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를 배우기 시작한 곳, 탕헤르

나의 첫 목적지는 ‘탕헤르Tanger ’였다. 스페인 남부에서 페리를 타고 30분이 면 도착하는, 유럽과 가장 가까운 모로코의 도시다. 한국에서 모로코까지 직 항이 아직 없기에 나는 밀라노 친구도 오랜만에 만날 겸 밀라노에서 며칠 일정을 보낸 뒤 모로코로 향했다. 밀라노에서 바르셀로나를 경유하는 스페인 저가 항공사를 통해 비행 시간 3시간만에 저렴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그토록 기대하며 온 곳인데, 탕헤르 국제공항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나는 얼어버렸다. 유럽 국가를 주로 여행했기 때문일까, 중동의 분위기와 사람들이 넘치는 이 곳이 여간 무서운 것이 아닌가. 여행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삐끼 같은 택시 기사들, 택시에서 내리면 짐을 들어 주겠다며 수고비를 받는 청년들, 메디나Medina 라고 불리는 복잡한 길의 구시가지를 거닐다 보면 길을 안내해 주겠다며 어김없이 나타나는 사람들 등 모든 것이 호의보다는 무서움으로 다가왔다.

3일 후 다음 도시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했기에 이 문화에 빨리 적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다행히 며칠 지내면서 사람들의 관심에 반응하는 법, 호의를 받아들이고 함께 나누는 법을 터득해 나갔다. 특히 숙소 호스트가 알려준 ‘라 슈크란(No thank you)’이라는 표현이 아주 큰 도움이 됐다. 현지어로 정확하게 의사 표현을 하면 그들은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

새파란 천국의 마을, 셰프샤우엔

역시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지역의 사람, 문화를 이해 하는 것이다. 두려움이 새로움으로 바뀌고 나니 그때부터 진정으로 모로코를 즐길 수 있었다. 탕헤르에서 모로코 문화를 기초 학습한 뒤 두 번째 목적지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세 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곳은 파란 마을, ‘셰프샤우엔Chefchaouen’이다. 마을의 모든 집과 벽에 파란색 페인트를 쏟아 부은 것 마냥 도시 전체가 파란색으로 뒤덮인 곳이다.

이곳에선 염료 파는 곳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으며, 사람들은 수시로 마을 곳곳을 파란색으로 다시 칠하고 있었다. 셰프샤우엔이 파래진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고 한다. 그중 하나가 이 마을에 천국을 상징하는 파란색을 좋아하는 스페인 유대교 사람들이 정착하면서부터 라고 한다. 지금은 관광객들이 이 예쁜 마을을 많이 찾는 덕분에 파란색이 더 잘 유지되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한 번 발을 들이면 사진을 기본 100장은 찍게 되는, 어느 곳에 초점을 맞춰도 동화 속의 한 장이 만들어지는, 그 와중에 마을을 둘러싼 산맥은 또 쓸데없이 너무나 멋지게 버티고 서 있는 이곳을 난 사랑하게 되었다. 관광지를 바삐 돌아다니기 보다는 숙소 옥상 에 올라가 아무 생각없이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시간이 좋았고, 마을의 정기를 받으며 모든 순간을 온전히 느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때의 바람, 온도, 소리가 그대로 느껴지면서 내 입가엔 어느새 미소가 번진다. 마치 여행이 내 일상에 주는 선물처럼 느껴진다.

노마드의 경이로운 터전, 사하라

페즈에서의 짧은 여정을 마치고 드디어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사하라Sa Hara’로 향했다. 서쪽으로 모로코에서부터 동쪽으로 이집트까지, 아프리카 대륙 북부에 걸쳐 있는 사하라는 ‘큰 사막’ 이라는 뜻에 걸맞게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실제로 내가 만난 사하라에서 사구 너머로 ‘블랙 데저트Black Desert’라 불리는 알제리 땅의 검은 모래 사하라도 육안으로 접할 수 있었다.

도시에서 사하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지금도 다시 가라고 하면 가장 망설여지는 부분이 교통편이다. 페즈에서 밤 버스를 타고 10시간에 가까운 여정이 이어진다. 꼬불꼬불 대관령 같은 산길을 돌아, 비포장 도로를 덜컹덜컹 지나 ‘이제 제발 그만 버스를 내리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즈음 힘겹게 도착한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이곳이 사막의 입구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모래 광야가 눈앞에 펼쳐진다. 잠시 후 만나게 될 더 경이롭고 멋진 사하라의 모습은 상상도 못한 채 빙산의 일각을 보고도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사막에서 2박 3일의 노마드Nomad 체험을 신청한 우리는 낙타를 타고 사하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낙타에 올라타 보니 내 엉덩이에 생각보다 많은 불편함을 주었지만, 한 시간의 동행 끝에 선사 받은 풍경은 감동 그 차제였다.

그 어느 풍경보다 이국적이었던 사하라와의 첫만남은 잊을 수가 없다. 파도 치듯 넘실대는 황금빛 색의 모래 언덕과, 그 너머로 천천히 지는 노을이 만들어주는 풍경은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가 아닌 내 눈에 꼭 담고 싶었다. 이걸로는 모자라, 온몸으로 느끼고 싶어 사구 꼭대기까지 샌드 보드를 들고 걸어 올라가(기어올랐다는 표현이 맞겠다) 두 팔 벌려 사하라 모래를 타고 내려왔다. 노마드 아저씨가 만들어주는 베르베르인 전통 음식을 저녁으로 먹고 텐트 안이 아닌, 텐트 옆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불빛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 검은 하늘 위 수많은 별들을 보기 위해서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이 같이 모래 위에 누워,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그 시간 또한 사하라가 선사해준 귀한 선물 이었다.

사막에서의 두 번째 날 아침을 맞았다. 수도가 없어 미리 챙겨간 1리터짜리 물 두 통을 아껴 고양이 세수를 하고, 화장실이 없어 저 멀리 사람 없는 곳까지 몰래 다녀오는 이 숙소가 나를 노마드 라이프로 초대해준 것 같아 참 마음에 들었다. 셰프샤우엔에서 미리 구매한 모로칸 전통 의상 ‘젤라바’까지 갖춰 입으니 난 이제 그 안에 있었다.

노마드 친구들이 ‘파티마Fatima’라는 예쁜 닉네임 까지 지어주었다. 두 번째 밤엔 기타 연주까지 더해져 사하라의 흥을 돋구었다. 다음 날 일출을 보며 사막을 걸어 나오는 것을 끝으로 체험이 종료되었다. 머릿속에 수많은 표현들이 떠오르지만 사하라에서 보낸 3일 간의 시간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없다. 그냥 좋다. 정말 좋다. 1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사진을 매일 꺼내 본다. 딱 그 정도 이다.

긴 여정의 마침표, 마라케시

모로코를 즐길 마지막 도시로는 ‘마라케시Marrakech’를 택했다. 무서운 동네라 악명 높은 마라케시 광장은 그만큼 로컬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첫 행선지였다면 무서워서 숙소 밖에도 못 나가 보고 창문 넘어 구경만 했을 테지만, 2주간의 모로칸과 함께 한 여정은 나를 불빛 속의 마라케시 광장으로 밀어 넣었다. 야시장의 활기찬 기운이 가득한 광장엔 길게 늘어선 포장마차가 만원을 이루고 있었고, 구경꾼들에 둘러 쌓여 퍼포먼스를 펼치는 무리들이 여기저기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다.

내가 맨 처음 느꼈던 모로코가 바로 마지막 날 밤 마라케 시 광장에 있었다. 아프리카 땅 위에서, 그들만의 고유한 흥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히잡을 두른 이슬람 문화의 사람들이 오가는, 아랍어가 사방에서 들리는 광장. 영어 대신 프랑스어가 능숙한 주스 트럭 아저씨. 모로코를 처음 마주 했던 탕헤르에서의 두려움 가득한 여행자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이 신비로운 조화가 주는 특별한 분위기를 즐길 줄 아는 여행자로 마지막 여정을 마무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