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rkey

장미향기가 인도해준 이스탄불의 소피아 성당

여름휴가로 그리스 연안에서 요트를 타기로 한 것은 잘한 결정이었다. 녹녹한 바람을 타고 만나본 남유럽 풍의 섬마을들과 그곳에서의 순박하고 꾸밈없는 휴식은 오랜만에 가져본 사유와 사색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번 휴가에서 그리스는 목적지가 아닌 경유지다. 지중해에서의 코발트빛 항해를 마치고 터키 이스탄불 행 낡은 버스에 올랐다. 지금 나는 소피아 성당으로 향하고 있다.

 

에디팅 편집부 글과 사진 강중규

 

강중규｜부산 수영구 수영로

부산의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고 학교에서 근무했던 선생님과 올해 초 결혼해 함께 더 큰 세상으로 나가고자 열심히 여행을 하고 있다.

 

추억을 곱씹으며 향하는 터키

버스 창문을 열어 깊게 숨을 들이마셔 본다. 바람결에 실려 온 흐릿한 장미향이 콧속을 간질인다. 근처에 장미꽃 군락지라도 있는 것일까 라고 짐작해 본다. 터키 국경에 가까이 갈수록 점점 진해져가는 장미향을 맡으며 날 터키로 이끈 기억의 실타래를 풀어본다. 어릴 적 내 방 책장에는 ‘세계 도시 기행’이라는 책이 있었다.

말하자면 어린이들을 위한 지구별 여행설명서 같은 책이다. 나는 종종 그 책을 꺼내 읽었다. 두 손으로 들었을 때의 묵직한 무게감이 아직도 손에 기억되어 있다. 이스탄불의 소개에 해당되는 페이지를 펼칠 때면 비록 안경렌즈 만한 작은 삽화였지만 고색창연한 붉은 색 돔 건물이 눈에 띄었다. 온갖 기하학적 난해함으로 가득한 소피아 성당의 풍경은 그 특유의 오묘함으로 나를 강렬하게 끌어당겼다.

이후에도 줄곧 어른이 된 내가 소피아 성당에 가보는 모습을 상상해보곤 했다. 어린 나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현재의 나는 이렇게 버스에 몸을 실었다. 라디오 방송이 지직거리며 그리스어에서 터키어로 바뀔 때 국경검문소에 다다른다. 총을 찬 군인 한명과 공무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버스에 올라탄다. 친절하지만 형식적으로 일일이 승객들에게 하차를 요구한다.

한 명씩 폐쇄된 입국심사실로 안내된다. 유럽연합(EU)에서 터키인들의 유럽국가 입국을 제한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터키 입국심사를 강화했다고 한다. 국적에 따라 적게는 10유로에서 많게는 100유로 가까이 입국 심사비를 내란다. 버스의 유일한 동아시아인인 나의 순서가 되었다. 대머리 심사관은 나의 여권을 힐끔 보더니, 이내 환하게 웃는다. “형제의 나라, 한국인은 무료입니다”

국경검문소를 지나며 뒤를 돌아본다. 푸른 바탕에 12개의 금색별이 빛나는 유럽 연합기와 하양과 파랑의 선들로 이루어져 있는 그리스 국기가 파란하늘에서 펄럭이고 있다. 그러나 여기 터키의 영토는 확실히 분위기가 다르다. 이스탄불까지의 국도 가로변에는 붉은색 바탕에 흰 초승달과 별이 그려진 아이 일디즈(터키의 공식 국기)가 끝없이 늘어져있고 도로 양 옆에서는 붉은 모래 바람이 분다.

전반적으로 푸른빛이 돌았던 그리스의 풍경과 대조를 이루듯 이곳의 모든 것에는 붉은빛이 감돌았다. 국경 너머에서부터 맡아오던 신비로운 장미향 역시 깊이가 더해져 나를 맞이하고 있다. 나는 드디어 소피아 성당의 나라, 터키에 도착하였다.

이스탄불과의 만남

오랜 역사의 땅 위에 문화의 모자이크를 이루는 도시, 이스탄불로 버스는 진입했다.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풍경은 원시적이지만 강렬한 색채로 가득 차 있다. 햇빛을 막는 상점의 차양마저도 그 특유의 뜨거운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이스탄불을 내리쬐는 태양만이 이글거리는 것이 아니다. 이미 이 도시의 모든 것들이 강렬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터미널에 내리자마자 전화로 예약해둔 소피아 성당과 가장 가까운 호텔로 향한다.

카운터에서 열쇠를 받아 방문을 살며시 열어본다. 은은한 장미향기가 방안을 훑고 있고 정면의 창문에서 찾아든 낡고 붉은 빛이 고즈넉한 오후를 비추고 있다. 다행이다. 전망 좋은 방을 얻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소피아 성당 주변에는 이슬람사원의 모스크들을 제외하고는 높은 건물이 없다. 덕분에 소피아 성당은 도시 위에 우뚝 솟아 마치 세상의 한 가운데 자신을 홀연히 드러내고 있는 듯하다.

석양이 창가로 찾아든다. 붉은 빛이 소피아 성당을 덮친다. 석양에 젖어가는 소피아 성당은 아름답다 못해 질투가 서릴 만큼 고혹적이다. 식사를 하기 위해 좁은 골목길을 헤매다 건물의 옥상을 테라스로 개조한 식당을 찾았다. 소피아 성당과 가까운 테이블에 자리가 준비된다.

양갈비와 샐러드를 시킨다. 종업원이 사과차를 추천한다. 마다할 이유는 없다. 전형적인 이슬람풍의 요리가 준비된다. 그릴에 구워낸 양갈비가 보기에도 푸짐하고 먹음직스럽다. 맛을 보니 과연 제대로 굽고 잘 요리된 상태다. 한 손에는 양갈비를 다른 한 손에는 사과차 한잔을 들고 석양에 더욱 붉게 빛나는 한 시대의 걸작을 마주하고 있다.

이처럼 가까이서 소피아 성당을 감상하면서 미각을 즐길 기회를 갖게 된 것은 큰 행운이다. 다시 한 번 더 내가 이스탄불에 왔음을 실감한다. 식사가 마무리될 즈음 국경을 넘느라 긴장해 왔던 마음도 한풀 꺾여 나른해진다.

국경 근처서부터 내 주변을 맴돌던 장미향기가 불현듯 더욱 선명해져 나에게 다가온다. 하늘로 붕 떠오를 것만 같은 활홀함에 어릿어릿해져 눈을 감는다. 잠깐 상념에 잠겨본다. 제국의 수도에 어울릴 대성당을 건설하라는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명령이 들려온다. “세상의 모든 형태를 한데 모아 교묘히 조합시킨 위대하지만 아름다운 성당을 건설하라!” 이후 비잔틴 세계의 예술과 과학, 학문이 이곳에서 꽃을 피웠다.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오스만 튀르크의 말발굽에 천년수도의 성벽이 무너졌다. 마흐멧 2세와 병사들도 차마 소피아 성당의 성스러움만큼은 유린하지 못하였다. 도시의 이름이 이스탄불로 바뀐 것처럼 소피아 성당도 이슬람 성전으로 새로이 태어났다. 그렇게 다시 오백년이 흘렀다. 달그락 하고 테이블 정리하는 소리에 눈을 뜬다. 숱한 풍파를 겪어오며 오늘날에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소피아 성당이 자신의 과거를 여행하고 온 여행자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

식당을 나와 노면전차 선로를 따라 걷는다. 걷기에는 괜찮은 저녁 날씨다. 이슬람의 도시라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이스탄불의 밤은 화려하다. 어느덧 내 발걸음은 사르케지역까지 닿는다. 유럽과 아시아를 이어주던 오리엔트 특급열차는 이곳 사르케지역에서 출발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 ‘오리엔트 특급 살인’도 이곳에서 시작한다.

고개를 돌리면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인 보스포러스 해협이 눈에 들어온다. 실크로드의 시작점이자 종착점이기도 한저 해협으로 수많은 미술품, 융단, 향신료 등을 실은 배들이 오갔을 것이다. 신라에서 출발해 험난한 고원과 사막을 건너 이 해협에 도달했을 상인들을 상상해 보며 감격해본다.

이곳 보스포러스 해협에서 유럽과 아시아가 아스라이 키스를 나누고 있어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 해협을 굽어보며 두 대륙의 문화를 하나의 모습으로 빚어낸 소피아 성당이 달빛을 담아내고 있다. 어느덧 내일을 기약하는 어둠이 차오른다.

진정으로 만난 소피아 성당

새 지저귀는 소리에 눈을 떠 호텔방의 창문 밖을 내다본다. 소피아 성당의 돔과 첨탑들을 아침의 상쾌함이 휘감고 있다. 지체 없이 호텔 문을 나선다. 소피아 성당은 이슬람 사원인 블루모스크와 공원 하나를 두고 마주하고 있다. 이 공원을 통해 수많은 여행자들이 두 건물을 오고가고 있다.

여행자들은 두 종교가 이룩한 각각의 아름다움에 심취해 모두 들뜬 표정들이다. 두 건물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의 화해를 위해 바삐 움직이는 평화와 사랑의 전달자들처럼 보인다. 두 종교의 갈등과 반목이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지만, 적어도 이 공원에서 만큼은 그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공원의 분수대에서 솟구친 물방울들이 붉은 빛 소피아 성당과 블루모스크를 투영하고 있다. 물방울에 반사된 아침햇살이 더없이 반짝인다.

소피아 성당에 들어선다. 병사들처럼 한 줄로 길게 늘어선 기둥들이 과거의 영광을 추억하고 있는 듯하다. 마침 장미향기가 마치 황제의 군대처럼 나를 포위한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성당 내부로 빨려 들어간다. 아시아의 돔형 건축과 로마의 아치건축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장엄한 천정에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과 시원한 필체로 써진 이슬람 문자가 나란히 공존하고 있다.

소피아 성당에는 익히 알려진 역사적 사건들뿐만 아니라 숱한 전설들도 간직하고 있다. 그중 하나인 땀 흘리는 기둥 앞에 섰다. 벽면에 난 작은 구멍에 손가락을 넣고 크게 한 바퀴 돌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호기심 많은 황제께서, 장난 끼 가득했던 술탄께서 그랬을 법하게 나 역시도 손가락을 넣어본다. 1500년간 구멍 속에 켜켜이 축척되어온 사람들의 소원들 위로 내 소원도 살포시 놓아본다. 소원이 쌓이는 만큼 신비로움도 쌓여간다.

같은 이야기라도 햇빛을 받으면 역사가 되고 달빛이 깃들면 전설이 된다고 했던가, 이곳 소피아 성당에는 눈부시게 빛나는 햇빛과 가슴 시리도록 아련한 달빛이 함께하고 있다. 촘촘히 유리조각이 박힌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하늘의 빛이 새어 들어온다. 마치 천국에서 내려온 것 같은 이 빛줄기들은 대리석 벽을 오색찬란하게 염색한다.

하늘이 벽에 그린 이 그림을 내 손에 담아보고자 손바닥위에 그림을 올리고 주먹 쥐어본다. 무심한 빛줄기는 움켜쥔 주먹 위로 그림을 지긋이 올린다. 손에 잡힐 리 없는 찬란함이 역사와 인간사의 무상함을 가르쳐 주는 것만 같다. 불현듯 장미향기가 아주 강하게 내 몸을 휘감는다.

뜨거운 장미향기가 내 얼굴을 덮고 내 주변 모든 공간을 메운다. 국경에서부터 날 맞이해오던 바로 그 녀석이다. 나는 허둥지둥하며 이 향기의 근원을 추적한다. 향기를 쫓아 머리 위를 올려다본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장미오일 램프들이 금빛 샹들리에에 매달려 있다. 머리위로 장미향기가 은은하게 흘러내려오고 있었다. 이젠 오랜 친구 같은 이 향기는 나를 에워싸고 점점 나를 삼켜간다. 몽환적인 향기에 정신이 아찔해진다. 내가 찾아온 것이 소피아 성당인지 이 매혹적인 장미향기인지 이제는 알 수 없다.

쏟아지는 장미향기는 소피아 성당을 가득 채우고 바람에 실려 터키 전역으로 퍼져가고 있다. 산업화가 급격히 진행되어온 터키가 여전히 여행자들에게 몽환적인 여행지로 기억될 수 있는 데에는 소피아 성당의 장미오일 램프에서 신비롭게 뿜어져 나오는 그윽한 장미향기가 온 나라에 짙게 베여진 덕분이리라.

이제야 내가 그토록 그리던 소피아 성당을 진정으로 만났다. 나는 지금 어린 내가 펼쳐보던 ‘세계 도시 기행’ 삽화 속에 와 있다. 수많은 옛이야기가 장미향기처럼 스며드는 이곳은, 장미향기가 인도해준 소피아 성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