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in the Northern European Nature

북유럽 자연에서의 힐링

 

도시인은 피로하다. 하루의 대부분을 회색 빌딩숲과 디지털 세상에서 산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다시 눈을 감을 때까지 자연과 마주하는 일이 거의 없다. 문명의 이기를 즐긴다고 해도 사람은 자연의 일부다. 자연에서 태어나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자연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편안함을 찾아 도시로 떠난 사람이 다시 자연을 찾는 것은 순리에 가깝다. 핀란드의 숲에서, 깜깜한 밤 호수 한가운데에서 전에 못 느낀 평온을 느꼈다.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내 몸을 감싼 청정수에 도시에서 가져온 피로가 가만히 씻기는 듯했다.

 

에디팅 편집부 글과 사진 이두용 트래블 인플루언서

핀란드에 처음 갔던 건 9년 전이다. 10월 초, 한국은 유난히 따뜻했다. 서유럽 나라를 여러 번 방문했던 터라 북유럽은 처음이었지만 비슷하리라 예상했다. 가벼운 옷차림에 짐도 많이 챙기지 않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정답이 됐다. 당시 핀란드는 생각보다 정말 추웠다.

한국을 떠나오기 전에 온라인에서 검색해본 기온은 10~12도. 실제로 도착해보니 7~9도. 하지만 수도 헬싱키는 바다와 접하고 있는데다 당시 바람이 많이 불어서 체감온도는 많이 낮았다. 핀란드의 높은 물가 때문에 옷을 구입하지는 못했고 며칠간 입으려고 챙겨온 옷을 한 번에 껴입고 다녀야 했다.

자연스레 첫 핀란드의 인상은 춥고 물가가 높은 곳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돌아서는 길, 꼭 다시 오겠다는 다짐을 했다. 서유럽과 전혀 다른 이미지, 깨끗하고 정갈한 거리와 건물들, 친절하고 늘 미소를 보이던 큰 키의 사람들. 핀란드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웃었다.

그때와는 전혀 다른 따뜻한 계절, 꼼꼼하게 준비한 옷과 개인 물품, 적당히 수집을 마친 핀란드에 대한 정보. 오히려 당시에는 경험하지 못한 진짜 핀란드가 기대됐다. 그저 자일리톨의 나라로만 알고 있던 내게 북유럽 자연의 정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북유럽 감성, 북유럽 디자인

첫 관문 헬싱키. 온기를 느끼며 공항을 벗어났다. 몸과 마음에 여유가 있다. 헬싱키는 핀란드어로 헬싱키(Helsinki), 스웨덴어로 헬싱포르스(helsingfors)라고 부른다. 핀란드는 공식으로 핀란드어와 스웨덴어를 사용한다. 공용어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국민이 영어도 잘한다. 핀란드 남단 핀란드 만 연안에 위치해 있는 도시로 이곳을 중심으로 주변엔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국토가 우리나라 지도와 흡사한데 헬싱키는 여수 정도의 위치다. 1550년 스웨덴의 구스타브 1세가 처음으로 도시를 건설했다.당시 위치는 곶의 동부에서 북쪽으로 깊숙이 들어간 후미 안쪽에 있었다. 구스타브 1세는 대(對)러시아 무역의 거점으로 삼기 위해 이 도시를 건설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큰 소용은 없었다. 핀란드가 급속히 성장한 것은 투르쿠에 있던 수도가 옮겨온 1812년 이후다. 헬싱키 도심으로 들어왔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크고 작은 건물이 예전과 그대로다. 유럽이 좋은 이유를 꼽으라면 양손으로도 부족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시간이 지나도 크게 변하지 않는 고유함이 마음에 든다. 한두 달만 지나도 곳곳에 새로운 건물과 거리가 생겨나는 요즘 시대에 유럽의 도시는 고전과 세련을 오롯하게 지니고 있어 올 때마다 감동한다.

변하지 않은 듯한 헬싱키지만 2005년부터 북유럽 감성으로 디자인 도시를 지향하고 있다. 어느 순간 국내에도 꽤 인기를 모으고 있는 그 북유럽 감성, 북유럽 디자인이 이곳에서 시작되었고 여전히 변모하고 있다.

매년 8번 엄정한 심사를 거쳐 헬싱키 디자인 디스트릭트(Design District Helsinki) 라벨을 부여하는데 업종도 다양하다. 보석 세공, 디자인 및 골동품 가게, 패션 상점, 박물관, 미술관, 레스토랑, 호텔 등을 포함해 25개 거리에 200여 개의 업체로 구성돼있다.

모두 디자인 도시 헬싱키의 명성을 높이려는 방안이라고. 디자인 디스트릭트의 상징적인 센터는 디아나푸이스토 공원(Dianapuisto Park)이다. 여기에서부터 카르틴카우푼키(Kaartinkaupunki), 캄삐(Kamppi), 푸나부오리(Punavuori) 및 울란린나(Ullanlinna) 구역으로 디자인 지구가 이어진다.

디자인 박물관과 핀란드 건축 박물관도 디자인 지구 안에 위치하고 있어 핀란드의 북유럽 디자인과 건축에 대해 깊이 있게 알 수 있다. ‘얼마나 다르겠어’라고 생각하며 디스트릭트 라벨이 붙여진 한 패션 매장에 들어갔는데 나도 모르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달랐다. 옷감을 만드는 손길이 달랐고, 옷감에 수놓아 있는 패턴과 디자인이 달랐고, 옷의 라인이나 태가 달랐다. 패션에 문외한인 내가 이 정도라면 옷 좋아하는 사람에겐 이곳이야 말로 천국이다.

매장 가운데 전시된 신발에 눈이 갔다. 나무를 얇게 잘라내 곡선으로 신발의 뒷굽을 연출한 슬리퍼였다. ‘설마 진짜 신을 수 있는 건 아니겠지’ 싶어서 물어봤는데 이 매장에서 잘 팔리는 아이템 중 하나라고 한다. 자세히 보니 바닥과 닿는 아웃솔까지 고무로 덧대어 꼼꼼하게 만들었다.

헬싱키는 디자인 도시를 지향하면서 매주 금요일 헬싱키 디자인 디스트릭트를 둘러볼 수 있는 가이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동선별로 디자이너를 직접 만나 그들의 아이디어와 방향성 등을 들으며 작품을 둘러볼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선진국은 어려운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뭔가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거기에 맞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당연한 나라. 부러웠다.

시벨리우스의 영혼이 담긴 홀

핀란드의 북유럽 감성과 디자인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검색창에 북유럽을 쳐보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감성이나 디자인, 인테리어 등은 실제 이들의 모던한 삶과 생활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인간적이라 생각하는 이들. 핀란드의 최신 북유럽 감성과 디자인을 건축물로 옮겨 놓은 곳을 찾아 라티(Lahti)로 향했다.

이곳은 헬싱키에서 북동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베시야르비(Vesijärvi) 호수의 남쪽 끝에 있는 만(灣)에 위치해 있다. 핀란드어로 ‘lahti’는 만(bay)을 의미한다. 예로부터 가구공업의 중심지로 아직도 목재를 이용한 가구공장과 조립가옥공장이 많고, 목재 가공과 제재·합판 가공이 뛰어난 곳이다. 이곳에 거장 시벨리우스의 이름을 붙여 2000년 완공한 시벨리우스 홀(Sibelius Hall)이 있다.

시벨리우스(Jean Sibelius)는 핀란드가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다. 그는 조국에 대한 사랑을 주제로 다수의 음악을 작곡해 핀란드 국민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시벨리우스는 유년기에 헬싱키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했고 베를린과 빈에서 유학한 뒤 모교로 돌아와 교수를 지냈다. 브람스 같은 거장에게 호평을 받기도 했다.

국민적 대서사시 ‘칼레발라’를 비롯하여 ‘투오넬라의 백조’, 교향시 ‘핀란디아’ 등이 대표적이다.사실 시벨리우스를 기념하는 조형물과 건축물은 핀란드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헬싱키 한복판에 시벨리우스 공원(Sibelius Park)이 있다. 이곳에는 강철로 만든 파이프 오르간 모양의 기념비와 시벨리우스 동상이 세워있다. 600여 개의 강철 파이프로 이뤄진 기념비가 인상적이다.

헬싱키의 조형물과 달리 라티의 시벨리우스 홀은 그의 업적과 음악적인 혼을 기리고자 만든 건물이다. 오래전부터 나무 가공으로 뛰어난 라티 지역의 명성을 그대로 건축물에 녹여 북유럽의 모던한 감성을 담아 목재 건물로 디자인 했다. 놀라운 건 목조 건축물 하나를 짓기 위해 정부와 기관이 열화와 같은 지원과 관심을 쏟았다는 것이다.

건축가 한누 티카(Hannu Tikka)와 킴모 린툴라(Kimmo Lintula)는 시벨리우스 홀을 기획하면서 핀란드 숲에서 디자인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목조 건물의 시작을 알리는 말이었다. 시벨리우스 홀이 목재 건축물로 계획되고 난 뒤 핀란드 정부의 산림·목재 부문 책임자가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이어서 홀의 건축은 1996년 목재의 해(The Year of Wood 1996 / Time of Wood) 캠페인의 주요 프로젝트로 선정됐다.

오로지 혁신적인 목재 건축법을 모색하는 데에만 목표를 뒀다. 실제로도 시벨리우스 홀은 기념비적인 목조 건축물로, 지난 100년 간 핀란드에서 건축된 가장 큰 공공 목조 건물이다. 9만m3에 달하는 시벨리우스 홀 복합단지는 재건축된 카펜터스 공장(Carpenter’s Factory), 메인 홀(Main Hall), 이 두 곳을 연결하는 포레스트 홀(Forest Hall) 및 유리 통로로 연결된 콘그레스 윙(Congress Wing) 등 4개 구역으로 구성했다.

시벨리우스 홀은 2015년 핀란드의 에벤토 어워즈(Evento Awards 2015)에서 올해의 장소로 선정되었고, 트립어드바이저에서 여행객이 선정한 핀란드 랜드마크 Top 10에 꼽히기도 했다. 월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과 가디언(Guardian)은 시벨리우스 홀을 유럽과 세계 최고의 콘서트 홀 10곳 중 하나로 꼽았다.

자연과 조화를 이룬 장원

건축된 지 십 수 년이 지났는데 건물 안팎이 지금 막 완공된 것처럼 깨끗하다. 건물의 기둥부터 벽면, 천장 등 눈을 돌리는 곳마다 심플하지만 단순하지 않다. 북유럽 특유의 모던함이 느껴진다. 흉내 내지 않은 진짜다. 공연장 무대를 향해 곡선으로 에둘러 촘촘하게 놓인 의자에 앉아봤다. 공간감이 뛰어나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곁들어지면 금상첨화겠다. 공연장에 그저 앉아만 있어도 사방에서 나무 향과 함께 피톤치드가 흘러나오는 것 같다. 공연 하나를 보면 귀와 눈과 마음의 즐거움은 물론 몸까지 건강해지지 않을까. 다음에 온다면 좋은 공연 한 편 보고 가야지 싶다.

온통 나무로 지어진 건물을 만끽하고 나니 핀란드의 진짜 자연이 궁금하다. 숲과 호수의 나라로 불리는 이곳. 처음 왔을 때 수도 헬싱키만 봤던 터라 마음이 더 간절했다. 다시 고속도로에 올라 미켈리(Mikkeli)로 향했다. 미켈리는 헬싱키에서 240km 정도 떨어진 도시로 핀란드에서는 여름 휴양지로 가장 유명하다. 핀란드에서 가장 큰 사이마 호수(Lake Saimaa) 일대에 위치해 있어 곳곳에 크고 작은 휴양시설이 존재한다.
먼저 자연과 조화를 이룬 핀란드의 고택을 찾았다. 테르티 장원(Tertti Manor)이다. 장원(莊園)은 봉건적 토지 소유의 형태로 과거 귀족·영주의 독점적 특권이었다고 한다. 입구에 들어섰는데 중세 유럽을 무대로 한 영화의 세트처럼 예쁘다. 날씨가 흐려지면서 빗방울까지 떨어졌지만 문제 되지 않았다.

너른 정원의 꽃들과 저택, 사방을 에워싼 밀밭과 그 너머의 울창한 나무들. 건물에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이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540년 문서다. 정말 오래됐다. “전쟁을 위해 기병대를 육성할 토지”로 분류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모습에선 상상할 수 없다.

이후 1894년 아타미 퓔카넨(Aatami Pylkkänen)이 테르티 장원을 인수했다. 그리고 아들 리바리(Livari)가 건물을 개조하고 경작지를 개간했다. 지금의 모습이 갖춰진 것이 이 시기다. 1896년 이곳에 낙농학교가 설립되었고 열 명의 여학생이 입학했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이었던 에들라 아벤나이넨(Edla Ahvenainen)과 리바리가 1897년 결혼한다.

이후 테르티 장원은 부부의 터전으로 더 알차게 꾸며졌다.시대가 바뀌고 1978년 테르티의 경영권은 현재의 주인인 페피타(Pepita)와 마티 퓔카넨(Matti Pylkkänen)에게 승계됐다. 그들은 관광 및 전업농장에 집중하기로 결정했고 정원과 주변 일대를 리바리 부부가 살던 19세기 말과 비슷하게 복원했다.

덕분에 2001년 테르티 장원은 전통 보전 노력을 인정받아 핀란드 남동부의 건축 및 환경 예술상(Building and Environmental Art prized of Southeastern Finland)을 수상했다. 현재 이곳은 농장과, 상점, 카페와 레스토랑, 호텔로 운영되고 있다.건물 안으로 들어섰는데 핀란드에 사는 지인의 집이라도 온 양 포근하다.

180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사람이 살고 있는 흔적이 집 곳곳에 남아 있어 더 그렇다. 세련미를 위해 최신 시설로 바꾸거나 편의사항을 위해 사소한 것 하나 디지털로 바꾸지 않았다. 그저 집을 짓고 나서 자연이 시키는 대로 순응하며 시간을 살아낸 느낌이다. 최신 시설의 특급 호텔과 이곳 중 한 곳에서 휴가를 보낼 수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테르티 장원을 선택할 것 같다.

숲과 호수의 나라로의 입장

테르티 장원은 첫 단추였다. 이제 핀란드만의 자연을 만난다. 사이마 호수(Lake Saimaa) 근방에 있는 사한라티 리조트(Sahanlahti Resort)로 향했다. 미켈리에서는 차로 약 40분. 도로 양쪽 멀리 핀란드를 대표하는 자작나무와 소나무가 빽빽하다. 높다란 산봉우리 하나 없는 이곳이지만 숲과 호수가 이뤄내는 자연의 풍경은 알프스의 설산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다.

전혀 다른 맛이 느껴진다. 능선과 계곡, 봉우리로 이어진 산맥은 대자연을 자랑하는 나라들의 특징이다. 핀란드에는 높은 산이 없지만 자연만큼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데 바로 호수 때문이다. 레이크랜드라는 별명이 붙은 핀란드에는 국토 전역에 18만여 개의 호수가 있다. 그 중 80% 정도가 남부에 있다. 호수 주변은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호수의 청정수와 함께 맑고 깨끗한 공기를 만든다.

수도 헬싱키를 비롯해 남부 어디를 여행해도 호수를 만날 수 있다고 하니 대단하다. 리조트에 도착하니 건물보다 주변에 울창한 숲과 앞으로 펼쳐진 호수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18세기 원목을 잘라 합판 등을 만들던 제재소 부지였다. 인근의 울창한 숲에서 나무를 얻어 가공하고, 제품으로 완성된 나무는 배를 이용해 다른 지역으로 보내졌다.

말 그대로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명당이다. 호숫가를 따라 하늘로 길게 뻗은 나무들이 한 폭의 유화처럼 느껴진다. 숲으로 난 길을 따르는데 길가 곳곳에 산딸기 같은 열매가 보인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핀란드는 ‘베리(berry)’의 나라이기도 하다며 열매를 따서 내민다. 신맛이 전혀 없고 산딸기 특유의 향과 함께 단맛이 느껴진다. 신선하다.
호수의 물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에 섰다. 핀란드에는 호수가 많다 보니 호수에 들어가 청정수에서 수영하는 건 흔한 일이다. 마주하고 있는 사이마 호수는 바다처럼 넓어 보였다. 정말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착각이 아니다. 사이마 호수의 면적은 약 4,400㎢에 이른다. 1100만 명이 살고 있는 서울시 면적이 약 605㎢이니 7배가 넘는다.

최대 깊이는 86m, 평균 깊이는 약 17m다. 핀란드에서 가장 큰 호수면서 유럽에서 네 번째로 큰 천연 담수호다. 바다로 느껴질 만하다. 길이도 길다. 약 500km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보다 길다. 외곽 둘레는 1만5,000km. 사이마 호수에는 섬도 많은데 약 1만4,000개가 있다고 한다. 작은 바다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 넓은 호수는 빙하가 녹아서 형성되었다. 호수와 접한 도시도 많은데 유명한 곳으로는 미켈리, 사본린나, 요엔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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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마 호수는 세계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는데 그 이유 중 하나로 물범이 있다. 면적이 넓어 바다 같다고 생각했는데 물범이 서식한다고 하니 이 역시 대단하다. 이곳에 사는 물범은 멸종 위기 동물인 사이마 고리무늬 물범(Saimaa Ringed Seal)이다. 사이마 지역에만 서식하며, 약 200여 마리만 생존해 있다고 한다.

이 넓은 곳에 극소수만 살고 있기 때문에 자연에서 보는 일은 거의 힘들다. 자작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호숫가를 거닐었다. 자생하는 식물과 자연환경이 한국과 다르니 지나는 곳 모두가 이국적이다. 숨을 쉴 때마다 폐까지 들어오는 산소가 혈관을 따라 온몸 구석구석을 정화해주는 느낌이다. 머릿속에 가득했던 도시에서 가져온 잡념을 발 밑으로 슬그머니 내려놓으며 걸었다.

핀란드 하면 단연 사우나!

태양은 하늘 위에 선을 긋고 호수 너머로 사라졌다. 태양이 수평선 위로 흩뿌린 붉은 물감은 이내 하늘로 번지며 땅거미를 품는다. 한 순간도 놓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사방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호수 주위를 돌았다. 밤이 되고 사우나를 찾았다. 핀란드 하면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것 중 하나가 사우나(Sauna)다. 사우나라는 말도 핀란드어다. 이들은 사우나가 일상이고 몸에 배인 문화다. 핀란드 인구가 약 556만 명인데 핀란드에는 인구와 동일한 숫자의 사우나가 있다는 말이 있다.

조금 과장돼 보이지만 실제로도 약 300만 개 이상의 사우나가 있다고 한다. 리조트와 호텔 등에는 물론 공공시설과 가정집에도 하나씩 있다고 하니 놀라울 정도다. 핀란드에 사우나가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목재의 수급과 활용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국토의 대부분이 숲으로 돼 있어 사우나를 만드는 자재와 공기를 데우는 원료가 부족하지 않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덕분에 핀란드 어디를 여행하든 사우나는 쉽게 즐길 수 있다. 핀란드식 사우나는 건식이다. 더운 수증기로 몸을 뜨겁게 만드는 방법이다. 실온은 80~100℃지만, 건조하기 때문에 화상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사우나실 내부는 바닥과 의자, 벽면 모두를 나무로 만든다.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구조인데 핀란드에서 나왔다. 사우나실 한쪽 구석에는 우리나라의 아궁이처럼 생긴 화덕에 장작을 넣어 불을 때우면서 돌을 달구는데 그 위에 물을 뿌려 수증기를 만든다. 이것을 뢰일리(löyly)라고 부른다. 사우나 실에 자작나무 가지를 들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는데 마사지를 위해서다.

뜨거운 공기 때문에 자작나무 잎이 살짝 녹아 향기가 나면서 흐물흐물해지면 그것으로 온 몸을 때린다. 묘한 향도 나면서 온기로 데워진 몸에 자극이 돼 시원하기도 하다. 핀란드식 사우나는 알몸으로 즐기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이들은 백야일 때 가족이나 친구들과 알몸으로 사우나를 즐기는 것을 대중적이고 전통적인 행사로 생각한다.

이성친구들과도 아무것도 입지 않고 사우나를 즐긴다고 한다. 물론 사우나를 즐기면서 성적인 감정은 가지지 않는다고. 다만 최근에는 이성끼리 사우나를 즐길 경우 예의상 목욕수건이나 가운 정도는 걸친다고 한다. 다행인지 모르지만 며칠간 몇 군데 사우나를 다니면서 알몸의 상대를 마주치지 않았다. 나 역시 속옷에 목욕수건을 걸치고 있었다.
핀란드식 사우나는 실내에 있다가 밖으로 나오면 땀도 닦지 않고 찬물에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호수가 많은 레이크랜드의 장점이 여기에 있다. 호수 주변에 있는 사우나들은 찬물을 호수로 이용한다. 말 그대로 사우나 실에 있다가 나와서 호수로 뛰어드는 것. 핀란드를 여행하면서 이 점이 가장 놀라웠고 사랑스러울 만큼 좋았다.

개인적으로 뜨거운 것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사우나 실에 조금 앉아 있다가 밖으로 나와 호수로 뛰어들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사우나실과 찬물을 반복해서 오가는 것 역시 일반적인 방법이다. 밝은 조명 하나 없는 어두운 밤, 장대비가 쏟아져 호수 위에 수없이 잔상을 만든다. 그 시간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속으로 뛰어든다.

발이 닿지 않고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물이지만 가슴은 더없이 시원했다. 핀란드의 자연에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반응하는 기분이다. 머리까지 맑아진다. ‘비 오는 밤, 끝도 보이지 않는 핀란드 호수에 언제 다시 몸을 담가볼 수 있을까’ 지나는 시간이 아까울 만큼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