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den Gem of Russia

우리가 몰랐던 러시아

 

러시아의 거대한 땅, 극동에서 동부 유럽까지 이어지는 이 나라에는 우리가 모르는 것들이 여전히 많다. 시베리아의 동쪽에 숨어있는 어느 작은 나라가 여행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름마저 생소한 부랴트,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낯선 러시아.

 

글과 사진 박지민 객원기자

 

이 땅의 사람들을 만나다

깊은 숲 속에 동화처럼 사는 이들이 있다. 낡고 작은 오두막에서 화려한 색감의 옷을 입고 옛 모습 그대로의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행복한 이야기가 전혀 아니다. 러시아 동방정교회의 역사 속에서 권력을 쥔 종교 리더에 의해, 또 차르의 통치 아래 잊힌 사람들이므로. 러시아 정교 태조 주교였던 니콘의 전례 개혁을 거부함으로써 1666년 정교회로부터 파문을 당한 후 이단자로 여겨졌고, 80년 넘게 박해를 받아야만 했다. 올드 빌리버스(Old Believers)라고 불리는, 러시아 구교도들은 결국 자신들의 신념을 지키기 위한 선택으로 시베리아에서도 극히 험한 산골 지역인 타르바가타이(Tarbagatai)까지 도망쳐와서 거친 삶의 터전을 일구게 된 것이다. 참고로 러시아 연방의 자치공화국인 부랴트(Buryat)는 바이칼호 남동쪽 연안에 위치하며, 서쪽으로 러시아 최고봉, 3,500m에 다다르는 뭉크사르디크 산이 있을 정도로 산세가 험하다.

 

구교도들은 예와 변함없는 삶의 방식을 유지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강한 신앙심으로 신을 섬기며, 힘든 노동을 마다하지 않으며, 대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무엇보다도 가족을 중심으로 모든 생활이 이뤄진다. 현대의 러시아 사람들이 이제서야 올드 빌리버스의 삶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여행자들은 마치 역사의 한 페이지를 그대로 찢어놓은 듯한 모습을 보기 위해 도시에서 35km 남짓 떨어져 있는 타르바가타이를 찾는다. 한때는 역사 속에 사라졌던 올드 빌리버스, 과거와 달리 자신들의 문화를 자랑스럽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집을 방문하고, 민속 음악과 춤을 감상하고,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걸어서 역사 속으로 

시베리아 철도는 부랴트 공화국의 수도 울란우데(Ulan Ude)와 울란바토르를 지나서 베이징으로 향한다. 꽤 중요한 교통의 요지라는 말이다. 유목민이었던 몽골계통의 부랴트족이 정착한 이래로, 모피 교역으로 번영을 누리다가 몽골과 연결되는 시베리아 철도의 지선이 건설되면서 급성장했으며 오늘날 인구 약 40만 명이 거주하는 대도시로 발전하게 되었다. 인구 구성 중 몽골혈통이 20%를 차지하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하나, 오리지널 부랴트의 문화적이고 종교적인 건축물들은 안타깝게도 대부분 1930년대 소련에 의해 파괴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는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드러낸다. 특히 철저한 계획 아래 도심에 건설된 19세기의 건축물들이 눈에 띄는데, 그중 가장 흥미로운 장소는 단연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의 거대한 두상이 꿰차고 있는 중앙광장이다. 높이는 14m, 무게는 42t으로 1970년 레닌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세운 것이다. 또 다른 랜드마크는 오디기트리에프스키 성당(Odigitrievsky Cathedral)이다. 18세기 중반에 시베리아 바로크 양식으로 건설한, 도시 최초의 석조건축물이다. 이 성당에서 멀지 않은 우다 강변을 따라 걷다 보면 목재와 석재 장식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상인의 집(Merchant's Mansions)을 마주할 수 있다.

 

현지인의 생활이 궁금하다면 아르바트 거리(Arbat street)로 향하면 된다. 먹고, 마시고, 쇼핑하는 일상이 이뤄지는 곳으로 보행자 전용도로라 마음 놓고 산책하기 좋을 뿐 아니라 양쪽 골목을 따라 역사적인 건축물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부랴트 오페라 발레 극장(Buryat Opera and Ballet Theatre)은 도시의 보석으로 꼽힌다. 1939년에 문을 연 이후 우아한 분위기를 심어주고 있다.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게 꾸며진 인테리어는 물론이고, 도시 사람들에게 오페라와 발레 공연으로 예술적인 감성을 불어넣어준다. 한편, 공연장의 역할 이외에도 음악 학교와 댄스 학교, 예술 학교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러시아의 불교사원은 어떨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부랴트에는 몽골사람들을 빼닮은 부랴트인이 많이 거주한다. 자연스레 종교적으로는 샤머니즘에 대한 믿음이 크고, 티베트 불교를 믿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러시아에서 불교사원이라니, 다소 어색하게 들리겠지만 이곳 부랴트에서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도시 사람들은 물론이고, 울란우데를 찾는 외지인들도 도심에서 23km 정도 떨어진 교외에 위치한 라마 사원을 잊지 않고 찾는다. 이볼빈스키 사원(Ivolginsky Datsan)은 1945년 소련 시절 문을 연 뒤 러시아에 있는 티베트 불교 승려의 리더격인 캄보 라마(Khambo lama)가 거주하는 수도원으로 바뀌었다. 현재 여러 개의 법당으로 꾸려지고 있으며, 사원의 역할과 더불어 의학적인 행위도 이뤄지고, 불교 대학도 있어서 사원을 오가는 젊은 수도승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실크 위에 티베트 언어로 쓴 불교 경전이라든가 신성한 보리수가 심어진 온실이 있지만, 뭐니 해도 불교도의 발길을 이끄는 곳은 따로 있다. 죽은 후에도 살아생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마주할 수 있는 라마승 다시도르조 이티길로프(Dashi-Dorzho Itigelov)를 모신 메인 법당. 1927년 그는 동료 승려들에게 사망 후 자신의 시체를 묻고 30년 뒤에 다시 확인하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는데, 그에 말에 따라 관 뚜껑을 열었을 때 놀랍게도 부패가 거의 진행되지 않았단다. ‘기적’에 가까운 현상에 놀란 승려들은 소련의 반응이 무서워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 그를 다시 묻었고, 마침내 2002년에 재발굴해 사원으로 옮겨온 것이다. 근육은 물론 관절과 피부까지 거의 그대로 남아있는 라마승 이티길로프의 육신을 연구한 결과 절대 방부처리 한 것이 아니기에 더욱 놀라운 일. 불교도들은 황금빛 지붕의 법당 안에 안치된 그의 시신 앞에 서서 간절히 기도한다. 명상 중 평화롭게 눈을 감았던 1927년 그때의 모습 그대로의, 라마승과 연결되어 있는 얇은 실을 붙들고 이번 삶에서 바라는 것들을 오래도록 그에게 빌고 또 빈다.

 

시베리아에서 미식을 찾다

음식은 그 어떤 여행에서도 백미다. 러시아 음식 하면, 떠오르는 게 별로 없는 데다가 보통 맛없다고 인식하고 있지만, 부랴트에서는 조금 다르다. 여행자로서 기대해도 좋다. 전통을 중요시하는 이들은 음식에서도 그를 철저히 따른다. 음식 문화라는 것은 삶에서 결코 뗄 수 없는 것이므로. 우유를 비롯해 치즈와 버터 등 유제품이 신성하게 여겨져 왔다. ‘하얀 음식’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누구든 손님이 방문하면 하얀 빵과 소금을 내어주는 것이 중요한 관습인데, 그다음엔 우유를 넣은 차와 말이나 낙타 젖으로 만든 술, 코티지 치즈, 사워크림과 같은 살라맛을 대접한다.

부랴트 하면 단번에 생각나는 음식의 첫째는 부랴트식 만두 부지(Buuzy)다. 현지인들은 포지(Pozy)라고도 한다. 중국의 샤오룽바오에서 유래한 것으로 다른 점이라면 부자는 오로지 고기만을 재료로 택한다는 것.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두꺼운 피 안에 잘게 간 고기와 양파를 넣어 빚고, 찜기에 넣고 찐 만두는 반드시 손으로 한입 베어 육즙을 먼저 마신 후에 나머지 부분을 마저 먹어야 한다. 부지는 부랴트에서뿐 아니라 몽골에서도 인기 메뉴다. 슈렙(Shulep) 역시 부자 못지 않은 부랴트 대표 메뉴다. 홈메이드 누들과 양고기를 넣어 푹 끓인 것으로 단순하지만, 부랴트 사람들이 즐기는 수프다. 만두를 튀긴 후슈르(Khushuur), 고기소를 넣고 튀긴 파이 샤빈(Sharbin) 등 자꾸만 손이 가는 맛깔스러운 음식들을 비롯해 바이칼호가 있으니 밥상에 오르는 생선류도 다양하다. 천혜의 자연을 품은 땅, 역시 미식도 풍요로울 수밖에.

 

노매드의 삶을 엿보다  

부랴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궁극적으로 사람을 만나봐야 하지 않을까? 이 땅을 지켜온 사람들. 울란우데에서 52km 떨어진 아사갓(Atsagat) 지역에 가면 전통적인 삶을 엿볼 수 있는 스텝 노매드(Steppe Nomad) 마을이 있다. ‘스텝’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시베리아에서 중앙아시아에 걸쳐서 볼 수 있는 짧을 풀로 뒤덮여있는 초원에서 삶을 영위해온 유목민들이 여전히 작은 커뮤니티를 이루고 사는 곳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전통 복장을 입은 현지 주민들이 여행자들을 반긴다. 환영의 의미로 노래를 부르고, 염소 똥과 허브를 태워 연기를 내는 고대의 의식 등을 행한다. 번영과 순수한 마음을 상징하는 하얀 빵을 건네기도 한다.

 

마을 내부에는 유목민들이 사는 둥근 텐트 유르트(yurt) 여러 채와 자그마한 목조 건물들이 흩어져있으며, 마을 주민들을 통해 부랴트의 여러 문화와 전통을 체험할 수 있다. 전통의상을 입어볼 수도 있고, 염소 뼈를 던지며 즐기는 게임이나 활 쏘는 법 등을 배울 수도 있다. 마을 방문의 끝은 다같이 마치 우리의 강강술래처럼 손을 잡고 빙빙 도는 민속 춤인 요호르(Yokhor)로 마무리된다. 아주 잠시지만, 자신들의 뿌리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을 직접 마주하게 되면 러시아에 속해있는 낯선 부랴트라는 땅에 한발 더 다가서는 기분이 든다. 

Travel Info

Airline

현재 서울과 부랴트 공화국의 수도 울란우데를 연결하는 직항편은 없다. 서울-이르쿠츠크 구간을 직항으로 이용한 후 다시 이르쿠츠크에서 울란우데까지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이르쿠츠크까지는 시베리아항공인 S7에서 주2회 혹은 주3회 운항 중이다. 소요시간은 3시간 45분. 이르쿠츠크에서 울란우데까지는 약 50분 소요된다. 한편, 아에로플로트의 자회사인 오로라항공을 이용할 경우 하바롭스크에서 추가로 1회 환승하는 불편함이 있다.

 

Train

울란우데가 교통의 요충지에 위치하는 만큼 시베리아 철도를 타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모스크바행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아침 7시쯤 울란우데를 경유하기 때문에 탑승하기에도 편리하다. 바이칼호를 지나 국제공항이 있는 이르쿠츠크까지는 약 9시간 소요된다. 한편,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동부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우랄 지역 제2 대도시인 첼랴빈스크까지 연결되는 약 7,400km에 이르는 대륙 횡단 철도다. 7일 동안 총 60여 개의 역에서 정착한다.

<자세한 내용- 2020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