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n for the desert miracle

사막의 기적을 향해 달려가다

 

태어나 처음 여행하는 미국. 그동안 수많은 나라와 도시를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 “미국은 어디 어디 가봤어?”라고 물으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몇몇 지인은 내가 미국에 가보지 못한 걸 꽤 흥미롭게 생각하기도 했다. 미국이 여행의 정점은 아닌데…. 그런저런 이유로 미국에 오게 되면 반드시 차를 빌려서 여행하고 싶었다. 곳곳을 더 많이, 꼼꼼하게 다녀보고 싶은 욕심에서다. 실제로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발을 디디고 처음 한 일도 한국에서 예약해놓은 차를 픽업하는 일이었다.
에디팅 편집부 글과 사진 이두용 트래블 인플루언서

 

사실 낯선 곳에서의 운전을 좋아한다. 요르단에 살 때 차를 빌려서 여러 번 전국을 여행하기도 했고, 호주에서, 일본에서, 동남아시아와 유럽 여러 나라에서 직접 운전하며 많은 곳을 다녔다. 그리고 드디어 미국에서도 꿈을 이뤘다. 이번 달은 지난 3월호 로스앤젤레스 명소에 이어 서부를 여행한다. 국내에 많이 소개되지 않은 스폿을 돌아본 뒤 약 500km를 달려 라스베이거스로 향하는 일정이다. 도시를 벗어나 사막 도로에 오르자 슬롯머신에서 잭팟이라도 터진 듯 흥분되기 시작했다.

 

한국과 로스앤젤레스의 우정

미국에서 어릴 적 친구를 만났다. 1995년 로스앤젤레스에 이민하면서 자주 보지 못했던 친구다. 수년에 한 번씩 한국에 오곤 했지만, 서로의 일정으로 마주 보고 오래 이야기하기엔 쉽지 않았다. 이번 미국 여정을 준비하면서 친구의 일정만 괜찮다면 최소 두 번은 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시간을 조율했다. 만남의 장소로 ‘우정의 종(Korean Bell of Friendship)’을 추천한 건 친구다. 미국에서 한의사를 하고 있는 친구가 자신의 병원과 멀지 않은 곳에 한국과 로스앤젤레스에 뜻 깊은 장소가 있다며 그곳에서 보자는 제안을 했다. 오랜 친구와의 만남인데 이름도 ‘우정의 종’이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곳의 공식 명칭은 산 페드로 우정의 종(San Pedro Korean Bell of Friendship)이다. 산 페드로는 이곳의 지명이다. 1976년 박정희 대통령 집권 당시, 미합중국의 독립 200주년을 기념하며 한국과 미국 두 나라의 우의와 신의를 두껍게 하자는 뜻에서 대한민국 국민이 미국 국민에게 기증한 우정의 선물이라고 한다. 망망대해가 내려다보이는 엔젤스 게이트(Angel's Gate) 공원 언덕에 세워진 종각이 인상적이다. 풍경과 어우러진 종각만 보고 있으면 우리나라 남해에 와있는 기분이다. 주차장에서 종각으로 향하는 입구에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나란히 서 있다. 인근 야자수만 없었다면 영락없이 우리나라다. 종각 안에는 큼지막한 종이 설치돼있다. 이것이 우정의 종이다. 서울 종각에 있는 보신각종과 모양도 크기도 비슷해 보인다. 실제 크기는 우정의 종이 조금 더 큰데 무게는 보신각종이 2t이나 더 무겁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종의 외관에 새겨진 문양이 멋스럽다. 주석을 주재료로 동, 금, 은을 섞어 만든 이 종은 한국의 종이 가지는 특색과 우아한 전통미를 녹여냈다고 한다. 종의 고리에는 용이 조각되었고 그 위에는 소리가 울려 퍼질 수 있게 음통이 나 있다. 종의 둘레 네 곳에는 한미 두 나라의 자유와 독립, 평화와 번영을 기원하는 여신의 모습이 나란히 새겨져 있다. 그리고 종의 아래와 위 가장자리에는 한국의 국화인 무궁화로 띠를 둘렀다. 이국땅에서 느닷없는 애국심이 발동한다. 자랑스러움이 느껴졌다. 이 종은 상징물로의 의미뿐 아니라 타종도 한다. 서울의 보신각종과 똑같이 매년 1월 1일 0시에 새해의 시작과 함께 타종식을 연다. 타종식이 열릴 때면 많은 한국 교민이 모여서 새해를 기념하며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기도 한다고. 새해뿐 아니라 광복절이나 중요한 일정이 있는 날에도 타종과 함께 사물놀이 공연 등 한국 전통행사를 열기도 한다. 한국인이라면 자긍심을 갖기에 충분한 곳이 맞다.

 

View 절대 명소 교회와 스타벅스

친구를 만나 우정의 종각에서 담소를 나눈 뒤 함께 차를 타고 드라이브 코스에 올랐다. 인근에 사는 사람에겐 꽤 유명한 동선이라고 한다. 산 페드로 해변을 따라 20분 정도 달리다가 우측 언덕으로 꺾어 오르자 우거진 숲 사이에 유리로 된 건물이 눈에 보인다. 유리교회라고 불리는 ‘웨이퍼러스 채플(Wayfarers Chapel)’이다. 이곳은 실제 교회인데 예배당으로 보다는 예식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가장 유명한 예식장’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 국내에서도 유명한데 2003년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올인>에서 남녀 주인공 이병헌과 송혜교가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드라마 방영 이후 한국 사람의 결혼식이 크게 늘었고 MBC 아나운서였던 백지연 씨도 이곳에서 결혼했다고 한다. 세계적 예식 명소다 보니 예약하고 보통은 1년 이상 기다리는 건 필수다. 예식이 적게는 하루에 두 번, 많게는 여섯 번이나 치러지는데 본당 사용료만 평일 2,900달러 주말 3,900달러 수준이다. 꽃과 장식, 별도의 옵션이 붙으면 비용은 점점 늘어난다. 교회지만 예식만으로 수입이 쏠쏠하다.

 

이곳의 역사를 보면 단순히 예식장이라고 치부하기엔 아쉽다. 1920년대 후반 스웨덴 이민자였던 엘리자베스 슈렌버그(Elizabeth Schellenberg) 부인이 태평양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교회를 짓고 싶어 했다. 그 꿈을 들은 다른 이민자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땅이 적합하다고 생각해 기증했고, 유명 건축가인 로이드 라이트(Lloyd Wright)가 교회 디자인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건축이 가시화됐다. 하지만 시공과 함께 다양한 문제가 생겼고 2차 대전까지 발발하면서 설립 예배는 1949년 7월에야 가능했다. 교회는 1951년에 완공했고,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자연과 어우러진 이곳은 종교와 상관없이 둘러보기에도 충분히 아름답다. 건물 외관의 디자인과 주변 조형물, 부대시설이 70년 전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상상이 안될 정도로 현대식이다. 최근 완공했다고 해도 믿을 만큼 수려하고 관리도 잘돼있다. 이 교회는 외관만큼이나 종파도 독특한데 18세기 스웨덴에서 과학과 수학, 물리학 등에 통달했던 에마누엘 스웨덴보그(Emanuel Swedenborg)의 신앙 이념을 따른다. 에마누엘은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착한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교리로 신비주의 신학을 이끌었다고 한다.

개인적 이념을 종교에 적용한 이유로 정통 기독교에서는 이단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본당 주변의 통로엔 벽돌로 길이 나있는데,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린 사람과 장례식을 한 사람의 간략한 메모와 이름, 날짜 등이 적혀 있다. 사연을 읽으며 한 걸음씩 걷는 것도 의미가 있다. 유리교회에서 10여 분 달리면 미국의 커피 체인 ‘스타벅스(starbucks)’가 나타나는데 이곳 역시 명소다. 골든 코브 쇼핑센터(golden cove shopping center)에 위치한 이 커피숍은 로스앤젤레스는 물론 미국 내에서도 아름다운 뷰로 손꼽힌다. 예전엔 유리교회에 들렸다가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가는 통과의례 형태였는데, 지금은 탁 트인 바다를 마주하고 커피를 즐기기 위해 오는 사람도 많다고. 오랜 친구와 바다를 향해 앉아서 마시는 커피가 달달했다. 수년만의 만남인데 아무 말 하지 않고 바다를 보고만 있어도 좋았다.

 

부자와 예술가들의 바다

로스앤젤레스를 떠나 어바인(Irvine)으로 내려왔다. 사실 65km 정도 떨어져 있어서 차량으로는 4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더욱이 미국은 도로 시설이 잘돼 있어서 도시 간 이동은 막히지 않는 편이다. 어바인은 2000년 전부터 아메리카 인디언 통바(Tongva)족이 거주하던 곳이다. 1864년 제임스 어바인(James Irvine) 일행이 멕시코 토지를 부여받아 목장을 운영하면서 마을을 형성했다. 최초엔 목장과 농장 등의 농업이 주를 이루는 농촌 마을이었는데, 1960년대 민간 개발업체인 어바인 컴퍼니(Irvine Company)를 중심으로 건축가·지방자치단체·교육기관 등이 함께 참여해 계획도시를 건설했다. 현재는 캘리포니아는 물론 미국 내에서도 최상위 소득을 가진 도시로 우뚝 섰다.

 

첫 여정은 이국적인 해안이 일품인 라구나비치(Laguna Beach)다. 어바인 최고의 휴양도시로 이곳을 중심으로 해안을 따라 위쪽엔 뉴포트 비치 아래엔 빅토리아 비치, 알리소 비치, 모나르치 비치 등이 이어져 있다. 소득이 높은 도시 어바인의 특성상 라구나비치 일대에도 부자와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곳은 과거 남북 전쟁이 끝난 직후 이주민이 정착해 최초 아크비치(Arch Beach)라는 이름의 해안마을을 형성했다. 이후 1919년 인상주의 화가 에드거 페인(Edgar Alwin Payne)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다양한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예술인 마을을 형성했다. 어바인에 농업과 목축업이 주를 이루던 1930년대에도 이곳은 쾌적한 기후와 주거환경을 이유로 주변 대도시의 부호들이 이주하면서 화려한 저택을 비롯한 휴양시설이 조성됐다.

 

현재도 거리에는 많은 아트갤러리와 상점, 다양한 레스토랑이 있고, 해변에서는 연일 워터 스포츠와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다. 매년 여름엔 어바인 볼(Irvine Bowl)에서 라구나 예술제가 열린다. 예술제는 벌써 40주년을 넘겼을 정도로 인기가 있다고. 해변의 분위기는 글로는 설명이 부족할 정도로 아름답다. 많은 나라의 해변을 다녀봤지만,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만큼 바다와 해변, 도시의 어울림이 훌륭하다. 에메랄드빛 물색과 잔잔한 구름이 올라탄 하늘, 형형색색의 꽃과 나무, 산 능선을 따라 지어진 고급 주택 등 무엇 하나 부족한 게 없었다. 주택가와 마주한 곳에서 바라본 풍경은 마치 유럽의 해안 명소인 이탈리아 남부 포지타노가 떠오르기도 했다. 비교하기엔 그렇지만 심지어 그곳보다 해변의 길이가 길고 넓다.

 

한국은 영상 5~10도를 오르내리는데 이곳은 연일 20~25도 수준이었다. 햇볕이 워낙 따뜻해 바다를 향해 놓인 벤치가 앉아서 쉬었다. 리조트가 늘어선 우측 해변을 보면서는 조금 억지스럽지만 파블로 피카소와 살바도르 달리가 사랑했던 스페인의 휴양지 카다케스(Cadaques)가 떠올랐다. 바다와 경계로 꽃이 줄지어 있는데 어디서 날아왔는지 벌새 한 마리가 꽃과 꽃 사이를 오간다. 태어나서 벌새를 처음 봤다. 작고 앙증맞은데 날쌔다. TV 동물 다큐멘터리에서만 보던 벌새가 수없이 날갯짓하며 주변을 TV 속 풍경으로 만들어줬다.

 

라스베이거스는 쇼다

유흥의 도시에 걸맞게 라스베이거스에는 볼거리, 즐길 거리도 다양하다. 우선 라스베이거스에서 눈을 돌리면 네바다주를 떠나 애리조나주의 거대한 협곡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Grand Canyon National Park)을 즐기는 것도 가능하다. 멀게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실제로 라스베이거스에서 새벽에 출발해서 늦은 밤에 돌아오는 당일 투어가 있을 만큼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다이내믹한 운전을 좋아한다면 ‘드림 레이싱(Dream Racing)’을 추천한다. 람보르기니 우라칸에서부터 맥라렌 720S, 페라리 458 등 꿈에 그리던 슈퍼카를 직접 운전하며 사막 위에 조성된 서킷을 달릴 수 있다. 아찔한 체험을 좋아한다면 라스베이거스 최초의 집라인인 플라이 링크(Fly Linq)에 도전하는 것도 좋다. 링크 프롬나드에 있는 12층 건물 높이의 출발선에서 세계 최고 높이의 대관람차 하이롤러(High Roller)를 향해 질주하는 놀이기구다. 35초 동안의 비행이지만 살면서 가장 길고 스릴 있는 35초가 될 수 있다.

 

몸으로 하는 체험보다 좌석에 앉아서 즐기는 공연을 선호한다면 단연 라스베이거스 3대 쇼다. 이곳의 쇼는 라스베이거스에 와본 적이 없는 사람도 알 정도로 유명한데 물의 쇼라고 부르는 ‘오쇼(O Show)’와 불의 쇼라고 부르는 ‘카쇼(Ka Show)’, 꿈의 쇼라고 부르는 ‘르 레브(Le reve Show)’다. 라스베이거스에 와서 카지노를 하지 않는 사람도 쇼 하나는 꼭 볼만큼 어느 쇼와 비교해도 화려하고 박진감이 넘친다. 벨라지오 호텔에서 진행하고 있는 오쇼는 태양의 서커스단에서 연출하고 있는데, 라스베가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쇼로 꼽힌다. 오쇼의 O는 프랑스어로 EAU(물)를 뜻하는데, 이를 영어식으로 적어 O라고 쓴다. 이름처럼 물을 이용한 쇼로 엄청난 수중 무대 위에서 펼치는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로 공연마다 열광의 도가니가 된다. 최고의 공연에 걸맞게 20여 개 국가에서 85명의 최고의 연기자들을 뽑아 공연을 진행한다. 이중엔 올림픽에서 입상한 연기자,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을 소지한 수중 전문 배우도 있다고.

 

MGM호텔에서 진행하는 카쇼 역시 태양의 서커스단에서 연출한 공연이다. 오쇼와 정반대인데 일본어로 불을 뜻하는 火(Ka)의 독음을 가져와서 이름을 붙였다. 한자에서 뜻을 가져온 만큼 배우들의 분장과 의상, 머리 모양 등 공연에도 동양적 요소가 많다. 공연의 스토리와 흐름에 따라 무대 장치가 360도 회전하며 수평과 수직을 반복한다. 이에 맞춰 엄청난 조명과 사운드도 극의 몰입에 도움을 준다. 그리고 내가 관람한 윈 호텔의 ‘르 레브쇼’다. 이 공연 역시 태양의 서커스단이 제작한 것인데 이 중에서도 특별히 서커스 계의 거장 프랑코 드래곤(Franco Dragone)이 직접 제작한 걸로 알려져 있다. 르 레브는 프랑스어로 꿈을 뜻한다. 말처럼 공연이 펼쳐지는 내내 꿈을 꾸는 듯한 환상적인 퍼포먼스가 초현실적인 느낌을 선사한다.

 

결혼을 앞둔 여자의 꿈속에서 일어나는 사랑 이야기를 물과 조명을 이용해 다이내믹하게 그려낸 것인데, 물의 쇼와 불의 쇼의 혼합이 아닐까 생각된다. 원형으로 된 무대가 수심이 깊은 물로 변했다가 높은 무대와 조형물로 시시각각 변한다. 배우들은 30m까지 올라갔다가 물속으로 뛰어들기를 여러 번, 밧줄 하나에 몸을 매달고 하늘을 날아다니기도 한다. 공연은 조명을 터뜨리지 않으면 촬영이 가능해서 흥미진진한 순간을 사진으로 담을 수도 있다. “우와!” “헐!”을 연발하면서 이날 들고 간 똑딱이 카메라로 열심히 찍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사진을 보는 감동도 적지 않다. 멈춰있는 사진인데 꺼내서 볼 때마다 현장감이 오롯이 느껴진다.

<더 자세한 내용- 2020년 4월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