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urmet :: France

French Christmas

프렌치 크리스마스가 필요해
프랑스에서 크리스마스이브는 ‘기적의 밤’이다. 죽은 자마저 살아 돌아올 정도로 상상 속 모든 기적이 실현될 수 있는 밤 말이다. 이토록 비범한 크리스마스는 프랑스인들에게 오랜 전통을 지닌 명절인지라, 이맘때면 얼굴 보기 힘들었던 친지들도 모두 한날한시에 모여 웃음꽃을 피운다. 로맨틱한 크리스마스만큼이나 특별할 것 같은 프렌치 크리스마스의 온기를 미리 체감하고 싶어 서래마을의 라 싸브어를 찾았다.
글 이소윤 기자 사진 진하정 기자 취재협조 라싸브어 02-591-6713, FIM C&C www.facebook.com.fimcnc

레베이용, 미각으로 깨어나는 크리스마스

기다란 식탁에 하나둘 접시가 채워진다. 각종 샐러드 다양한 치즈들과 크루아상, 푸아그라, 달팽이요리, 연어, 오븐에 구운 칠면조, 닭 레드와
인으로 만든 스튜 코코뱅, 양갈비, 감자 그라탕, 리조또 등등 그 종류와 양에는 제한이 없다. 크리스마스 전야를 함께 하기 위해 24일부터 부지
런히 모인 가족들은 그렇게 본 식사 전부터 위스키, 와인, 샴페인 등 각자가 원하는 주종과 가벼운 먹을거리를 곁들이며 안부 인사와 함께 전
식 ‘아페리티프Aperitif’를 시작한다. 전식과 가족 나름의 휴식시간을 갖거나, 미사를 참여한 이후에는 크리스마스 정오가 다가오기 전까지 이
어지는 길고 긴 만찬 ‘레베이용Reveillon’의 막이 오른다. 크리스마스 만찬을 일컫는 ‘레베이용’은 동사 ‘레베이예Reveiller’에서 비롯된 이름
인데, 이는 ‘깨어나다, 되살아나다’라는 뜻을 지닌다. 즉 예수의 탄생과 함께 인류 또한 깨어난 특별한 날을 상징하는 것이다. 프랑스 사람들
은 크리스마스에 갖는 만찬에 이 이름을 붙였다. 즉 그 무엇보다 맛있고 정겨운 음식으로 즐기는 미각을 통해 이들이 깨달음을 얻고, 크리스
마스를 시작하겠다는 뜻 이다. 물론 프랑스 내에서도 지역마다, 또 집안마다 레베이용 때 주로 먹는 음식의 종류와 양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그래도 레베이용에는 마치 오늘이 음식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마지막 날인 것처럼 대식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두세 시간은 기본이고 시계
가 크리스마스의 시작을 알리며 12번의 종소리를 울릴 때까지 어른과 아이가 뒤섞여 도란도란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레베이용이 서서히 막
을 내려갈 때면 성모 마리아가 밤길을 잘 지나갈 수 있도록 집안의 모든 창가마다 촛불을 밝히고, 곧 다가올 산타할아버지의 방문에 흥분한
아이들과 함께 크리스마스트리 주변으로 신발을 벗어놓은 후 훈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 것이다.

프랑스에서 크리스마스는 가족만을 위한 시간이다. 크리스마스는 일 년 중 자주 보기 힘들었던 가족들이 온통 모여 하루에 두 번, 세 번, 네
번까지도 화려한 만찬을 먹고 떠들고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쌓는 명절이다. 주로 크리스마스를 특별한 기념일로 여겨 친구나 연인과 함께 시
간을 보내는 우리와는 조금 다른 개념인 셈이다. 대신에 그들에겐 새해 전야가 우리의 크리스마스와 비슷한 분위기라 한다. 그때는 좀 더 자유
롭고 개방적으로 또는 로맨틱하게 특별한 주변인들과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그중 크리스마스는 특히 그 누구도 허기져선 안 되는, 미각으로 충만해야하는 날이다. 크리스마스이브의 레베이용 만찬이 지나고, 25
일이 되면 오전에는 가벼운 아침으로 하루를 연 후 가족들이 함께 모여 선물을 푼다. 그 이후에는 레베이용과 비슷한 크리스마스 정찬을 즐기
고, 미사에 참여하거나 연극, 오페라를 관람하는 등 가족들마다의 방법으로 특별한 명절을 알록달록 장식한다.

프렌치를 위한 프렌치 레스토랑, 라 싸브어

당장이라도 프랑스로 훌쩍 떠나 현지인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만찬에 숟가락을 얹고 싶은가.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소음만 제외한다면 최대
한 라베이용과 비슷한 감흥을 그대에게 선사해줄 곳이 있다. 서래마을에서 오랜 세월 정통 프렌치 파인 다이닝으로 한 자리를 지켜온 프렌치
레스토랑 ‘라 싸브어La Saveur’이다. 얼마 전 같은 건물의 5층으로 레스토랑을 이전하며 사계절 내내 이국적인 운치를 선사할 테라스석이 더
해졌다. 프랑스어로 ’미각, 맛‘을 뜻하는 레스토랑의 이름답게 다양한 종류의 프렌치가 공존하는 요즘, 오직 프랑스식 프렌치 요리만을 선보
이며 두터운 매니아층을 확보해왔다. 이곳의 대표 셰프인 진경수 셰프는 ’파리 르 코르동 블루‘를 수석 졸업한 국내 프렌치 셰프 1세대이다.
미국에서 시작한 요리 공부를 프랑스에서 5년간 더 머물려 이어갔다. 하지만 파리에서도 공부와 셰프 일을 병행해야 했던 그에게 유유자적
먹고 즐긴 크리스마스의 추억은 거의 없다. 가족끼리 오붓하게 가정식 만찬을 즐기는 집들도 많지만 평소 아끼던 레스토랑에 나와 몇 시간을
술과 음식, 이야기들로 보내는 이들도 넘쳐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역시도 틈틈이 체감했던 프랑스인들의 크리스마스에 대한, 또 그 훈훈
한 음식에 대한 열정은 또렷이 기억한다.

이를 담아 우리에게 대접한 크리스마스 정식의 메뉴는 이러했다. 전식은 팬 프라이한 푸아그라와 무화과 처트니, 꼬냑 향을 입힌 사과로 시
작하고, 메인 디쉬로는 양갈비와 블랙 송로버섯 향을 입힌 단호박 무스가, 그리고 생강을 넣은 망고 푸딩과 망고 젤리로 달큰한 마무리를 하
는 코스다. 푸아그라를 워낙에 사랑하는 프랑스인들은 푸아그라를 팬 프라이하거나 무스로 만들어 빵에 발라서도 먹는다. 그들의 크리스마
스를 상상하며 전식으로 맛본 라 싸브어의 푸아그라는 눈부터 감기게 했다. 개인적으로 열기를 가한 푸아그라에서 나는 특유의 향을 선호하
지 않는 편이었지만, 이날의 푸아그라는 그 어떤 누린내와 거북함을 찾아볼 수 없는 맛이었다. 진경수 셰프는 단백질과 지방 함량의 비율이
훌륭한 푸아그라만을 수입해 사용한다. 더불어 조리과정에서 그 어떤 실수도 용납하지 않음으로서 이토록 감미로운 푸아그라의 부드러움을
끌어내는 것이다. 메인 요리였던 양갈비는 프랑스에서도 특별한 명절이면 칠면조, 닭, 돼지고기 등과 함께 온갖 음식이 올라가는 만찬 요리
에 자주 등장하는 메뉴이다. 라 싸브어의 양갈비는 양고기 특유의 누린내가 채 형성되지 않은 생후 180일 이전의 양고기만을 사용하기 때문
에 이것이 양고기가 맞는지 의아할 정도의 향과 식감을 낸다. 식사 내내 로제 와인과 디저트 와인, 샴페인 등을 번갈아가며 훌륭한 요리와
궁합까지 맞추다 보니 이미 마음만은 크리스마스가 금방이라도 다가온 것처럼 달아올랐다.

프랑스에서는 크리스마스면 새해의 행운을 기원하며 겨우살이를 문 위에 걸어 놓는다. 사랑하는 남녀는 그들의 아름다운 사랑을 위해 그 겨
우살이 아래에서 키스를 하기도 한다. 올 한해 어떤 일들이 있었든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에 대한 희망과 기쁨만을 나누는 시간, 크리스마스.
멋진 음식들이 담긴 새하얀 접시처럼 올해에는 새하얀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오기를 기원하며. 메리 크리스마스, 조이유 노엘Joyeux Noel !

주소 : 서울시 서초구 반포동 90-10 다솜빌딩 5층
영업시간 : 브런치 11:00~15:00, 디너 17:00~22:00 (매주 월요일 휴무)
가격 : 단품 요리 1만 원~4만 원대, 브런치 세트 6만 원대, 디너 코스 5만 원~8만 원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