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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9월호] 대륙분류 : [유럽] 국가분류 : [러시아] 도시분류 : [상트페테르부르크]
기사제목
[COVERSTORY]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또 오기 위한 주문
러시아의 역사박물관, 겨울 궁전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유독 러시아의 다른 지역에서 보기 어려운 화려하고 예쁜 건물이 많다. 유럽의 문화와 건축물을 경험하고 보고 온 표트르 대제가 특별히 세운 도시여서이기도 하지만 화려하고 다소 사치스러움까지 느껴지는 유적과 유물들은 표트르의 죽음 이후의 것들이 더 많다.
이곳은 현재 궁전과 함께 내부의 여러 공간을 활용해 에르미타주 박물관(Hermitage Museum)으로 사용되고 있다. 광장에서 바라보이는 성은 겨울 궁전이지만 내부는 박물관인 셈이다. 궁전 규모가 워낙 크고 소장된 작품이 워낙 많아 세계 3대 박물관으로 손꼽히기도 한다. 보통은 세계 3대 박물관으로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과 ‘로마의 바티칸 박물관’, ‘런던의 영국 박물관’을 꼽는다. 하지만 다른 한쪽에선 로마의 바티칸을 빼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을 포함시킨다. 이곳에 소장된 작품이 27만 점에 이르고 전시 동선은 총 27km에 달하기 때문에 규모만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오래전이라고 낡고 뒤처진 게 아니다.세계 각국에서 가져오거나 선물로 받은 작품도 여럿이다. 한쪽 벽에 걸린 중국 그림이 인상적이다. 화려함과 사치스러움에도 보이지 않는 정돈과 규칙이 존재했다. 걸음마다 극찬이 쏟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문맹인 데다가 사치가 심하고 음주벽까지 있었으나 표트르에게는 극진했다고 한다. 그녀의 본격적인 사치가 시작된 건 1725년 표트르 대제가 사망한 뒤부터 다. 근위부대를 이용한 멘시코프 원수의 계획으로 여황제에 올랐는데, 멘시코프 등이 만든 추밀원에 권한을 넘기고 황궁의 화려한 삶을 영위하며 궁전을 꾸미고 보석과 예술품을 모으는 데 힘을 썼다고 한다.
예카테리나 궁전에서 걸어 나오는 길 한편에 손바닥만 한 교회 하나가 서 있다. 사람이 열 명이나 들어갈 수 있으려 나 싶은 이 작은 교회는 화려하고 큰 성과 어울리지 않은 데다 근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궁전 유적에 왜 이런 건물이 남아 있는지 가이드에게 물어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러시아가 사랑하는 국민 시인이자 소설가인 ‘알렉산드르 푸시킨(Aleksandr Sergeevich Pushkin)’이 어린 시절 영감을 얻고 실제 다니기도 했던 교회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예카테리나 궁전이 있는 지역 이름이 ‘푸시킨’이기도 하다. 사실 러시아엔 수많은 예술가가 있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대표하는 작가 중엔 푸시킨이 으뜸이다.
이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출생하거나 여생의 많은 시간을 이곳에 머물며 대표작품을 만들었다. 이들 외에도 무수한 예술가가 이곳에서 예술혼을 불태웠으니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러시아의 예술 도시로 꼽는 것도 과한 일은 아니다. 장식미술로 러시아와 유럽을 넘어 오늘까지 세계에서 최고로 불리는 사람도 있다. 제정 러시아 때의 보석 디자이너이자 세공사였던 ‘파베르제(Karl Gustavovich Faberge)’다. 달걀 껍데기에 보석과 그림으로 화려한 장식을 한 ‘파베르제 달걀’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그 고유명사가 바로 파베르제의 작품에서 나왔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보석 세공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독일에서 공부하며 금세공을 익힌 뒤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 밑에서 보석세공 기술을 터득했다. 1870년 가업을 이어 본격적인 보석 장식품 작업을 했는데 기존의 전통적인 디자인과 세공법을 거부하고 파격적이면서도 화려하고 섬세한 작품을 쏟아내 단 기간에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덕분에 파베르제 공방에서 만든 달걀 작품을 포함한 예술품이 10만 점에 이른다고 한다. 대단한 숫자다. 그중 진품 중에 진품인 파베르제가 공을 들인 50개의 작품은 현재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 출처가 불확실한 상태다.현재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들은 파베르제의 공방에서 만들어진 작품을 비롯해 여전히 러시아 최고의 예술품 브랜드로 남아있는 파베르제의 상품들이다. 유리관 안에 담긴 작은 달걀 안에 육안으로 보기 힘들 정도의 정밀한 그림과 작품이 들어있다. 가만히 보다가 꽃 한 송이 사람 얼굴 하나를 발견하면 놀라서 감탄사를 쏟아낸다. 작품 앞에 선 사람들은 처음엔 멍하니 보다가 그 안에 숨겨놓은 작품 속 작품을 발견하면 미소를 띄우고 사진을 찍기도 하고 손뼉을 치기도 했다.
러시아의 어느 도시와 비교해도 남다른 풍경, 화려함, 아름다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여행하며 도시를 표현할 때 잘 사용하지 않는 형용사를 남발했다. 신기하리만큼 꾸준히 이어진 악천후에도 도시의 빛은 줄어들지 않았다. 아쉬움을 꾹꾹 가슴에 눌러 담으며 다음을 기약한다. ‘다음에 올 땐 실내에 들어서지 않으리라.’ ‘태양을 마주하고 찬란하게 빛나는 도시의 건축물과 예술작품을 마주하고 거리와 광장에서 여유롭게 카메라 셔터를 누르리라.’ 귀국길에 오르며 계속 마음에서 되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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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 Petersburg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상징과도 같은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히는 ‘겨울 궁전(Winter Palace)’이 좋은 예다. 이곳은 1711년 처음 지어졌을 때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고 한다. 검소하고 실용적인 네덜란드 건축물과 생활 모습에 큰 감동을 받은 표트르 대제가 철저하게 실용주의를 추구했기 때문에 규격과 용도에 맞춰서 지어졌다. 하지만 그가 죽은 뒤에 그의 딸인 ‘엘리사베타(Elisabeth Petrovna)’가 화려하고 큰 궁전을 원해 대대적인 증축이 이뤄졌고 현대의 바로크식 건물로 바뀌었다고 한다. 10년간 진행된 궁전의 공사는 도시에도 영향을 미쳤고 이후 많은 화려한 건축물이 생겨났다.
이곳의 작품들은 리투아니아 출신의 러시아 여자 황제였던 예카테리나 1세(Ekaterina I)가 미술 컬렉션을 수집하면서 모이기 시작됐다. 그녀는 러시아에 방문한 베를린의 상인에게서 대량의 그림을 사들였고 이후 겨울 궁전 동쪽에 별관을 지으며 사들인 작품을 보관하며 그 숫자를 늘려갔다. 그녀가 생전에 이미 4,000점에 이르는 명작 회화들과 3만8,000여 권의 책들, 1만 점이 넘는 보석 등 수많은 작품과 유물을 보유하면서 자연스레 그녀의 사후에 이곳은 작품의 보관 장소로 쓰이게 됐다.
구소련 당시 많은 작품을 해외에 팔기도 했지만 차후 박물관으로의 의미가 커져서 수집된 작품들을 분류해 지금의 박물관으로 변모하게 됐다. 이곳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루벤스와 렘브란트 등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 화가의 작품을 시작으로 바로크, 인상파와 신인상파의 작품과 러시아 예술가들의 작품이 대거 전시돼 있다.
아무리 러시아라고 해도 세계 3대 박물관의 힘은 크다. 어느 공간에 들어서도 인파로 넘쳐났다. 사람의 물결을 따라서 방을 이동하며 벽에 걸린 그림과 천장에 수놓인 작품을 보는 재미도 나쁘지 않다. 유럽의 벽화, 천장화를 흠모해서 똑같이 따라서 그려놓은 작품들도 여럿이다. 진짜에 비길 정도로 아름답지만, 의도는 왜인지 귀엽다. 수십만 점의 작품 때문에 1분에 한 작품을 봐도 수년이 걸린다는 이곳의 소장품들을 바쁜 일정에 주마간산 격으로 지나는 것 같아 미안하고 아쉬웠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여름궁전
1714년 착공된 이래 9년이 지난 후 완공되었다고 알려져있지만, 실제로는 표트르 대제가 사망한 뒤에도 계속 공사가 이어져 150년이나 지난 후 공사가 끝이 났다. 워낙 오랜 시간 화려하게 건축된 터라 러시아와 유럽에서 이름을 날리던 많은 건축가들과 예술가들이 총동원되었다. 현재 20여 개의 궁전과 140개의 분수, 7개의 아름다운 공원이 남아있다. 여름 궁전의 상징이기도 한 화려한 중앙 분수는 물의 낙차를 이용해서 전기를 이용하지 않고도 계속 물을 뿜어내게 설계했다. 우리나라는 조선 21대 왕인 영조 시대였는데 오버랩해서 생각해보면 전혀 다른 문화와 건축물을 영위했던 것 같다.
비가 잠깐 그쳤을 때 궁전에 도착했다. 비를 가득 머금은 구름을 받히고 있는 궁전과 정원이지만 아름다웠다. 보석은 어떤 상황에서도 그 상태에 맞춰서 빛난다는 생각이 든다. 시원하게 뿜어내는 분수의 물줄기가 분주 일대를 에워싼 황금 조각들과 함께 반짝거린다. 숲이 감싸 안은 분수를 따라 걷는 기분도 묘하다. 시대를 거슬러 그 시절 왕과 귀족의 마음을 짐작해 보았다. 권력이 얼마나 대단했을지 자부심이 또 얼마나 강했을 지 느껴진다.
궁전 실내는 여느 박물관에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인테리어 소품과 당시 왕족과 귀족이 사용했던 가구, 그릇, 그림 등이 전시돼 있다. 방의 사방 벽과 천장까지 꼼꼼하게 문양을 넣어 금박을 한 섬세함에 입이 벌어진다. 당시에는 상상도 못 했을 선진 기술로 만들어진 오늘날에도 세련되어 보이는 그릇과 장신구도 많다.
화려함의 절정, 예카테리나 궁전(Catherine Palace)
예카테리나의 화려함에 대한 집착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많은 유적과 유물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예카테리나 궁전(Catherine Palace)에서 절정을 드러낸다. 이곳은 러시아에서 가장 화려하고 눈부신 건물 중 하나로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에 포함될 정도로 가치도 높다.
18세기 러시아 황제들이 무더위가 찾아오면 화려한 분수로 가득한 여름 궁전보다 오히려 별장으로 더 선호했던 곳이 이곳이라고 한다. 예카테리나 궁전은 사치스러운 내부 장식으로 명성이 높았는데, 특히 방 전체를 보석 호박(琥珀)으로 꾸며놓은 공간이 압권이다. 방을 만든 판과 거울, 금박을 입힌 장식으로 치장된 이곳은 여전히 ‘호박 방’으로 불린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내부의 호박 장식이 완전히 벗겨져 외부에 약탈당했었다. 외부의 원형도 대부분 사라져 폐허가 되었다. 현재의 호박 방은 새로운 호박을 이용해 당시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2003년까지 복구해서 문을 열었다고 한다. 과거의 호박 방은 아니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터라 평일에도 몇 시간씩 줄을 서야 입장이 가능하다.
연일 내리는 비 때문에 관광객들 역시 실내만 찾다 보니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잠깐 볼 수 있는 호박 방은 포기해야 했다. 정원과 궁전의 외관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냈다. 지금이라도 여왕이 머리에 왕관을 쓰고 등장할 것 같은 화려한 정원엔 언제 처음 피었는지 모를 꽃과 나무가 가득하다. 궁전에서 내려다보이는 멀리 호수엔 대형 백조 조형물이 바람에 이끌려 유유히 떠다닌다. 최근에 만들어졌을테지만 궁전과 어울려 아름답다.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관광객으로 붐볐지만, 마음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예술가의 영혼이 머무는 도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로 한국에서도 친숙한 푸시킨. 그는 38세의 길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희곡과 시, 소설 등 다양한 문학 장르에 걸쳐 풍부하고 다채로운 문학 세계를 펼쳐 모두 인정받았다. 러시아인의 푸시킨 사랑은 어느 도시에서든 찾아볼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그의 동상이다. 도시마다 명소에는 푸시킨 동상을 세워 그를 칭송하고 자랑스러워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도 가장 중심지라 할 수 있는 네프스키 대로 한가운데 미하일로프 광장에 푸시킨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파베르제의 달걀’ 작품의 시작은 1885년 알렉산드르 3세가 황후 페오도로브나에게 선물하기 위해 파베르제에게 의뢰해 만든 암탉 달걀(Hen Egg)이다. 그 뒤 매년 부활절 때마다 왕족과 많은 귀족의 주문을 받아 각자의 요청과 특징에 맞는 화려한 달걀 장식품이 탄생했다. 그의 화려한 작품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자랑이기도 한 파베르제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그의 섬세한 세공법과 독특한 기술 때문에 유럽 전역에서 주문이 이어져 한 때는 700명 이상의 예술가와 기술자가 그의 공방에서 일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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