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 form Chengde
연암에게 띄우는 편지
저는 지금 중국 베이징에서 210킬로미터 떨어진 청더에 서 있습니다. 당신에게는 승덕, 아니 옛 이름인 열하가 더 익숙하겠군요. 1780년 당신이 서 있었던 청더에서 2009년의 제가 편지를 띄웁니다.
'일상이 지루해지고 되풀이되는 것 같을 때, 여행은 가장 손쉽게 일상에 균열을 낸다. 그리고 그 균열을 통해 더 넓은 세계를 볼 수 있다.' 제가 사람들에게 여행을 권할 때 늘 하는 말이에요. 연안(燕巖), 당신이라면 이 말에 동감할거라 믿습니다. 당신에게 청더 여행이 그러했으니까요.
황제의 피서 뒤에 숨겨진 비밀 베이징에서 중국 허베이성 청더시의 승덕피서산장까지는 차로 네 시간 남짓이 걸려요. 청더로 향하는 내내 자다가 찌뿌듯한 몸으로 내려, 열하일기의 산장잡기편의 '지금 나는 밤중에 한 강을 아홉 번 건넜다' 라는 부분을 떠올렸습니다. 당신을 포함한 사신단이 몇 달 동안 고생해 베이징에 도착했을 때, 황제는 청더의 피서산장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황제의 칠순연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닷새. 사신단은 칠순연 전에 도착하여 황제를 알현하기 위해 죽을 각오로 닷새 밤낮을 달렸죠. 당신이 이 먼 청더까지 오게 된 것 청나라의 황제, 강희제 덕분이었어요. 내륙지방이라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무더위를 피해온 강희제는 매년 4월부터 9월까지 이곳에서 머물렀고, 황제를 알현하러 온 사신들 역시 청더를 방문해야 했으니까요.
강희제가 청더의 별궁 피서산장을 짓기 시작한 것은 1703년부터 87년 동안 지어, 결국 1790년 완성된 이곳은 560만 평방미터가 넘는 어마어마한 규모입니다. 그 아름다움도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죠. 이렇게만 적어놓으니 스케일이 장대한 황제의 여름 휴가처럼 보이네요. 하지만 여기에는 천고일제, 즉 중국 역사상 가장 총명한 군주라고 불리는 강희제의 깊은 뜻이 숨어있습니다. 강희제는 진시황처럼 만리장성을 쌓거나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잘 아는 사람이어요. 그래서 국력을 소모하는 싸움이 아닌 평화 속에서 실리를 취하는 방식을 선택했죠. 이런 강희제의 뜻은 피서산장의 첫 번째 문인 여정문에 붙은 몽골어, 위구르어, 중국어, 티베트어, 만주어의 다섯 가지 언어 현판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중국어 뿐만 아니라 다양한 민족의 언어를 사용한 것은 그들을 존중한다는 의미죠, 물론 달래기만 할 것은 아닙니다. 강희제는 청더 근방에서 매년 가을 사냥 대회를 위장한 군사훈련을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몽골족이 기르는 말이 제대로 풀을 먹고 살질 수 있는 유일한 시기인 여름철에 황제의 주력군이 코앞에 진을 쳤으니, 몽골적이 섣불리 움직일수 없음을 노린 것이었죠. 또한 북경 주변에는 말을 탈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에, 마병을 양성하려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피서산장의 여정문에는 문이 세 개 있는데, 그 시절 황제와 황후만 가운데로 출입할 수 있었다는 말에 일부러 가운데를 지났습니다. 두 번째 문에는 강희제가 직접 쓴 금색 글씨의 현판이 있네요. '피서산장' 이라는 현판입니다. 큰 문 하나를 지날 때 마다 온도가 3도씩 떨어진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지, 문 두 개만 들어섰는데도 훨씬 시원합니다. 아, 당신은 이 문으로 들어설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과거 이곳은 종 7, 8, 9품은 들어설 수도 없고, 종 4, 5, 6품도 문 하나를 지나는 것이 고작이며, 두 개의 문을 모두 통과하는 건 종1, 2, 3품 뿐이었으니까요. 이백여년의 시간이 흘러 세상이 변하고, 이제 이곳은 90위안의 입장료만 내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청나라 시대의 12개 사원 중 대부분이 손상되어 지금 개방된 것은 고작 5개입니다.
어쩌면 나무는 그 무렵에도 지금만큼 우거져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피서산장에서 만날 수 있는 1만 9백여 그루에 달하는 나무, 그사이사이에서 뛰노는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가족들을 보기만 해도 더위가 가시는 것 같습니다. 중국 사람들도 많지만, 한국 사람의 모습도 종종 눈에 띕니다. 작년 한 해에 이곳을 찾은 한국인만 1만 5천 명이라고 해요. 물론 모두가 저처럼 당신의 발자취를 따른 것은 아니겠지만, 꽤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통해 청더를 알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문득 개달은 사실인데, 이곳은 황실의 별장이라는 이름과 조금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듭니다. 사치스러움에 입이 절로 벌어지는 이 화원이나 웅장한 자금성에 비해 화려하게 채색되지 않고, 소박한 느낌이 드니까요. 외국에서 방문한 사신을 알현하고, 공식행사를 치뤘다는 담박경성전도 차라리 우리네 한옥과 더 가까우리 만큼 단정한 모습입니다.
나무도 많지만 물도 많습니다. 피서산장에는 모두 8개의 호수가 있는데, 중국 각지의 유명 건축물을 본뜬 건물들이 에워싼 형태입니다. 이 건물들이 물 위에 드리운 물그림자는 경탄이 절로 나올 정도입니다. 산이 물을, 물이 섬을 에워싸는 형태의 호수 위로 버드나무 가지가 늘어져 있습니다. 바라보고 있으니 언젠가 이태백이 그러했듯 손을 넣어 쥐어보고 싶어집니다. 이 호수에서는 배를 타고 한 바퀴 돌 수도 있습니다. 천천히 아름다운 피서산장의 풍경을 감상하며 돌면 한 시간 정도가 소요된다고 합니다. 발로 젓는 배와 직접 노를 저을 수 있는 배, 사공이 노를 젓는 커다란 배까지 다양한 종류가 있고요. 연암, 당신과 함께 호수 위에서 한 잔의 술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해보았습니다.
한참 거닐다가 붉은 글씨로 열하라고 음각된 바위와 마주칩니다. 이 바위를 포함해 피서산장에는 총 여섯 개의 샘이 있는데, 가장 추운 한겨울에도 영상 8도 정도를 유지하며 절대로 얼지 않는다고 해요. 열하도 이런 이유로 붙은 이름이고요.
작은 포탈라 궁, 보타종승지묘 피서산장의 주변에는 외팔묘라고 하는 8개의 소수민족 사원들이 호위병처럼 빙둘러서 있습니다. 제가 방문한 보타종승지묘는 북쪽에 위치하고 있죠. 1967년부터 81년까지 지어졌으니 당신은 볼 수 없었으리라고 생각해요. 이곳 역시 피서산장의 많은 건물들처럼 다른 건물을 모방한 것이 특징인데, 독특하게도 티베트 라싸에 위치한 포탈라 궁을 모방했습니다. 보타라는 말 자체가 산스크리트어인 포탈라를 줄여 번역한 것입니다. 관음보살이 머문다는 의미래요.
강희제의 손자인 건륭제는 정치적으로는 유교와 성리학을 신봉했지만 종교는 티베트 불교였다고 해요. 사실 티베트 불교를 숭상하며 두라마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티베트의 포탈라 궁에는 청나라 황제를 찬양하는 편액이 걸려 있다고 합니다.
그 배경은 당신도 잘 알고있죠. 오래 전 열하일기의 '황교문답'에 '황제는 해마다 열하에 머무는데, 열하는 성밖의 거친 땅이다. 대체 천자가 무엇이 부족해 이런 변두리의 거친 벽지에서 머무는 것일까? 이름은 더위를 피하는 피서라고 지었지만 사실은 황제가 몸소 나서 변방을 지키는 것이니, 과거 몽고의 강함을 잘 알 수 있다. 또한 티베트의 라마를 스승으로 삼아 황금으로 절을 지어 그를 머무르게 했는데 (중량) 명목은 스승이지만 사실은 전각에 가두어 두고 하루라도 세상이 무사한 것을 기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 두 가지로 미루어 황제의 마음이 이미 괴롭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적어두었으니까요.
고지대에 위치한 보타종승지묘는 피서산장보다 더 시원해서, 개인적으로 이쪽에 '피서'라는 명칭을 달아주고 싶어요. 규모도 피서산장에 못지않은데다, 지붕 기와에 금칠이 되어 있어서 훨씬 화려한 느낌이거든요. 이곳의 건물은 앞쪽에 위치한 20여 개의 건물백대와 정상에 위치한 거대한 붉은 건물 대홍대로 나눌 수 있어요. 경사가 그리 심하지 않은 산길을 걸으며 건물들을 지나치다보면, 깎은 듯 가파른 계단을 통해 대홍대로 올라갈 수 있어요. 이 대홍대는 건립한지 2000년도 넘은 거대한 규모의 건물인데, 원래 티베트에 있는 건물은 훨씬 크다고 합니다. 아직 티베트를 방문해보지 못한 저로서는 그 규모가 감히 짐작도 가지 않더군요.
대홍대 내부를 구경하기 위해서 계단을 오를 때는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고 해요. 돌아보지 않고 소원을 빌며 올라가면 그 소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라더군요. 추측컨대, 계단의 경사가 가파른 편이니 뒤를 돌아보다가 겁을 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인듯 싶어요. 재미있는 것은 겉에서 볼 때는 티베트의 건물이었던 대홍대가, 실제로 안에 들어가 보면 중국식으로 건축된 사찰을 둘러싼 ㅁ자 형태의 건물이라는 부분이에요. 어쩌면 겉은 티베트의 모습을 하고 있어도 속은 중국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군요.
건물 위로 올라가서 바라보는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에요.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저 멀리 경추봉을 바라봅니다. 방망이 산이라는 의미답게, 산봉우리가 방망이처럼 생겼네요. 이런 모양이 된 것은 옥황상제가 세상을 둘러보다 청더의 풍경에 감탄해, 엄지손가락을 내밀었기 대문이래요. 이 봉우리의 아랫부분을 만지면 130세까지 무병장수한다는 말이 있어요. 올라가지 못해 아쉬웠지만, 바라만 보아도 60년은 더 살수 있다는 말을 믿기로 했습니다.
여행의 힘을 믿어요 이런 일화가 생각나네요. 황제가 티베트의 라마들에게 예를 표하라고 시켰을 때, 조선의 사신 일행은 '서쪽의 오랑캐에게 고개를 조아릴 수 없다' 고 반발했습니다. 하지만 황제가 먼저 라마에게 예를 표해, 어쩔 수 없이 따랐고요. 당신은 여기서 큰 충격을 받았었죠. 하늘의 아들, 천자 황제가 무릎을 꿇다니! 하지만 이때의 경험이 당신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고 생각해요. 이런 경험이 아니었다면 조선의 군사, 경제 수준 같은 상황 파악도 못하고 명분만 앞세워 '북벌'을 외치는 양반들을 비판한 소설 허생전과 유명한 실학 사상은 나오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여전히, 여행의 힘을 믿어요. 여행은 박지원 한 사람의 인생 뿐 아니라 북학파, 나아가 조선까지 흔들어 놓았으니까요.
그리고 그 여행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오늘날 저에게까지 전해지는걸요.
General
시차 중국은 한국보다 1시간 늦다.
언어 관광지나 호텔의 직원들 중에서도 소수만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간단한 중국어 회화를 익힐 것을 권한다.
화폐 위안화를 사용한다.
전압 220V를 사용하며, 여러 가지 형태를 사용할 수 있는 플러그이므로 변압기를 가져갈 필요는 없다.
전화 중국 국가번호 86, 청더시 지역번호 0314
비자 중국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 외무부 여권과나 구청, 여행사 등에 신청하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5~7일 후 발급받을 수 있다. 단수 비자를 받을 시 3만 5천원이 드는데, 빨리 받기 위해서는 2만 4천 원의 급행비자 비용을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비자 신청 시에는 유효기간이 6개월 이상 남은 여권과 사진 1매, 신분증 사본이 필요하다.
Transportation
청더 기차역 앞 광장에서 5, 7, 11, 15번 버스를 탈 수 있다. 피서산장역에서 하차. 보타종승지묘는 피서산장 북쪽 성벽에 위치하고 있어 도보나 118번 버스로 갈 수 있다.
City
청더Chengde
허베이성 가장 북쪽에 위치한 도시다. 수도인 베이징에서 250킬로미터 떨어져 있으며, 옌산 산맥의 고원지대에 위치해 여름에 시원하다. 총 인구는 60만 명 정도. 다양한 유적지가 있어 중국 100대 역사문화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1933년부터 20여 년간 일본에 지배당한 역사가 있다. 1960년대부터 중공업 도시로도 발돋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