼자서 여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넓고 커다란 정원도 아름다웠고 여전히 튼튼하게 서 있는 성도 너무나 멋졌다. 게다가 연못에는 백조가 우아하게 헤엄까지 치고 있어 마치 동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 퐁텐블로 성 투어로 내 프랑스 여행이 끝났지만 나는 아직도 프랑스에서 낚시하던 일이나 예쁜 마을들을 산책하며 낯선 이에게 Bonjour하고 웃으며 인사하던 일이나 사람을 만나면 볼에 쪽쪽 소리 나게 뽀뽀하던 비주, 시골 밤 하늘을 수놓던 수 많은 별들과 아침에 양들이 풀을 뜯던 소리, 아침엔 항상 잘 잤냐고 묻던 다정한 사람들, 간식시간에 먹던 바삭한 크로아상을 잊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