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ärnten, Road, and rest presented by the Alps

알프스가 선물한 도로, 그리고 쉼

3,000개가 넘는 알프스의 봉우리들이 어깨춤을 추며 산맥을 이어간다. 그 사이사이로 능선과 계곡을 따라 절묘하게 놓인 도로, 그로스글로크너 하이 알파인 로드(Grossglockner High Alpine Road). 케른텐 주로 향하는 길, 그저 차를 타고 알프스를 질주하는 일이 대자연과 교감하는 최고의 방법이란 걸 깨달았다. 이후 케른텐 주의 숲과 호수, 고성과 전망탑에서 경험한 모든 것들은 알프스가 사람에게 주는 휴식 같은 선물이 돼줬다.

에디팅 편집부 글과 사진 이두용 트래블 인플루언서 취재협조 오스트리아관광청, 터키항공

황제도 반한 알프스의 도로

한국에서 오스트리아로 날아올 때, 다른 어떤 곳보다 기대했던 곳이 그로스글로크너 하이 알파인로드였다. 구름을 뚫고 하늘까지 치솟은 오스트리아 최고봉 그로스글로크너(3,798m) 아래로 2,571m 높이까지 숨 막힐 듯 굽이굽이 이어진 산악도로. 거장 모차르트의 영혼이 숨 쉬는 잘츠부르크와 이번 여정엔 포함되지 않은 비엔나도 버킷리스트였지만 사진 한 장으로 마음을 뺏긴 이 도로는 반드시 달려보고 싶은 우선순위가 돼 있었다.

전 세계 모터사이클 마니아에게 성지로 여겨지는 그로스글로크너 하이 알파인로드

드디어 잘츠부르크의 끄트머리에서 케른텐 주로 향하는 들머리에 올랐다. 톨게이트를 지나자 모터사이클을 타고 천상의 도로를 달리기 위해 준비 중인 라이더들이 여럿 보인다. 실제로 이곳은 전 세계 모터사이클 마니아에게 성지로 여겨진다. 라이딩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곳으로 날아와 만년설 봉우리를 올려다보며 48km 거리를 질주하고 싶어 한다. 덕분에 매년 이곳에선 BMW 바이크와 같은 유명 모터사이클 제조사에서 다양한 라이딩 이벤트를 개최하기도 한다. 최근 모터사이클을 한대 구입하고 라이딩의 재미를 느끼던 터라 나도 마음 같아선 이들과 함께 달리고 싶었다.

모터사이클 행렬이 출발하고 내가 탄 차량도 그 뒤를 따랐다. 속도를 내자 주변 풍경이 시시각각 변한다. 키 큰 나무 한 그루 없어 알프스의 능선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보인다. 천재 화가가 그린 유화작품 수백 점을 순서대로 빠르게 나열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재빠르게 달리는 것도 좋지만 며칠을 두고 걸어도 좋을 것 같다.

이 도로는 한겨울엔 폭설로 통행이 금지된다. 연중 5월 초부터 10월 말까지 6개월 동안만 달릴 수 있다. 기한 제한이 있다고 하니 이런 기회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시원하게 뻗은 직선대로와 환상적인 곡선 구간을 지나면 드디어 오스트리아 최고봉 그로스글로크너가 담벼락처럼 앞길을 막아선다.

너나 할 것 없이 이곳에 멈춰 풍경을 감상하게 되는데 이곳이 바로 카이저-프란츠-요제프스-회에(Kaiser-Franz-Josefs-Hohe) 방문자 센터다. 1856년 엘리자베스 황후와 이곳을 방문한 카이저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인근엔 황제의 조각상도 세워있다. 이곳은 동 알프스에서 가장 큰 빙하 파르테르체(Pasterze)를 볼 수 있는 데다 걷는 자들의 천국 감수그루벤베크(Gamsgrubenweg) 트레일의 출발점이기도 해서 많은 이가 찾는다. 다음 기회엔 꼭 두발로 이곳을 지나 보리라.

알프스 허리에 올라 느리게 걷기

감사하게도 소원은 빨리 이뤄졌다. 슬로우 트레일 미르노크(Slow Trail Mirnock)에 참여하게 됐다. 이 프로그램은 밀슈타트 호수 알파인 트레일(Millstätter See Alpine Trail)의 하나로 밀슈타트 호수와 미르노크 산이 만들어낸 그림 같은 풍경 속에서 느리게 걸으며 자연을 즐기는 것이다.

산과 호수를 배경 삼아 총 8개 코스, 200km의 트레일 코스로 구성돼 있다. 코스마다 서로 다른 매력이 있어 여유가 있다면 모두를 걸어보는 것이 좋은데 총 13일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코스는 최저 600m에서 최고 2,600m의 알프스 능선까지 지난다. 각 코스는 모두 GPS를 활용해 구글어스(Google earth) 같은 지도 프로그램으로 동선과 방향을 검색할 수 있다.

길을 잃거나 헤맬 이유가 없다. 13일이 짧은 일정은 아니지만, 시간을 낼 수 있다면 오스트리아 청정 자연에서 걷기를 통해 쉼을 얻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걷기로 한 코스는 8개의 동선 중 백미로 꼽히는 ‘발코니 오브 스타(Balcony of Stars)’다.

일몰이 시작되는 시간, 밀슈타트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미르노크 산 중턱에서 물위로 쏟아지는 햇살을 보며 걷는 하이킹 프로그램이다. 설명만 듣고 있어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일정 때문에 낮에 출발지에 도착했다. 뜨거운 태양이 머리 위에 떠있었지만 잔잔한 바람이 끌어안은 미르노크의 초목과, 윤슬로 뒤덮인 밀슈타트 호수는 아름다움의 정점에 와 있었다.

정말 천천히 걸었다. 가슴으로 파고드는 공기가 서울에서 들이켰던 것과 차원이 다르다. 숨만 쉬어도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야트막한 언덕과 오솔길을 걸으니 알프스의 소년이라도 된 듯 좋다. 코스 중간 호수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나무로 만들어진 발코니가 있다. 이곳에 앉아 시원한 일몰을 지켜보면 감동에 왈칵 눈물이라도 쏟을 것 같다. 몇 개의 이정표와 코스 설명이 쓰인 안내판을 지나 오두막을 통과하니 한 시간 남짓한 코스가 끝났다. 조금 아쉽다. 오스트리아 케른텐주를 배경으로 한 짧은 자연 다큐멘터리를 본 것 같다. 몸은 이렇게나 상쾌하고.

중세의 성을 지키는 터줏대감들

케른텐 주가 특별한 이유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지만 란드스크론 성(Landskron Castle)은 조금 남다르다.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은 오스트리아뿐 아니라 유럽을 통틀어도 유일한데 바로 원숭이와 독수리다. 동물원에서 볼 수 있는 흔한 동물이 아니라 이들은 이곳의 터줏대감으로 란드스크론 성의 최대 볼거리가 되었다.

먼저 성 아래에 있는 ‘몽키 마운틴(Monkey-Mountain)’. 천혜의 자연을 그대로 보전한 넓은 울타리에 일본원숭이 167마리가 생활하고 있다. 최초 40마리를 데려와 키우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워낙 자연이 좋으니 자연스레 가족이 늘었다고. 사람을 봐도 익살스레 다가오는 원숭이가 반갑다.

란드스크론 성 안쪽으로 들어가면 광장이 나오고 한편에 객석이 마련돼 있다. 이곳은 케른텐 주에 서식하는 맹금류를 조련해 쇼를 선보이는 곳이다. 매와 수리, 부엉이와 독수리에 이르는 크고 작은 새들이 하늘로 크게 날아올랐다가 조련사의 팔에 내려와 앉는다. 맹금류 특유의 모습으로 움직이는 피사체에게 달려들기도 한다. 45분간 눈앞에서 펼쳐지는 장면들이 뇌리에 생생하게 박혔다.

오후엔 뵈르트 호수(Wörthersee)로 나가 요트에 올랐다. 이곳은 브람스와 말러 등 많은 예술가의 작품에 영감을 준 명소라고 한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호수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인다. 보트에 올라 베드에 누워 책을 읽거나 낚시를 하는 사람도 있다. 문득 이들의 얼굴 표정에 드러나는 여유가 부러웠다.

뵈르트 호수를 품고 있는 마리아 뵈르트(Maria Wörther)지구 전경을 보기 위해 케른텐 주의 명물 피라미덴코겔(Pyramidenkogel)을 찾았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목조 전망탑으로 무려 100m 높이로 설계됐다. 최초 1950년에 세워졌다가 2013년 건축가 디트마어 카덴에 의해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됐다. 전망탑도 높은데 세워진 곳 역시 높은 곳에 있어 조망은 정말 대단했다.

요트를 타고 돌아본 호수는 물론 마리아 뵈르트 지구를 비롯해 케른텐 주 곳곳이 손바닥 들여다보듯 세밀하게 보인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기분이다. 좌에서 우로 고개만 돌려도 가슴이 뻥 뚫린 듯 시원하다. 절대자라도 된 듯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며 가만히 오스트리아에서의 하루하루를 되짚어 봤다. 순간순간 소중하지 않은 시간이 없다. 아쉽다. 이곳에서 찍은 사진을 열어보며 두고두고 오스트리아를 그리워할 것 같다.

호텔 카르너호프(Hotel Karnerhof)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깨끗한 호수 중 하나로 손꼽히는 파커호수 한 편에 세워진 4성급 호텔이다. 호텔 내부에 수영장과 스파 등 다양한 시설이 마련돼 있지만, 호수와 접해 있어 청정 호수로 들어가 워터 액티비티를 즐길 수도 있다. 호텔 근처엔 하이킹과 트레킹 코스도 있다. 말 그대로 호텔에 머물면서 이곳 근처에서만 즐겨도 천국 같은 시간을 경험할 수 있다.

글로크너하우스(Glocknerhaus)

그로스글로크너 하이 알파인 로드를 한편에 두고 파노라마처럼 즐기며 식사할 수 있는 레스토랑이다. 그림 같은 알프스의 산 중턱에 위치해 드라이브와 라이딩의 쉼터 역할뿐 아니라, 오스트리아 알프스를 배경으로 즐기는 트레킹과 하이킹, 클라이밍 등의 전진기지 역할도 톡톡히 한다. 이곳은 그로스글로크너 하이 알파인 로드에 위치하기 때문에 도로와 마찬가지로 5월 초부터 10월 말까지만 영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