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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khalin

민족의 한이 서린 외로운 섬, 사할린

 

사할린은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땅이다. 일제 강점기 망국의 한을 달래며 많은 애국지사들이 모여든 곳이고,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는 귀국선에 목매었던 한 맺힌 외로운 섬이기에 더욱 애잔한 땅이다.

 

에디팅 전준호 기자 글과 사진 안민호 롯데관광 크루즈사업본부장. 블라디보스토크 국제크루즈터미널 베라리 사장

캄차츠키에서 강행군 한 탓인지 사할린 공항까지 3시간여 비행하는 내내 쏟아지는 잠을 참을 수가 없었다. 사할린은 북태평양에 있는 러시아 연방의 섬으로 쿠릴 제도와 함께 러시아가 영유한 섬 중에서 가장 큰 섬이다. 사할린의 주도는 유즈노 사할린스크Yuzhno Sakhalinsk로 온 세상을 하얀 눈으로 덮는 ‘겨울왕국’ 이기에 겨울 여행지로 각광 받고 있다. 하지만 7~8월에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는 독자를 위해 사할린의 7월을 소개한다.

 

‘한 여름날’의 성인 축제 마당

동행한 베라리 사장이 들려 볼 곳이 있다며 사할린 시내로 들어서기 전, 잠시 포장도로를 벗어나 비포장 길을 십여 분 정도 달리니 요란한 음악소리가 울려 퍼지는 흥겨운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마침 오늘은 러시아인들이 ‘한 여름날Mid August’을 기념하는 날로 많은 주민들이 모여 있었다. 특히 여성들은 주변에 널려있는 야생화로 아름다운 면류관을 만들어 쓰고 무대에서 가수를 따라서 노래도 부르며 흥겨운 축제를 즐기는 날이다. 이곳 축제장 안쪽으로는 산중턱 멀리까지 트렉킹 코스가 갖추어져 있다. 울창한 산림 속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한동안 삼림욕도 즐긴 뒤 사할린 시내로 향했다.

 

사할린의 랜드마크, 러시아 정교회와 역사박물관

사할린 시가지는 수년 전부터 이곳을 두 세 차례 찾았을 때에 길도 제대로 정비가 되지 않은 낙후된 도시처럼 보였는데, 이번에 새로이 찾고보니 도시 전체가 산뜻하게 변해 있었다. 사할린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황금색 지붕을 자랑하는 러시아 정교회Russian Orthodox Church 건물과 바로 옆에 위치한 러시아 역사박물관Russian History Museum 건물들이 깔끔한 모습으로 뽐내고 있다. 사할린에는 가장 훌륭한 메가팔레스 호텔Mega Palace Hotel이 있다.

 

시내 중심가에 있으면서도 호텔 바로 앞에는 엄청난 면적의 크기와 거목들이 가득한 멋진 공원이 있다. 메가 팔레스호텔은 객실 수가 많지 않은 작은 규모의 호텔이지만 호텔 내 한국인 주방장이 있는 일식과 한식의 퓨전 식당 등 괜찮은 시설들을 갖추고 있어서 우리가 이용하기에는 아주 안성맞춤인 호텔이다. 특히 호텔 인근에는 걸어서 5분 거리에 제법 규모가 크고 음식 맛도 좋고 저렴한 요금의 한식당도 있어서 더욱 편리하다. 사할린도 캄차카와 마친 가지로 11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는 킹크랩 철이고, 또한 킹크랩 가격도 서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하다.

 

사할린 동포를 기리는 위령탑

사할린 시내에서 30여 분을 가면 코르사코프 항이 있다. 항구라고 해야 작은 화물선이나 정박할 수 있는 그리 규모는 크지 않다. 이곳 코르사코프 항 가까이에 일본의 태평양 전쟁 패망 때 희생된 사할린 동포를 기리는 위령탑이 있다. 일제에 의해 강제 징용으로 끌려온 우리의 젊은이들이 지하 탄광과 살인적인 추위속의 삼림 벌목장에서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가 해방된 조국의 기쁨도 느끼지 못한 채 한 많은 세월을 보냈다. 당시 일본의 태평양 전쟁 패망 때 이곳에 거주하던 일본인 대부분은 일본 정부의 귀국선을 이용해 철수하면서 큰 피해가 없었으나, 해방 후에도 우리나라는 온전한 정부형태도 갖추지 못한 힘없는 정부였고, 또한 일본 패망 후 이곳을 점령한 러시아와는 국교 수립도 안 되어서 귀국선을 보낼 수가 없었다.

 

하염없이 기다려도 오지 않는 귀국선

힘없고 무능한 우리 정부의 귀국선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면서 패망한 일본 정부로 부터도 버림 받았고, 또 러시아 국민도 아니었기에 러시아 정부로부터도 아무런 보호 대책도 받지 못했다. 입에 풀칠도 못하면서 그저 연명하며 이곳 코르사코프 항 인근의 언덕에서 굶어 죽거나 강추위에 얼어 죽으면서 고국으로부터의 귀국선을 마냥 기다렸다고 한다. 그 후 반세기가 훨씬 넘도록 모질게 살아남은 우리 동포들이 이곳 사할린과 코르사코프 등지에서 가족을 꾸리며 살아 왔고, 이제는 동포 모두가 이곳에서도 여유 있는 생활들을 하고 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전쟁기념관과 사할린 역

코르사코프 항 인근 그리 멀지않은 위치에 전쟁기념관이 새롭게 준비 중이었는데, 규모가 큰 가건물에는 과거 세계 12차 세계대전 중에 사용되었던 각종 군용 물자들이 진열되어 있고, 밖에도 탱크와 함께 군용 차량과 각종 대포 등 여러 가지 중장비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쟁기념관을 떠나 다시 사할린 시내 중심가에 사할린 기차역이 있다. 사할린 역 인근에는 사할린 시내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넓은 레닌광장이 있고, 광장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레닌 동상 뒤로는 사할린 시청사 건물과 몇 개의 대형 관공서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또 이곳 문화센터에는 러시아 전통 민속공연도 관람할 수 있고, 또 임시 시장도 개설하여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 차가버섯과 시베리아 산 녹용과 러시아 목각인형 등 토산품을 쇼핑할 수 있다.

러시아의 문호 안톤체홉의 탄생지

이곳 사할린은 근대 단편소설의 선구자이며 19세기 말 러시아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러시아의 문호 거장인 안톤체홉을 탄생시킨 곳이기도 하다. 부유하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수준 높은 정규과정 교육을 받았고,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의학공부를 하면서도 꾸준히 글을 써서 작품을 잡지사에 기고했다. 그래서 1988년경에는 단편소설에 몰두하여 문학적인 성숙기를 맞았다. 19세기에서 20세기까지 러시아의 극작가이기도 하고 소설가인 안톤체홉의 대표적인 작품은 희곡 ‘갈매기’와 ‘바냐 아저씨’ 그리고 소설 ‘결투’와 ‘지루한 이야기’ 등이 있다. 사할린대학 캠퍼스 내에 마련된 안톤체홉 박물관과 또한 이곳의 러시아 역사박물관을 둘러본 뒤 크릴제도의 크릴스크 공항으로 떠나기 위해 사할린공항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