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 Field _ 유럽-Budapest & Wien

Budapest & Wien
부다페스트와 빈, 인생처럼!

 

부다페스트는 슬프기도 하고, 불쾌했다가, 반짝거리기도 했다. 부다페스트의 굴라쉬는 국 한 그릇을 비울 때처럼 몸과 마음을 든든하게 해줬다. 빈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황금빛 그림 같았고, 그곳의 초콜릿 케이크와 슈니첼은 달콤했다. 인생도 때로 슬프고, 달콤하며, 어떨 땐 불쾌하기 짝이 없지만, 그런데도 타인의 눈으로 봤을 땐 햇살 아래 반짝이며 빛나는 무엇이다.
에디팅 편집부 글과 사진 정기영 트래블 인플루언서

부다페스트의 반짝이는 야경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어부의 요새이다. 이곳은 19세기 지어져 어부들이 적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 요새를 방어하며 그 이름이 유래됐다고 전해진다. 헝가리 애국정신의 상징적인 장소로, 도성을 방어하기 지은 서울 성곽길도 떠올랐다. 어부의 요새 역시 야경으로 유명하지만, 일정이 맞지 않아 국회의사당 야경을 보기로 했다. 어부의 요새에서 가까운 마차시 성당으로 이동했는데, 햇살이 드리우니 반짝반짝 빛나는 지붕이 아름다워 자꾸 바라보게 됐다. 이곳은 국왕의 결혼식과 대관식 장소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햇빛이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지붕이 동화 속의 궁전을 연상시켰다. 햇빛이 반짝이는 그 모습이 대관식과 결혼식처럼 인생의 가장 반짝거리는 순간과 닮은꼴이다.

부다페스트의 노란색 트램이 오가는 거리를 걸으며, 국회의사당 야경을 보기 위해 발길을 옮겼다. 강가에서 유람선을 기다리는 시간마저도 하염없이 국회의사당을 구경했다. 유람선을 타고 세체니 다리 밑을 지나 고요하고 여유로운 시간이 흘렀다. 밤에 본 부다왕궁과 국회의사당의 야경은 그야말로 황홀했다. 저 야경을 한 번이라도 보기 위해 전 세계 각지에서 여행자들이 몰려든다. 지금이 현재인지, 과거인지도 어둠 속에 모호해졌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인적마저 드물고 무서웠지만, 황금색이 넘실거리는 야경은 두려움도 잊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부다페스트의 뉴욕카페에는 늦은 시간에 도착해서인지 직원들의 표정이 곱진 않았다. 동양인들에게 불친절하단 소문이 맞는 건지, 라스트오더 시간에 들이닥친 이방인이 반갑지 않았기 때문인지, 끝내 이유를 밝히진 못했다. 차마 동양인을 무시하느냐, 따지진 못했으나, 직원들의 불쾌한 표정은 생채기처럼 그날의 기억으로 아로새겨졌다. 뉴욕카페는 소문대로 아름답긴 했다. 영화 속에서나 보던 고풍스러운 바로크풍의 화려한 실내 모습과 높은 층고에 감탄이 터졌다. 눈으로 인테리어를 향유하고, 입으로 케이크를 음미했지만,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더냐 묻는다면 큰 고민 없이 고개를 가로저을 것 같다. 동유럽을 여행하며 가장 잘한 것은 숙소를 잡은 일이었는데, 중심지에 숙소를 잡아서 외출했다가 휴대폰 배터리가 모자라면 숙소로 돌아와 충전하고 다시 나갈 정도로 이동이 편했기 때문이다. 부다페스트 최대의 성당인 성이슈트반대성당이 게스트하우스에서 100m 거리였기 때문에 자주 지나쳤고, 게스트하우스 앞에는 커다란 관람차도 볼 수 있었다. 세체니 다리에서 서니, 멀리 부다 왕궁이 보인다. 유유히 흐르는 다뉴브(도나우) 강도, 산 위에 선 왕궁 모습이며 모든 게 근사했다.

네 죽음에서는 한 송이 꽃도

흰 깃의 한 마리 비둘기도 날지 않았다

네 죽음을 보듬고 부다페스트의 밤은 목 놓아 울 수도 없었다

죽어서 한결 가벼운 네 영혼은

감시의 일만 눈초리도 미칠 수 없는

다뉴브 강 푸른 물결 위에 와서

오히려 죽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소리 높여 울었다

다뉴브 강은 맑고 잔잔한 흐름일까

요한 스트라우스의 그대로의 선율일까

-김춘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中

 

강가를 산책하던 중에 우연히 강변에 신발들이 널브러져 있는 걸 발견했다. 영문을 몰랐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유태인의 신발'로 알려져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하루에도 50여 명씩 유태인들을 총살해 강물에 빠트렸다고 한다. 쇠로 만든 유태인들의 신발은 녹이 슨 채 그 자리를 슬프게 지키며, 다뉴브 강을 향해 늘어서 있었다. 김춘수 시인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은 이곳에서 희생된 억울한 사람들의 넋을 위로하는 듯하다.

굴라쉬 한 그릇

부다페스트에서 맛 본 굴라쉬는 소울푸드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정겹고 중독성이 있었다. 국이 없으면 안 되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든 입맛에 맞을 만한 요리가 동유럽에 있을 줄이야! 토마토를 기본으로 양파 등 채소와 함께 고기를 넉넉하게 넣어 자작한 국물을 낸 굴라쉬를 먹고 나니 국밥 한 그릇 먹은 것처럼 속이 든든했다. 한국에서도 가끔씩 생각나는 음식인 굴라쉬를 먹고 오스트리아 빈으로 넘어가기 전에 체력을 보충할 수 있었다. 부다왕궁에 갈 때는 등산열차인 푸니쿨라 열차를 탔는데, 1,200포린트였다. 이 푸니쿨라 열차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괴되었다가 다시 복구되었다고 한다.

오스트리아 빈 도착

켈레티 역에서 기차를 타고 부다페스트에서 빈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는 기대만큼 들떠 있었고, 기차는 들뜬 마음을 대변하듯 덜컹거렸다. 간단한 요깃거리가 기차여행을 더욱 완벽하게 만들어줬다. 커다란 창이 돋보였고 유럽풍의 객차 인테리어가 눈을 즐겁게 했다. 유일한 방해공작이라곤 역무원이 잠깐 여권과 티켓을 확인하고 간 것뿐이다. 기차에서 내리는 길에는 한국 사람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한국분인가요?" 묻더니 몹시 반가워했다. 악수를 하며 "좋은 여행 하라"며 짤막한 인사를 서로 건넸다. 베토벤(Beethoven)과 모차르트(Mozart)를 배출한 음악 도시인 빈에 도착하니, 클래식 음악들이 흐를 것 같았다. 이곳의 풍광 역시 올드 클래식이다. 슈테판 역에서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출구로 나섰다.

바로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성슈테판 성당의 위용을 보며 "와"하는 감탄사가 터진다. 성당 종소리와 주변에서 울려 퍼지는 말발굽 소리가 중세로 우리를 냉큼 인도했다. 성당의 건축미는 가히 최고라고 할 수 있었고 가까이에서 보면 세월의 흔적이 남아서 역사적 무게까지 실감케 해 한층 감탄을 자아냈다. 밤에 보는 황홀한 모습은 또 어떤가. 조명을 받아 밤의 장막 속에서도 여전히 빛나는 여주인공의 모습이었다. 우리가 묵은 호텔과 불과 100m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자주 지나쳤고, 보는 위치와 각도에 따라 볼 때마다 다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성슈테판 성당 인근에선 한국말로 "꽃보다 할배, 꽃보다 할배"라며 유명 TV프로그램 제목을 한국말로 말하며 호객하는 사람들을 만나 웃음이 났다.

점심을 먹으러 들른 맥도날드는 여느 맛집 부럽지 않을 만큼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유럽에서 줄 서서 먹는 햄버거집은 어딘지 어울리지 않았지만, 어느 나라에서 맛보든지 햄버거는 입맛에 맞는다는 점도 놀랄 일이었다. 빈 미술사 박물관에 들르니, 빈 미술사 박물관 티켓팅을 하는 과정에서 가장 저렴한 티켓을 사려고 했더니 직원이 "학생인가요?"라고 영어로 묻기에 "No"라고 답을 했다. 그랬더니 "그런데 왜 이 티켓을 사요?"라고 Budapest&Wien직원이 반문해서 그제야 가장 저렴한 티켓이 학생 할인권임을 알게 된 해프닝도 있었다. 결국, 좀 더 비싼(?) 다른 티켓을 끊고 입장을 했고, 오디오 가이드도 한국어로 마련되어 있어 좋았다. 필수 쇼핑 품목으로 유명한 마너(Manner) 과자점에 들르니, 마치 분홍색 과자나라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부다페스트에 뉴욕카페가 있듯이, 빈에는 3대 카페가 있다. 그중에서 카페 자허에 방문했다. 멜랑쥐(Melange)를 먹었다. 이 이후로 동유럽에 가려는 사람들에게 뉴욕카페보단 카페 자허를 추천하곤 한다. 왕궁을 옮겨 놓은 수준으로 고급스런 인테리어와 일하는 직원들의 정갈함이며, 복장도 마음에 들었다. 사실 이쯤 되니 온종일 돌아다닌 여독이 몰려왔다. 반쯤 졸며 휘핑크림을 올린 카페라테 같은 멜랑쥐(Melange)를 먹는데 달콤하니, 아뿔싸, 졸음을 부추길 정도였지만 다음 일정을 생각하며 잠을 몰아냈다. 오리지널 자허 토르테(Original Sacher-Torte)도 너무 달지 않아서 멜랑쥐와 썩 어울렸다. 자허 토르테는 오스트리아 빈의 대표적인 초콜릿 케이크이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초콜릿을 겉에 입혀 보는 사람들의 입맛을 돋웠다. 빈에 사는 사람들은 ‘비엔나 커피’라고 하지 않는 아인슈페너(Einspanner)도 꼭 맛보아야 한다.

젤라또를 먹으며 콜마르크트 거리를 거닐거나 시립공원에서 햇빛에 비친 나무들을 바라보는 일도 즐거움이었다. 건축물들은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고, 나뭇잎들도 햇빛을 받아 공평하게 빛이 났다. 성스럽고, 하찮고, 햇살 아래에선 그런 구분 자체가 무의미했다. 공원 잔디 위에 종이쪼가리 하나 필요 없이 자유롭게 앉아서 각각의 오후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에 부러운 시선을 보냈다. 서울살이의 치열함에 지친 마음도, 한동안 공원 잔디 위에 앉아 함께 쉬었다.

벨베데레 궁과 구스타프 클림트

빨간색 트램을 타고 벨베데레 궁으로 이동했다. 한국에는 트램이 없다 보니, 일부러라도 자꾸 타고 싶어지는 트램이었다. 벨베데레 상궁에 도착했고, 쨍한 날씨만큼 마음속에도 기대감이 가득 부풀어올랐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앞에서 발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이 그림을 보려고 먼 동양에서 온 것처럼, 혹은 다신 못 벌 연인처럼 발이 바닥에 달라붙었다. 이 그림의 모델이 된 모델은 에밀리에 플뢰게로 추정되고 있다. 바로, 구스타프 클림트의 처제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미망인이 된다. 클림트는 동생이 죽은 후 조카들을 돌보며 에밀리에 플뢰게와 죽을 때까지 정신적 교감을 나누게 된다. 클림트의 ‘키스’를 보면 단순히 포옹하는 게 아니라 지켜주겠노라 보호막을 치듯이 여인을 안고 있는 사내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는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여인의 볼에 열렬히 입맞춤한다. 입술이 아니고 말이다. 따라서 이 그림을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밀리에 플뢰게가 나눈 정신적 교감의 발현으로 풀이하는 해석이 있다. 사생아만 14명에 달할 정도로 여성 편력이 심했던 구스타프 클림트의 정신적 사랑은 믿기 어려울 정도다. 벨베데레 궁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최대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인 '유디트'는 똑바로 마주보는 게 겁이 났다. 이 그림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농염한 유디트의 모습에 시선이 집중되어 자칫 지나칠 수도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캔버스 하단에 유디트의 손에 들린 적장의 수급, 즉 적장의 잘린 얼굴이 반쯤 가려져 있는 걸 발견하면 기겁하게 된다. '팜므파탈'이라는 단어 외에 이 그림을 완벽하게 설명할 다른 말이 없다. 기원전 2세기경,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에 쳐들어온 아시리아군의 포위 하에 사면초가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34일간 즉, 한 달이 넘도록 갈증과 기근으로 힘들어하던 원로들은 항복을 결심했다. 절체절명의 순간 적진에서 적장의 머리를 베고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구한 유디트는 이후 105살까지 장수했다고 한다. 장식적인 그림을 그리던 구스타프 클림트의 화풍은 말년에 대폭 변화를 겪게 된다. 벨베데레궁전에 있는 ‘해바라기’, ‘해바라기가 있는 농장 정원’ 등의 작품만 봐도 그렇다. 그는 말년에 아터 호수에 가서 휴식을 취하면서 풍경화 작업에 몰두한다. 평생 동안 정신적 사랑으로 이어진 에밀리에 플뢰게와 함께 보낸 시간의 정신적 풍요가 그림 속에서 생동한다. 구스타프 클림트를 세계적 화가의 반열에 올린 ‘키스’와 같은 대중적인 작품 보다 말년에 그린 풍경화들에 마음이 가는 건 왜일까. 그가 그린 해바라기 그림들을 보면 말년에 꺼져가는 생명과 청춘을 해바라기처럼 활활 피어올리고 싶었던 열망들이 느껴질 듯하다.

쇤부른 역을 나와 쇤부른 궁전으로 향했다. 해 질 녘쯤이라 조명이 켜지고 있었다. 쉰부른 궁전 내 잔디밭에서 내려다보니 빈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조용함 속에서 조깅하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하며 그곳에 한참을 앉아있다가 내려왔다. 저녁으로 슈니첼(Schnitzel)을 먹었다. 굴라쉬만큼 잘 알려진 동유럽 음식이다. 돈가스와 비슷한데, 두툼한 돈가스와는 달리 고기를 얇고 납작하게 튀긴다. 슈니첼과 곁들여 먹는 감자튀김도 맛있었다. 돈가스에 잼은 어울리지 않지만, 돈가스와 비슷한 슈니첼과 잼은 궁합이 썩 좋았다. 먹고서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거리를 산책하니,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