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is
Very Little Things About
파리의 아주 작은 것에 눈을 두다

이 도시에 기대할 것은 지극히 분명했다. 내 수첩에는 에펠탑과 세느강, 몽마르트의 언덕, 루브르박물관, 개선문, 그리고 노트르담 성당의 빼곡한 리스트가 적혔다. 그러나 정작 내 눈에 들어온 건 아주 작은 것. 메인요리 전의 애피타이저와 모두가 줄을 서 사는 예쁜 과자 한 조각이었다. 에어프랑스를 타고 하늘을 날고, 샹젤리제 거리의 멋진 호텔에서 꿈꾸며 나는 기대하지 않았던 즐거움을 파리에서 맛보았다.

글과 사진 함희선 기자 취재협조 에어프랑스 www.airfrance.co.kr, KLM네덜란드항공 www.klm.co.kr

내가 달팽이요리를 기억하는 건 순전히 영화 <귀여운 여인> 때문이다. 비오는 날이면 풀숲에서 찾아서 놀곤 했던 귀여운 달팽이를 입에 넣고 씹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줄리아로버츠가 포크로 잡아 빼던, 휭-하고 공중을 날아 바닥에 착륙했던 그 장면이 각인되었을 뿐. 프랑스 식사에 익숙하지 않은 그녀가 저지른 웃지 못할 해프닝에 무의식중에 공감했나 보다. 오래전 영화의 한 장면이 건드린 나의 호기심은 결국 파리 어느 골목의 레스토랑 테이블에 날 데려가 앉혔다. 식탁 위에 올라있는 요상한 모양의 집게 때문에 영화 속 줄리아로버츠가 된 것처럼 가슴이 쿵쾅쿵쾅 요동쳤다.

프랑스의 달팽이요리 에스카르고Escargot. 와인으로 유명한 부르고뉴지방의 대표 요리로 15세기에 포도 잎사귀를 갉아먹는 달팽이를 없애려고 농민들이 먹기 시작했단다. 무지하게도 그동안 그저 달팽이요리가 유명한 줄로만 알았지 프랑스 3대 진미인 에스카르고가 이런 유래를 갖고 있을 줄이야. 달팽이에 딱 맞는 크기로 움푹 파여 있는 은색 쟁반에 6개의 달팽이가 담겨 나왔다. 모양은 그리 대단치 않더라. 메인요리 전에 먹는, 식욕을 돋우는 애피타이저라서 양도 적었다. 초록색 물감을 퉤-하고 뱉어놓은 듯이 보이는 달팽이들. 천만다행으로 크기가 커서 더듬이가 달린 귀여운 달팽이의 모습은 떠오르지 않았다. 왼손으로 전용집게를 이용해 달팽이를 움켜쥐었다. 포크를 살살 돌려 속살을 빼내려는 1차 시도는 실패. 줄리아로버츠는 잊은 채 긴장을 풀고 다시 왼손에는 더 단단한 힘을, 오른손에는 더 세심한 숨결을 불어넣자 달팽이가 쏙-하고 빠져나왔다. 쫄깃쫄깃한 식감과 버터와 마늘, 파슬리가 어우러진 맛. 솔직히 말하면 3대 진미를 음미하기 보다는 속살 빼는 재미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스스로 느낀 바가 없어서 전문가의 말을 빌리자면, 달팽이 요리는 깊은 맛을 낼 뿐 아니라 영양도 풍부하다. 노화억제를 하고, 정력증강의 효과가 있기 때문에 부끄럽게도 ‘밤을 위한 요리’라고도 불린다. TV를 보면서 대충 햄버거로 때우는 삶보다 한 끼를 먹어도 우아하고 여유롭게 즐기는 프랑스 사람들. 간단해 보이는 요리지만, 달팽이를 굶기고 식초로 씻고, 껍질과 분리하고 조리한 뒤 다시 밀어 넣고, 껍질 채 또 오븐에 굽는 긴긴 과정을 거치는 달팽이 요리는 먹어보지 않았으면 왠지 섭섭했을 것 같다. 내가 먹은 달팽이대신 줄리아로버츠가 먹은 달팽이만 평생 기억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