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zech Republic :: City of Plze.

Strolling in Beautiful City Plze.

플젠 도시 산책, 타박타박 걸으며 만난 풍경들

맥주와 뗄 수 없는 사이인 도시 플젠. 그러나 맥주를 쏙 빼고서 도시를 산책했다. 타박타박 걸으며 만난 풍경은 소박하지만 예뻤다. 우아한 고딕양식의 집들에 반해 목이 아플 때까지 올려다보고, 소원을 이뤄준다는 천사의 얼굴도 쓰다듬고, 주민들 틈에 끼어 시장구경하고, 또 마리오네트 인형들과 춤도 췄다.  글 함희선 기자 사진 임성훈, 함희선 기자 취재협조 체코관광청 한국사무소 www.czechtourism.com

플젠 도시 산책
필스너 우르켈 양조장 내부를 둘러보는 핵심코스를 제외하고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는 데 필요한 시간은 단 1시간 30분이다. 거리상으로도 약 3킬로미터. 타박타박 걸으며 만나는 플젠 도시 산책은 즐겁다.

맥주가 아니라면 도시는 그저 그렇다고, 둘러본다 해도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는 남들의 말. 프라하에서 9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소도시 플젠Plze.은 맥주를 빼곤 찬밥 취급을 당하기 일쑤다. 그러나 난 청개구리 마음 반, 여행자의 발견 욕구 반으로 플젠에서 3일 밤을 묵어가기로 했다. 필스너 우르켈 양조장에 꼬박 하루를 투자하고도 이틀이나 주어진 셈. 계획을 짤 요량으로 체코에서 산 가이드북을 펼쳤더니-한국에서 파는 체코 관련 가이드북에도 플젠은 오로지 맥주 얘기뿐이다.- 이런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30분, 거리상으로 약 3킬로미터.’ 그렇다고 실망하진 않았다. 다만 평소보다 천천히 걸으며 뒷골목을 헤매야겠다고 생각했을 뿐. 가이드북을 철저하게 믿지도 않았다. 어느 도시가 두 시간 남짓한 시간으로 제대로 볼 수 있단 말이냐. 우리 동네만 해도 그것보다는 오래 걸린다. 역시나 여행은 늘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을 주는 법. 그저 타박타박 걸으며 만난 플젠의 풍경은 소박하지만 예뻤다. 그래서 여기에 자랑하고 싶다. “나 아름다운 도시 플젠에서 3일이나 있다 왔어요.”

광장은 플젠 여행의 시작점

플젠에 도착하고 나면 일단 어디서든 뾰족한 탑이 눈에 들어온다. 지도도 필요 없다. 대성당에 딸려있는 탑은 나침반의 바늘처럼 도시에서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 오로지 그 탑을 향해 돌진하면 플젠의 중심이자 구시가지가 나온다. 여러 가이드북이 언급하듯 주요한 관광지만 점찍듯이 도는 데에는 시간이 많이 필요 없다. 도시의 규모가 실제로 작고, 서로가 옹기종기 모여 있기 때문이다. 좋은 체력이나 튼튼한 다리도 굳이 요구되지 않는다. 플젠을 보고자하는 마음만 있다면 문제없다. 운치 있는 노란 컬러의 트램은 여행자에게는 멋진 구경용일뿐. 걸어서 둘러봐도 충분하다.

도시 산책의 시작점은 뾰족한 탑을 향해 걸어가다 만나게 되는 대형 광장. 가로 139미터, 세로 193미터의 리퍼블릭 스퀘어Republic Square는 체코뿐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도 큰 편에 속하는 거대한 광장으로 도시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는 역사지구의 중심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 예부터 자연스레 문화 이벤트의 중심이 되고, 마켓이 열리고, 축제가 펼쳐졌던 곳으로 2015년 유럽문화수도로 이곳 플젠이 선정되었으니 내년엔 더욱 더 시끌벅적하고 흥미로워지게 될 공간이다. 광장의 코너에 위치한 온드르제이 시슬러Ond.ej Cisler의 물이 쏟아지는 빛나는 황금 분수에 눈길을 살짝 준 후 대성당에 집중하자. 도시가 세워진 후 곧 착수해 1390년에 완성된 성 바르톨로메오 성당St. Bartholomew’s Cathedral은 유럽 고딕 조각의 진수를 보여주는 성모마리아와 어린 예수Virgin Mary and the Christ Child로 유명하다. 영혼이 마치 살아있는 듯한 마리아의 표정이 인상적이다. 도시의 네비게이션을 담당하고 있는 성당에 딸린 뾰족한 탑은 역시 체코에서 가장 높은 성당 탑이다. 높이는 102.6미터. 301개의 계단을 오르면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서 플젠의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중세시대에 제대로 계획되어 지어진 말끔한 도시, 거대한 광장을 주변으로 마치 바둑판처럼 구획이 나뉜 거리들은 바로 이 탑에 올라서 봐야 제 맛이다.

도시에 내려진 천사의 행운

“천사 앞에서 만나자!” 약속장소를 이렇게 정했을 때, 제대로 찾아오면 플젠 사람이고, 아니면 플젠 사람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있다. 진짜 죽어서 천당에서 만나자는 섬뜩한 말이 아니다. 성 바르톨로메오 성당 뒤쪽으로 바로크 스타일로 지어진 입구가 하나 있는데, 거기에 있는 철문이 아주 작은 천사들의 얼굴로 장식되어 있다. 로컬들이 말하는 천사들의 약속장소가 바로 거기다.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천사들의 얼굴은 각기 다르다. 그중에는 닳고 닳아서 본래의 금색이 다 벗겨지고 얼굴 형체까지 잃은 은빛의 천사가 하나있다.

전설에 따르면 1739년-전설임에도 불구하고, 날짜가 아주 정확하다.- 플젠에서 사형수의 목을 베는 일을 하던 어느 망나니는 끔찍한 직업 때문에 미사 중 성당 안으로 들어가 제단 앞에 설 수 없었단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성당 밖에서 열심히 기도하는 것뿐이었는데, 어찌나 오랫동안 앉아있었던지 일어나면서 쓰러지고 말았다. 다행히도 그가 왼손을 허공에 뻗었을 때 철문에 붙어있는 천사의 얼굴을 잡으면서 겨우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고. 밝은 양초를 들고 있던 여자가 이 장면을 보고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하면서 도시의 전설이 되었단다. 그 후부터 플젠 사람들은 왼손으로 이 천사를 잡으면 행운이 들어온다고 믿는다. 특별한 방식은 없다. 주민들은 시장갈 때, 출근할 때, 아님 미사 보러갈 때든지 상관없이 시시 때때로 이 광장을 지날 때마다 이 천사를 붙잡고 기도를 한다.

1 플젠 여행의 중심이 되는 리퍼블릭 광장. 성 바르톨로메오 성당이 있고, 그 앞으로는 시장이 열리고 있다. 
2 천사를 붙잡고 있는 어린 꼬마. 성 바르톨로메오 성당 뒤편으로 철문에 금빛의 천사 얼굴이 있다. 그중 은색으로 변한 천사 얼굴을 잡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3 광장에서 열리는 시장에서 솜사탕을 사고 있는 어린이. 
4 흑사병이 플젠을 피해간 것을 기념하는 금빛 마리아의 기둥.

우아한 고딕양식의 집들

천사의 얼굴을 붙잡고 마음에 품어온 소원을 빈 후 광장을 벗어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그건 무리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고딕양식의 집들이
광장을 빙 둘러싸고 있어 눈을 뗄 수가 없으므로. 욕심을 채우고자 뒷짐 지고 천천히 광장을 에둘러 걷다보면 목이 뻐근해질 정도로 우아한
건축물이 즐비하다. 좁은 정면, 그리고 뒤로 긴 건물. 중세시대에는 가능하면 광장을 바라보고 있는 집을 많이 짓기 위해서 일부러 이런 방법을 택했단다. 몇 세기가 넘도록 건물들은 넓이는 좁게, 높이는 높게, 그리고 지하로도 3-4층이 될 만큼 깊게 지어졌다. 아이보리, 핑크, 에메랄드 등 고운 컬러와 화려하게 장식된 정면은 풍요로웠던 중세시대의 플젠을 떠올린다. 플젠이 우흘라바Uhlava, 우슬라바Uslava, 라드부자Radbuza, 므제Mze 등 4개의 강이 교차하는 지점에 세워진 건 1295년. 독일에서 프라하로 가는 길목에 있기 때문에 플젠은 늘 보헤미아 지방에서 훌륭한 위치를 자랑했고, 무역루트의 교차점이 얻는 이익들을 추구했다. 지금도 자동차, 비행기, 버스 등을 생산하는 제조사 슈코다.koda가 있어서 대단한 산업도시의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광장에 있는 건축물 중에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것 하나는 시청사다.
주변의 건물들과 다르게 마치 우유팩 같은 모양. 정교한 그림이 그려진 르네상스 스타일의 예쁜 우유팩 말이다. 이탈리아 건축가인 지오반니 드 스타티오Giovanni de Statio의 1558년도 작품으로 흑백으로 표현된 생동감 있는 모자이크와 지붕에 솟아있는 갈색의 작은 타워들이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다. 롤랜드 나이트Roland Knight의 동상이 커다란 회색기둥에 붙어있는 시청사 옆 건물은 임페리얼 하우스Imperial House다. 1599년 9월 흑사병이 프라하를 덮쳤을 때 루돌프Rudolf 2세 왕은 이곳에 은신처를 마련했었다. 덕분에 플젠의 시민들은 황제의 모든 것을 곁에서 지켜보는 영광을 누렸고, 플젠은 짧은 기간이지만 1600년 6월 4일까지 신성로마제국의 수도가 되었더랬다. 당시 도시가 흑사병에 큰 피해를 입지 않은 것을 상징으로 하는 흑사병 기둥이 바로 그 앞 광장에 자랑스레 세워져 있다. 꼭대기에 있는 금색의 마리아가 플젠을 굽어보고 있고.

1 도시에는 우아하고 예쁜 건물들이 정말 많다. 그것들을 다 볼 욕심을 가지면 목 뒤가 아려올 정도다. 
2 르네상스 스타일의 시청사 건물. 
3 강아지와 함께 광장을 산책중인 여인. 
4 플젠은 붐비지도 않고 타박타박 걸으며 산책하기 좋다. 광장에는 벤치도 여럿 있으니 다리가 아프면 쉬어갈 것. 
5 색깔이 곱고 우아한 건축물이 하도 즐비해 천천히 광장을 에둘러 걷다보면 목이 뻐근해질 정도다.

메인 광장을 벗어난 산책길

실컷 둘러본 뒤라면 드디어 리퍼블릭 광장을 벗어날 차례다. 그렇다고 멀리 가는 것도 아니다. 남동쪽으로 15분만 걸어가면 도시의 그 어떤 건축물들과도 대조되는 모습의 그레이트 시나고그Great Synagogue가 나온다. 시나고그는 유대교의 회당이다. 건물 중앙에 새겨진 ‘다윗의 별’을 보았다면 금방 눈치 챘을 것이다. 플젠의 이 회당은 1892년 무리쉬 로마네스크Moorish-Romanesque 스타일로 건설되었으며 체코에서 가장 큰 시나고그이자 유럽에서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음으로 가장 큰 시나고그이다. 플젠에 왜 이렇게 큰 유대교 회당이 있을까. 이 도시에는 여러 번에 걸친 유대인 정착이 있었다. 1938년에는 유대인 커뮤니티가 3천2백 명에 이른 적도 있다. 그러나 나치의 점령으로 그 많던 로컬 유대인 커뮤니티를 대부분을 잃었다. 다행인지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이 회당을 파괴하지 않고 군용 창고로 사용했기에 원래 모습 그대로가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었다.

시나고그에서 다시 광장 쪽으로 오다가 골목으로 들어가면 이내 녹음이 펼쳐진 정원들이 죽 이어진다. 19세기에 만들어진 것들로 여러 부분으로 나뉘어져 각기 다른 이름들이 붙어있다. 보통의 여행자들이 광장에서 단 한 블록 떨어져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까지 오지 않기 때문에 공원에 앉아 있다는 건 플젠의 로컬 사람들 틈에 섞여 한가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뜻이다. 벤치에 앉아 그냥 쉬어도 되고, 노천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거나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좋다. 큰 나무와 꽃, 분수가 있는 공원 양쪽으로 국립극장, 도서관, 호텔, 수도원, 보헤미아 박물관 등 주요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수탑을 지나서 있는 19세기에 베네치아라고 불린 적도 있다는 밀 레이스Mill Race가 있는 정원도 추천하지만, 그중에서도 크리지크 가든Krizik Gardens은 굳이 찾아가 볼만하다. 체코에서 가장 큰 벽화인 테아트럼 문디Teatrum Mundi가 있어서다. 도시를 세운 벤체슬라우스Wenceslaus 2세 왕, 신성로마제국의 수도로 만들었던 루돌프Rudolf 2세, 플젠 출신의 유명배우 미로 슬라브Miro Slav, 슈코다 웍스.koda Works를 설립한 에밀 슈코다Emil .koda 등 도시의 주요한 인물들이 묘사되어 있어 플젠 역사 공부하기 딱이다. 단, 체코에서 가장 크다고 해서 엄청난 규모를 기대하지 말 것. 구시가지에 있는 빌딩은 그리 크거나 높지 않음을 염두에 두자.

마리오네트 인형 혹은 맥주

이상하게 플젠 여행은 주로 산책으로 끝난다. 식사할 때나 맥주를 마실 때가 아니라면 보통 야외에서 머물게 되는 묘한 마력의 도시다. 그러나 실내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두 개의 흥미로운 박물관이 있다. 마리오네트 박물관Puppet Museum과 맥주 박물관 Brewery Museum. 마리오네트 박물관에는 3백 개가 넘는 오리지널 인형이 전시되고 있다. 1830년에 만들어진 오래된 마리오네트부터 2미터가 넘는 거대인형까지. 특히 플젠 출신이자 20세기 초반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요제프 스쿠파Josef Skupa의 작품인 아버지 슈페이블Spejbl과 아들 후르비넥Hurvinek도 볼 수 있다. 체코인들이라면 모두 스쿠파의 인형극을 보고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니 3백 개의 인형 중에 꼭 찾아서 만나보길.

맥주를 빼고서 산책하는 것이 콘셉트였는데, 아무래도 맥주 박물관이 마음에 걸린다. 15세기 실제 양조장이 있던 건물에 들어선 박물관에는 과거에 사용하던 양조시설, 오크통, 아이스박스, 맥주병, 맥주 라벨, 롤러, 탭룸 등이 빼곡하게 전시되어 있어 플젠 맥주의 역사와 전통을 가까이 느껴볼 수 있다. 짜릿한 경험은 20킬로미터나 이어진 지하 저장고 탐험이다. 도시 아래로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복도는 과거 집집마다 갖추고 있던 창고를 연결한 길. 특정 지점마다 지금이 어떤 길이나 건물 아래인지 알려주는 표지판이 있어 긴장감을 더한다. 맥주와 식재료뿐 아니라 우물을 파고, 귀중한 보물들도 숨겨놓았던 곳이란다. 박물관 투어는 그중 800미터를 돌아본다.

1 체코에서 가장 큰 벽화. 플젠에서 가장 주요한 인물들이 묘사되어 있어 역사 공부하기 딱이다. 
2 유대교인들의 회당인 그레이트 시나고그. 체코에서 가장 크다. 
3 보통의 여행자들은 정원을 찾지 않는다. 광장에서 한걸음만 벗어나면 녹음이 펼쳐지는데도 불구하고. 
4 마리오네트 박물관. 
5 맥주 박물관의 지하 저장고. 도시 아래로 미로처럼 얽혀있다. 
6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도 인기 있는 요제프 스쿠파의 인형들. 슈페이블과 후르비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