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in Paris
파리의 심장을 관통하는 낭만

에펠탑과 루브르, 오르세가 파리를 넘어 프랑스를 대변하는 상징이 맞다. 하지만 낭만 생산 공장인 파리가 건축물과 예술작품만 가지고 세계인의 사랑을 독차지했을 리는 없다. 파리는 사실 어디를 돌아다녀도 낭만의 명소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광장에서 좁은 골목까지 프랑스 정서와 파리 특유의 느낌이 있다. 모든 곳이 좋다지만 강이 보이는 곳이라면 분위기는 절정에 이른다. 파리에서 보이는 강은 분명 센Seine 강일 테니 말이다. 그리고 몽마르뜨 언덕은 덤이다.
에디팅 편집부 글과 사진 이두용 트래블 인플루언서

센 강 따라 즐기는 영화 같은 산책
한강이 서울에만 있는 것 같지만 강원도에서 발원해 481km를 흘러 서해로 유입되는 것처럼 센강도 부르고뉴에서 시작해 파리를 지나고 노르망디를 거쳐 영국해협으로 흘러든다. 길이도 776km에 이른다. 하지만 한강이 수도 서울을 지나면서 한국이 갖는 의미가 남다르듯 센강 역시 세계적 수도의 심장을 관통하는 강들처럼 역사를 이어오며 큰 의미를 가졌다. 강폭이 한강처럼 넓지 않아서 다리도 몇 개 안 돼 보이지만 30여 개에 이른다. 이 다리들을 사이에 두고 센 강의 좌우에는 과거와 현대의 건축물이 늘어서 있다. ‘파리의 노트르담Notre-Dame de Paris’ 대성당은 12세기 중반에 지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프랑스의 모(母)성당이자 대표적인 고딕양식 건축물이다.

‘천국의 문’이란 명칭을 얻은 ‘생트샤펠Sainte-Chapelle’ 성당은 13세기 중반에 건축된 것으로 장미창과 목재 사도상으로 유명하다. 이외에도 중세시대의 많은 건축물이 남아있다.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 에펠탑도 사실은 센강을 따라 걷다 보면 만난다. 그래서 파리를 여행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면 난 시간적 여유를 충분히 갖고 무조건 걸으라고 말한다. 동선이 겹치고, 같은 길을 또 걷게 되더라도 싫증이 나거나 익숙함이 나쁘게 다가오지 않을 테니 말이다.
개인적으론 센강을 많이 걸었다. 파리에 머무는 날이면 거의 매일 노트르담 지하철역에서 내려 그날의 기분에 따라 발길이 닿는 대로 멀리, 혹은 방향을 달리하며 걸었다. 센강을 마주하고 앉아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이 그 시간 내게 주는 낭만의 선물이라 생각했다. 30여 개나 되는 센강 다리의 대표는 단연 퐁 네프Pont Neuf다. 1600년경 지어진 이 다리는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지만 ‘새로운 다리’라는 뜻이다. 이곳에서 보이는 사방의 풍경은 센강과 어울려 더 없이 낭만적인 파리의 모습을 선물한다.

영화의 내용은 다소 어둡지만 <퐁뇌프의 연인들>이 왜 이 다리를 배경으로 줄거리를 이어갔는지 이곳에 오르면 알 수 있다. 다리 위에서 에펠탑 뒤로 물들어가는 노을을 보고 있으면 왈칵하고 감동의 눈물이라도 쏟을 것 같다. 퐁 디에나(Pont d’Iena) 다리도 유명하다. 전설의 영웅 나폴레옹이 1810년경 예나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다리라고 한다.

야간에 강을 따라 걸으면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이 되어 영화 속 1920년대로 돌아간 착각까지 든다. 어둠에 덮인 무채색의 강과 다리는 과거와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센 강가에서 영화와 현실 세계를 넘나들다가 우연히 ‘달리’나 ‘헤밍웨이’, ‘피카소’를 마주칠지도 모르니 정신 바짝 차리자. 노트르담에서 걷기 시작해 센강 중간쯤에서 콩코드 광장 쪽으로 틀면 개선문으로 오르는 시원한 대로가 등장하는데 바로 샹렐리제Champs-Élysées다. 여기서 강을 따라 계속 직진하면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 에펠탑이 나온다.

강을 따르다가 방향을 어디로 틀어도 명소가 나오고 낭만적일 수 있는 이유다. 샹젤리제는 1,880m의 직선도로로 길 양옆으로 마로니에와 플라타너스가 어깨를 맞대고 서 있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다. 샹젤리제가 어디에 붙었는지 모르는 사람도 ‘오~ 샹젤리제’라는 노래는 알 수 있을 정도로 이곳은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덕분에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매장과 호텔, 카페와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메인 스트리트 뒤편으로 퓨전 한국 음식점도 여럿 있으니 가볼 만하다. 땅거미가 진 시간, 센강을 따라서 걷다가 샹젤리제로 올라서면 정말 낭만적인 분위기의 끝판왕을 만날 수도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이 되는 언덕, Montmartre

파리는 다른 어느 수도와 비교해도 도시를 감성과 낭만으로 풀어낸 영화가 많다. 건축물 하나, 거리와 언덕, 다리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건 큰 매력이다. 개인적으론 2001년 개봉한 영화 <아멜리에>를 좋아한다. ‘몽마르뜨Montmartre’ 언덕도 빼놓을 수 없는 파리의 명소지만 특별히 애착이 가는 이유가 아멜리에 때문이다. 샹젤리제 거리처럼 어디에 있고,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 채 이름만 익숙했던 몽마르뜨 언덕. 그곳에 가면 검은 단발머리에 큼직하고 똘망똘망한 눈을 가진 아멜리에가 빨간 원피스를 입고 마중 나와 있을 것만 같았다.

“당신이 없는 오늘의 삶은 어제의 찌꺼기일 뿐” “손가락이 천국을 가리킬 때 바보는 손가락을 쳐다보죠”라는 명대사를 쏟아놓은 영화 속 그녀는 유럽판 빨강 머리 앤처럼 말랑말랑한 감성과 낭만을 가진 아가씨였다. 괜스레 몽마르뜨를 더 감성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매력이다.

10여 년 전 처음 이곳에 갔을 때 땅거미가 내린 몽마르뜨에는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난 우산이 없었다. 사실 우산을 잘 쓰지도 않는다. 나 말고도 우산을 쓰지 않은 사람이 제법 많았다. 그땐 12월의 끝자락이었는데,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라지만 비를 맞고 있어도 파리는 생각보다 따뜻했다. (그 이후로 파리는 겨울에 갈 때마다 눈이 내렸다.)

과거부터 유독 예술가가 많았던 파리에서 예술가들의 아지트 역할을 했던 곳이 몽마르뜨였다고 한다. 자유분방하고, 자신의 주장이 강하며, 예술적인 감성을 가진 보헤미안들에게 몽마르트르는 그들의 일터이자 놀이터였다. 그런 정신은 아직 오롯이 남아 130m 나지막한 언덕 곳곳에 골목마다 그림과 사진, 공예품을 판매하는 상점이 많다. 영화 세트장처럼 꾸며놓은 아늑한 카페와 레스토랑들도 즐비하다. 몽마르트르 언덕은 연일 수많은 인파가 몰리는데 이곳이 파리를 조망하기에 최고의 명당이기 때문이다.

높은 건물이 적고 도시 전체가 평평한 도시 특성상 130m의 언덕은 도시 곳곳을 세밀히 보기에 더없이 좋은 높이다. 언덕 정상에는 또 다른 명소인 ‘사크레쾨르 성당Ba silique du Sacré Cœur’이 있다. 1870년 프로이센 전쟁과 1871년 파리 코뮌으로 프랑스가 혼란을 겪을 때 상처 입은 파리 시민들과 가톨릭교도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세워진 교회다.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 몽마르뜨 언덕보다 성당 꼭대기의 돔 전망대에서 파리 시내를 더 장쾌하게 내려다볼 수 있다.

몽마르뜨 언덕을 찾는 사람이라면 빠지지 않는 코스가 언덕 아래의 ‘물랭루즈Moulin Rouge’다. 1889년 개장한 댄스홀인데 프랑스어로 ‘붉은 풍차’라는 뜻이다. 실제로 건물 옥상에 크고 붉은 네온사인 풍차가 세워져 있다. 최초 ‘프렌치 캉캉French Cancan’이라고 부르는 ‘카드리유Quadrille’로 인기를 얻었다. 이 춤의 유래가 경쾌한 2박자 춤을 즐기던 영국 지방에서 18세기 초 프랑스로 전해져 ‘콩트르당스Contredanse’로 불렸다고 한다. 그리고 카드리유는 콩트르당스에서 파생된 춤이다. 네 쌍 또는 여덟 쌍의 남녀가 마주 선 자세로 춤을 추며, 음악은 4분의 2박자이거나 8분의 6박자였다. 영화의 배경이 될 만큼 세계에서도 매우 유명하다. 현재도 밤마다 화려한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당신이 없는 오늘의 삶은 어제의 찌꺼기일 뿐” “손가락이 천국을 가리킬 때 바보는 손가락을 쳐다보죠”라는 명대사를 쏟아놓은 영화 속 그녀는 유럽판 빨강 머리 앤처럼 말랑말랑한 감성과 낭만을 가진 아가씨였다. 괜스레 몽마르뜨를 더 감성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매력이다.

<더 자세한 내용- 2020년 5월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