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et the Legend of Pilsner Urquell

체코 맥주의 전설, 필스너 우르켈

우리가 지금 마시고 있는 전 세계 맥주의 90퍼센트를 차지하는 라거 맥주의 효시가 바로 체코에서 탄생한 필스너 우르켈이다. 1842년부터 오로지 좋은 맥주만을 위해 노력한 장인들의 노고로 우리들은 오늘도 변함없는 맛의 맥주를 들이켤 수 있다. 필스너의 고향이자 맥주의 성지인 체코 플젠에서 영광스러운 맥주를 직접 영접했다.
글 함희선 기자 사진 임성훈, 함희선 기자 취재협조 체코관광청 한국사무소 www.czechtourism.com

1 필스너 우르켈 양조장의 전경. 1842년 처음으로 맥주를 빚었던 그날 이후로도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변함없이 같은 맛의 필스너 우르켈을 생산 중이다. 
2 얼마 전까지 사용했던 양조장. 찌그러진 구리 굴뚝에서 세월의 흔적이 엿보인다. 
3 뽀얀 거품이 매력적인 황금빛 라거 필스너 우르켈. 
4 맥주를 보관하는 지하저장고. 현재는 방문객을 위한 용도로만 사용하고, 맥주는 현대식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다. 
5 양조장 입구에 우뚝 서있는 게이트. 필스너 우르켈 맥주 라벨에도 그려져 있다.

황금빛 톡 쏘는 물이 대체 뭐라고. 맥주의 성지라고 불리는 체코 플젠Plze.까지 직접 가서 영광스러운 맥주를 영접하기로 했다.
우리가 지금 마시고 있는 전 세계 맥주의 90퍼센트를 차지하는 라거 맥주의 효시가 바로 그곳에서 탄생한 필스너 우르켈Pilsner Urquell이므로. 필스, 필스너, 혹은 필제너라고 여기저기서 불리고 있지만, 오리지널이라는 뜻의 ‘우르켈’이 붙은 건 바로 필스너 우르켈 하나뿐. 세계에서 가장 많이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 세계에서 맥주 사랑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체코인들을 사로잡은 주인공이 바로 필스너 우르켈이니 말이다.

1842년 10월 15일

체코 맥주 양조의 역사는 13세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295년 도시가 설립되는 것과 거의 동시에 그들만의 맥주 전통이 시작되었다. 플젠과 맥주. 둘은 절대로 뗄 수 없는 서로가 서로에게 귀속되는 사이인거다. 벤체슬라우스Wenceslaus 2세 왕에게 맥주를 양조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260명의 시민들은 집에서 각각 맥주를 빚어 마시고, 또 내다 팔았다. 마치 우리가 옛날에 막걸리 만들어 마시던 시절처럼. 그러나 여기에는 반전이 있다. 맥주는 그 이후로 수세기 동안 양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맛과 퀄리티가 그리 좋지 못했다. 이유는 거창하지 않다. 좋은 맥주를 만든다는 건 늘 어려운 일이었으므로. 종종 마실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을 때는 시의원들이 맥주의 상태를 직접 체크하기도 했다. 오크로 만든 나무의자를 가져와 맥주를 부은 뒤 한 시간 동안 앉아있는 방법을 썼는데, 엉덩이와 의자가 진득하게 붙지 않는다면 나쁜 맥주로 취급하고, 양조권을 빼앗았다. 1838년에는 시민들이 직접 나쁜 맥주가 든 36개의 큰 오크 배럴을 시청 앞에 모두 쏟아버리면서 질 좋은 맥주를 요구하는 사태도 벌어졌었다. 이러한 사건들은 몇몇 맥주 양조업자들이 파이팅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제대로 된 맥주를 한번 만들어보자는 결심을 갖게 한 것이다.

이후 플젠의 양조업자들은 독일 바바리아 지방에서 맥주 양조로 평판이 높은 요세프 그롤Josef Groll을 초청해왔다. 그는 자신의 방식을 따랐지만, 로컬의 재료로만 만들다보니 의도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맥주가 탄생했다. 하얗고 두꺼운 거품, 맑고 투명한 황금빛, 쌉싸래하면서도 달고 청량한 세계 최초의 라거 맥주. 현재 전 세계 맥주의 90퍼센트를 차지하는 그 맥주의 효시가 바로 1842년 10월 15일에 플젠에서 탄생한 필스너 우르켈이다.

필스너 우르켈의 비밀

맥주의 역사는 필스너 우르켈을 기점으로 전과 후로 나뉜다. 그전에는 무조건 맥주라면 탁하고 짙은 에일에 불과했지만, 라거는 투명한 황금빛에 깊고 강한 끝 맛, 가벼운 청량감, 부드러운 목넘김이 특징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명심할 것은 맥주를 어떻게 따라 마시느냐에 따라서도 그 맛이 좌지우지 된다는 거다. 1958년부터 지금까지 필스너 우르켈에서 맥주를 따르는 일만 해왔다는 마스터 바텐더 요세프 투레크Josef Turek씨가 건네 준 맥주를 마실 때는 정말 거품 한 조각, 맥주 한 방울까지도 경건하게 느껴졌다. 흐뭇하게 나를 바라보는 할아버지 바텐더의 눈빛을 받으며, 플젠에서 갓 양조된 오리지널 필스너 우르켈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던 그 순간은 맥주를 마셔온 내 인생 중 최고의 순간이었다.

맥주의 3대 원료는 물, 맥아, 홉이다. 플젠에서 만드는 맥주의 뛰어난 맛은 이 세 가지 원료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우선 플젠의 물은 경도가 낮은 연수다. 보헤미아 지방의 보리는 단백질이 적고, 체코 사츠 지역에서 재배하는 홉은 유난히 쌉싸래한 맛이 강해서 최상의 맥주를 빚게 한다. 여기에 전통적인 하면발효 공법이 정점을 찍는다. 거대한 구릿빛 탱크가 있는 양조장의 시설들은 이제 대부분 현대화 되었지만, 원리와 방식만큼은 여전히 19세기 때의 전통을 따르고 있는 것도 오늘날 우리가 변함없이 훌륭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힘이다. 환상적인 맥주의 맛에 일단 감동하고 난 후라면, 체코에서 소비되는 맥주의 무려 절반 이상이 여기 플젠에서 생산하는 필스너 우르켈이 차지한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다.

전설의 양조장 투어

플젠스키 프레즈드로이Plze.sky Prazdroj 양조장에 가면 공장 투어를 통해 필스너 우르켈의 역사와 전설을 눈앞에서 마주할 수 있다. 플젠
구시가지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서 걸어서 가기에도 편리하다. 맥주 라벨에도 그려져 있는 1892년에 지어진 네오르네상스
스타일의 게이트를 지나면 거대한 규모의 양조장이 눈앞에 펼쳐지는데, 아이보리 색의 건물 외벽과 붉은 벽돌의 굴뚝, 1907년에 건설한 수탑이 파란 하늘 아래 놓인 풍경이 정겹다.

양조장 투어는 오래전 보리를 저장하는 용도로 썼던 창고건물인 방문객 센터에서 시작한다. 19-20세기의 양조장으로 꾸며놓은 코너와 필스너 우르켈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사진과 기록이 있는 전시장을 둘러보며 대략적으로 필스너 우르켈을 이해하고 난 다음에는 버스에 올라타 공장으로 향한다. 한 시간에 12만병의 유리병에 맥주를 주입할 수 있는 최신식 공장을 견학하고, 필스너 우르켈 맥주에 대한 비밀을 알려주는 짧은 다큐멘터리를 감상한 후, 무엇보다 가장 궁금한 양조장으로 향한다. 거대한 구릿빛의 시설, 쌉싸래한 홉의 향이 맴도는 공기, 후끈후끈한 기온은 필스너 우르켈을 즐겨 마시는 이들의 심장을 뛰게 한다. ‘더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이상한 기도도 하게 만든다. 앞으로 내가 마시게 될 맥주가 지금 저 구리통 안에서 빚어지고 있다니 그 감상이 꽤나 벅차다. 투어코스는 1990년대까지 실제 맥주 저장고로 쓰였던 9킬로미터 길이의 지하터널에서 끝이 난다. 오직 14개만 남은 대형 오크통에서 갓 뽑아낸 맥주를 맛보는 것이 투어의 마지막이자 짜릿한 하이라이트다. 캬아-. 하얀 거품에 입술을 축인 후, 저온살균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효모를 걷어내지 않은 신선한 맥주가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가면 감탄부터 나온다. 이 순간을 위해 아마도 플젠까지 찾아 온 것이 아닌가 싶다.

1 필스너 우르켈을 이끌었던 장인들의 사진을 전시해놓은 박물관.
2 투어가 시작되는 방문객 센터에는 19세기 양조장의 모습을 그대로 꾸며놓았다. 
3 큰 공장을 둘러보는 데 사용되는 투어 버스. 
4 지하 저장고에 있는 오크 배럴에서 맥주를 갓 뽑아온 어르신. 구리로 만든 통이 인상적이다. 
5 평생 완벽한 방식으로 맥주만 따라오신 마스터 바텐더가 맥주를 따르고 있다. 
6 기념품 숍에서는 다양한 필스너 우르켈 제품을 판매한다. 
7 오크통에서 따른 신선한 맥주와 먹는 치즈와 햄은 꿀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