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 Field_Indonesia_Bintan

 

The Island, to reset body and mind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는, 섬

 

성경에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이 있다. 새롭고 소중한 것은 그것을 대하는 태도나 방법도 새로이 하라는 뜻이다. 어릴 때는 새해를 맞으면 새 달력을 벽에 걸면서 크고 작은 다짐을 했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당연한 듯 대부분의 다짐이 1월도 채 넘기기 전에 수포로 돌아가곤 했지만 늘 ‘처음’이라는 마음으로 새해를 대하곤 했다. 어른이 되면서 어느 순간 ‘새해’나 ‘처음’이라는 말이 그저 통과의례의 하나로 인식돼버렸다. 이따금 ‘올해는 oo를 해봐야지’라고 계획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면 몇 달이 훌쩍 지나버리기 일쑤였다. 마주한 업무를 하다 보면 어느새 연말이 찾아오고, 다른 한해를 맞곤 했다. 몸과 마음의 여유가 부족해서 그렇다. 새해를 오롯하게 맞으려면 사실 리셋이 필요하다.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새 힘을 북돋아 줘야 한다. 이때 적절한 처방전은 단연 휴양지에서의 쉼이다. 2020년을 목전에 두고 빈탄으로 떠날 이유는 이미 충분했다.

에디팅 편집부 글과 사진 이두용 트래블 인플루언서 취재협조 인도네시아 관광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방법, 빈탄

2020년 첫 단추를 새롭게 맞이하기 위해 급부상 중인 휴양지 빈탄으로 향한다.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 한겨울, 따뜻한 동남아시아 해변에 앉아 몸과 마음을 정비한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간질인다.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조용하고 깨끗하기로 소문난 섬 빈탄은 사실 최근 떠오른 휴양지가 아니다. 1991년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 정부가 공동 투자 개발 계획을 발표하면서 각종 휴양시설과 리조트, 해양스포츠 시설이 대거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후 동남아시아에서 손꼽는 휴양도시로 우뚝 섰다. 한국에서 주목받은 것도 처음이 아니다. 최고의 허니문 여행지인 발리와 사이판, 하와이, 괌 등을 제치고 2000년부터 몇 년간 예비 신혼부부가 선호하는 여행지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1999년 당시 최고의 배우였던 손지창·오연수 부부가 이곳의 명예대사로 초대되면서 신혼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각종 매스컴에서 스타 커플의 허니문 여행지 빈탄을 대서특필했고 자연스레 수년간 인기 여행지로 자리매김했다. 그러고 보니 20년 만에 평행이론처럼 국내에서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인도네시아에 있지만 싱가포르와 더 가까워 보통은 싱가포르 창이공항을 통해 왕복한다. 한 번의 여행으로 두 나라의 매력을 모두 만끽할 수 있는 셈이다. 빈탄으로 향하기 위해 먼저 싱가포르로 날아갔다. 아시아에서 가장 깨끗하고 정비가 잘 된 나라 중 하나인 싱가포르는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는 물론 쇼핑으로도 손색이 없다. 

빈탄으로 휴양을 겸해 왔다가도 하루나 이틀 여유를 내서 돌아보기에 좋다. 개인적으로는 최근에도 몇 번 다녀온 터라 연말을 맞아 왔으니 빈탄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싱가포르 빈탄까지는 창이공항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타나메라 페리 터미널의 페리를 이용하면 된다. 하루 5~7회 빈탄으로 향하는 배가 있다. 소요 시간은 50분 이내. 페리 수속을 밟으며 짐을 부치고 CIP 라운지에서 음료 한 잔 마시며 앉아 있으니 벌써 휴양지에 온 듯 몸과 마음이 노곤해진다. 

공항에서 짐을 찾는 번거로움도 싫다면 플라이&페리(fly&ferry) 서비스를 이용하면 좋다. 싱가포르에서 짐을 찾지 않고 바로 빈탄으로 짐을 보낼 수 있다. 골프백이나 가족을 동반해 무거운 짐이 있는 승객에겐 괜찮은 서비스다. 리아 빈탄을 이용하면 골프백과 짐을 항구에 있는 전담 카운터에서 리조트까지 운반해 준다고 한다. 

드디어 페리에 올랐다. 한국에서 함께 떠나온 일행들과 통성명을 하고 일정에 관해서 얘기하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다. 싱가포르와 빈탄의 거리가 생각보다 가깝다. 설렘이 순식간에 가슴까지 차오른다. 기분 탓이겠지만 도시의 공기와 휴양지 공기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페리 밖으로 나오자마자 빈탄의 산소를 한껏 들이켜며 첫인사를 나눴다.

관광객만을 위한 리조트 천국

빈탄 항구에 내려서 바로 숙소로 이동했다. 차 창밖으로 보이는 풍광이 묵음처리라도 된 듯 너무 고요하다. 울창한 동남아시아 숲 한가운데 깨끗하게 정비된 도로가 인상적이다. 숙소로 향하는 길에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빈탄이 새로운 건 다른 어떤 휴양지보다 안전하고 깨끗하다는 것인데, 그것이 가능한 건 섬에서 관광단지를 지정해놓고 섬에 사는 사람들과 분리했기 때문이다. 

섬 원주민의 삶을 들여다보며 함께 어울리고 싶은 사람에게는 아쉬울 수 있지만, 인도네시아 정부에서 이 구역에 머무는 방문객의 온전한 휴식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이라 오히려 신뢰가 간다. 원한다면 관광단지 밖을 다니는 방법도 있으니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일정 내내 머물기로 한 곳은 카시아 빈탄(Cassia Bintan) 리조트다. 이곳은 현대식 디자인에 알록달록한 컬러로 건물 내·외관 벽면에 칠을 하고 센스 있는 캐릭터 그림으로 친근함을 높였다. 들어서자마자 휴양지 숙소 느낌이 물씬 난다. 객실은 아파트나 고급 펜션의 장점을 조합해놓은 듯 취사 시설과 주방용품이 깔끔하게 마련돼 있다. 집을 떠나왔어도 세계 어디서든 집밥을 선호하는 사람에겐 이곳이 명당이다. 

넓은 로비에서는 끝없이 펼쳐진 에메랄드빛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물론 바다 뷰를 선택하면 자신의 방 발코니에서도 바다와 마주하며 빈탄의 낭만을 즐길 수 있다. 카시아 빈탄을 추천할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그중 하나는 어깨를 나란히 한 곳에 앙사나 빈탄(Angsana Bintan) 리조트가 있고 언덕 위로는 반얀트리 빈탄(Banyan Tree Bintan)이 있다는 것이다. 이 세 곳은 계열사로 장단점을 공유하며 모여 있다. 나는 카시아 빈탄에 묵으면서 조식과 여유시간의 수영을 앙사나 빈탄 풀에서 즐겼다. 

 

관광지와 휴양지는 엄연히 다르다. 관광지는 관광이 주목적이고, 휴양지는 당연히 휴양이 목적이다. 빈탄은 다도해 인도네시아에서 세 번째로 큰 섬으로 전적인 휴양지다. 덕분에 천혜 자연을 즐기며 쉴 수 있는 리조트와 호텔 등 숙소 선택의 폭도 넓다. 우선, 카시아 빈탄을 시작으로 관광단지 내 13개의 대형 럭셔리 리조트가 있다. 또한 4개의 골프장과 다양한 즐길 거리, 먹거리 등 휴양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를 꼼꼼하게 갖췄다. 말 그대로 지친 몸만 살포시 들어왔다가 온전히 힐링하고 쏙~ 빠져나가면 된다. 골프를 좋아하고 휴양지에서 자주 이동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겐 지척에 라구나(Laguna) 골프장이 있는 반얀트리 리조트가 딱이다. 빽빽하게 숙소 주변을 둘러싼 동남아시아의 자연을 만끽하며 나만의 인피니티풀에서 수영을 즐기고 한겨울에도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필드를 도는 일, 상상만으로도 절반은 쉼을 얻은 듯 근사하다. 

어서와! 럭셔리한 숙소는 첨이지?

빈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리조트로 골프장은 물론 산해진미와 다양한 해양레포츠까지 즐길 수 있는 곳이 있다. 이미 국내에서도 아는 사람은 찾아서 간다는 휴양 명소 빈탄 라군 리조트(Bintan Lagoon Resort)다. 무엇보다 300ha(헥타르) 부지에 펼쳐진 호화시설이 특별한데, 스노클링과 제트스키, 카약, 카누, 수상스키, 스쿠버다이빙 등 다이내믹한 해양 스포츠는 물론 크로켓, 양궁, 레이저 퀘스트, 야간에도 즐길 수 있는 조명 테니스장, 포켓볼장, 탁구대 등이 있다. 300ha가 약 91만 평 규모니 대단하다. 골프 코스도 이곳의 자랑 중 하나인데 전설의 골퍼 이안 베이커와 잭 니클라우스가 공동 설계한 것으로 알려진다. 바다가 펼쳐진 천연 지형을 감상하며 라운딩 할 수 있는 ‘시뷰(Sea View) 코스’는 1999년 아시아 5대 챔피언십 코스로 선정되면서 아직 동남아 최고 수준으로 통한다고. 

골프장을 얘기하면 빈탄을 다시 보게 할만한 곳이 따로 있다. 1999년 US 골프 다이제스트가 선정한 세계 100대 골프장 중 하나면서 아시아 최고의 골프장인 리아 빈탄 골프 클럽(Ria Bintan Golf Club)이다. 신이 빚은 자연지형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인간이 그 위에 골프장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쉽다. 골프장이 지나치게 아름다워서 골프 여행을 가장해 그냥 이곳으로 떠나오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싶다. 

굽이진 해변을 따라 이어진 육지 위에 18개 홀의 오션코스가 있고, 울창한 숲이 끌어안은 평지 위에 9개 홀의 포레스트 코스가 있다. 골프에 문외한이라 용어나 즐기는 방법을 전혀 모르는데도 그냥 골프장을 거닐거나 카트를 타고 곳곳을 누비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골프를 배우지 않은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라운딩하면서 이곳의 터줏대감인 원숭이의 응원을 받는 것도 재미다. 나무에 매달려 있다가 필드로 내려와 사람과 인사하기를 즐기는데 사납거나 위협적이지 않다.

빈탄을 다시 찾게 되는 이색숙소

진짜 이색적인 숙소를 찾는다면 단연 둘로스 포스 더 쉽 호텔(Doulos Phos The Ship Hotel)이 으뜸이다. 이 호텔은 1914년부터 망망대해를 호령하던 SS 메디나(SS Medina)라는 이름의 대형 크루즈였다. 100년 가까이 전 세계를 누비던 이 배는 2009년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운행한 여객선’이란 타이틀을 얻으며 은퇴했다. 그리고 105년이 지난 현재 빈탄 페리 터미널 인근 해변에서 과거의 추억을 되살려 특급 호텔로 변신했다. 새 출발에 맞춰 이름도 그리스어로 ‘종의 등불’이란 뜻의 둘로스 포스로 개명했다. 이 호텔이 특별한 이유는 호화 크루즈의 모습과 시설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호텔의 품격은 높이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매 층과 복도를 따라 연결된 104개의 안락한 객실과 수영장, 도서관, 스파, 레스토랑에 해양 박물관까지. 여느 고급 리조트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언제든 다시 출발할 것 같은 생동감 넘치는 크루즈와 바다가 끌어안은 리조트의 조화는 둘로스 포스 더 쉽 호텔이 아니면 느낄 수 없을 것 같다. 

일행을 안내하던 호텔 CEO 에릭 쇼(Eric Shaw)가 객실 창가에 앉아 재치 넘치는 동작을 취한다. 노년의 신사가 이리 맑은 표정을 지을 수 있다니 부럽다. 그는 ‘대형 크루즈에서 호텔로 다시 태어난 둘로스 포스가 새로운 100년의 역사를 써 내려갈 것’이라며 자신했다. 그의 밝은 미소가 어떤 굳은 각오보다 확신이 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