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ngdu

일상으로의 초대, 청두

20대 나의 청춘의 절반 이상을 보낸 곳.

막연한 도전의 불안정한 떨림을, 성공의 기쁨도, 실패의 눈물도, 수많은 열정의 추억이 살아있던 그곳, 중국을 떠나면서 '아마 오랜 시간 더 이상은 혼자 중국 여행을 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 아니, 다짐? 아니, 작은 결심마저 들었던 것 같다. 살아가기 위해 선택했던 곳은, 내가 그곳을 정녕 순수하게 좋아해서 머물렀던 것인지, 머무르기 위해 좋아하는 모습들을 만들어 갔던 것인지도 모른 채로, 오랜 시간 깊이 알아갔고, 더 이상의 매력을 서로 굳이 찾고 싶지 않아 하던 오래된 연인처럼 헤어졌었다.

에디팅 편집부 글과 사진 이상진

 

이상진｜제주도 서귀포시

모터사이클을 좋아해서 라이딩을 하며 작은 길들을 통한 국내 여행을 많이 다니기를 좋아했다. 그렇게 다니다 보니 5년쯤 전부터 제주도에 들어와 살게 된 여행작가를 꿈꾸는 자유로운 여행자이다.

이번 겨울 여행의 목적지는 사실 중국 옆 동네 티베트이었다. 그곳에 방문하기 위해 지나야 하는 청두에서는 2~3일만 지낼 예정이었는데. 어느샌가 다시 여권에 찰싹 붙어 있는 중국 비자를 보며 생각했다. '너는... 참 나랑 끈질기다 그렇지?, 그래 가서 술이나 한잔 하자 친구야' '이번 여행에 참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같이 온 오래된 필름 카메라를 만지 작 대던 사이, 차창 밖으로 보이던 수화물을 싣고 다니는 트레일러 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오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은 듯 어둠이 조금씩 해를 밀어내고 있을 무렵, 항공기 엔진에 시동이 걸렸고, 2020.1월 2일 새해가 되자마자, 나의 겨울로 날아갔다.

청두의 시작은 탄탄면으로

새벽에 봉고차를 함께 타고 온 중국 대학생 친구두명과 청두에 내렸다. 잠도 제대로 못 잔 채 좀비처럼 차에서 내렸다. 각자의 길로 헤어지기 전, 마지막 식사를 함께 하기로 했고, 피곤한 우리 셋은 어슬렁 저슬렁 먹을 것을 찾다가, 오래되어 보이는 탄탄면 집으로 들어가 탄탄면 세 그릇을 시켰다. 맛있게 다져진 양념고기와 야채가 올려져 있고, 밑에 마라 두반장 소스가 숨어있는 탄탄면을 잘 비벼서 한 입 먹는 순간 느낌이 왔다.' 아..중국 왔구나, 말로만 듣던 그 사천요리’ 미식의도시 청두의 시작을 알렸다.

천천히, 알아가기

충분히 늦잠을 잤다. 대충 씻고 나와 날씨가 쌀쌀하지만 차분해진 기분이 느껴진다. 왠지 발걸음이 가벼워서 적당히 모를 길을 걸어본다. 한 골목 통으로 들어가니 아주 작은 가게에 할아버님이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손 순두부를 큰 원형 철 냄비 통에서 둥둥 꺼내며 발길을 잡는다. 두화[豆花] 이름 한번 좋다. 직접 만든다는 마라 두반장 소스를 하얀 두부 위에 돌리니, 이름대로 맛있는 꽃이 피어난다. 슬렁슬렁 걸어서 ‘인민공원’으로 가본다. 마치 센트럴파크 마냥 도심 안에 자리한 꽤 큰 규모에 다양한 교통편이 다니는 이곳은 청두의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듯했다. 장기를 두는 할아버지들의 무리 속에 슬쩍 끼어 구경을 하다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듣기 좋은 음악소리를 따라 공원을 걷는다. 한 할아버님이 왈츠를 어찌나 잘 추시는 지, 소녀처럼 웃고 계신 할머님이, 같이 손을 꼬옥 맞잡은 채 발을 맞추는 모습이 참 건강해 보이셔서 기분이 좋다. 할아버님의 스텝만큼은 안돼 보여도 삐걱~삐걱, 조금씩 불안한 스윙을 추는 대나무로 만든 낡은 의자에 앉아 화차를 한잔 시켰다. 짤랑거리며 사기 찻잔에 받혀 나온 화차를 뚜껑으로 솔솔~떠 있는 꽃잎을 밀어내 호로록~ 하고 마셔본다. 좋다, 오랫동안 앉아서, 찻잎에 씁쓸한 맛이 돌 때까지 충분히 앉아 즐긴다. 오랜만에 돌아와 어색한 인사를 하던 나에게, 다시 봐서 반갑다며 그렇게 따뜻한 손을 하루 종일 잡아주었다.

추억의 음식

지하철을 타고 똥먼따치아오(东门大桥)역에 내려 C 출구를 나와 골목으로 들어가니, 거리의 다양한 음식을 파는 식당들이 줄지어 이어지며 두 세 블록 쯤을 채우고 있다. 이곳에 온 이유는 바로 내가 가장 좋아하던 메뉴를 두 가지나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다. 거위 덮밥, 홍콩에 있을 때 집 밑 가게에 통유리 너머로 쇠고리에 주르르 걸어놓은 거위를 꺼내 크고 두꺼운 중식 칼로 탕탕 쳐서 척척 썰어 내어주던, 나의 추억의 음식, 그리고 족발 덮밥, 광저우 의류 도매시장 근처에서 일을 본 후 다 팔리기 전에 뛰어가야 먹을 수 있는 넣자마자 녹아드는 진한, 나의 최애 메뉴, 두 가지를 같이 판다니 안 가볼 수 없다. 도착하니 큰 골목 안 사거리는 점심시간이 되자 끝없이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좌판에 깔아놓은 테이블에 삼삼오오 앉아 점심을 줄기는 사람들로 생기가 넘쳤다 아니 터졌다. 같은 메뉴를 파는 제일 사람이 많은 집으로 가서 거위 족발 덮밥을 시켰다. 역시나 훌륭하다. 오랜만이다. 사람들은 무얼 먹나 길거리 테이블을 유심히 보았는데, 정말 다양하고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로 길거리와 테이블을 채우고 있다. 중국 어디나 그렇지만, 청두 미식의 도시 맞는 듯하다.

Brother’s Just Different Mother

입구까지 와서 갈까 말까 고민했다. 표 값이 50위안이나 되는데 유적지가 아니라 구성을 해놓은 박물관이기 때문이었다. 나관중 삼국지는 완독 못했지만, 어린 시절 코에이 삼국지 게임을 하며 항상 촉을 선택하여 천하통일을 이루던 곳이 이곳 이였다는 사실과, 만화책으로 나에게 재미를 주었던 의리를 생각해서, 들어가 보기로 했다. 걱정과는 달리 역시 중국은 이런 쪽으로는 대단하다. 잘 꾸며 놨다. 낮술이라도 한잔 하고 왔으면 연꽃잎 떠 있는 정원 연못 돌다리 옆, 바람 부는 대나무 숲 우거진 옆에, 처마가 하늘로 솟은 나무 정자에 서 있던 전통의상을 입고 다니는 여인을 초선으로 착각해, 말이라도 한번 걸어볼 뻔, 큰 청룡언월도 같은 대나무 비를 들고 다니던 민머리 덩치 큰 청소부 아저씨를, 장수로 등용이라도 할 분위기였다. 물론 실제 역사 속의 증거들도 있었고, 중국 옛 화가들의 작품도 많이 있고, 삼국지를 떠나 다양한 볼거리를 만들어 두었다. 이곳에 있던 제갈량의 출사표는 2020년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고, 유비 관우 장비, 모두 뛰어난 명장이지만 혼자서는 천하를 통일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서로가 있었고, 어떤 사사로운 오해가 있었어도, 서로 말하지 않아도 깊은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과거의 그들에게 미래의 지금이 있었을 것이다. 친구들과 소주나 한잔 기울이고 싶던 날이었다. 나의 형제들, 그 관계에 대해 생각해본다.

뚜벅뚜벅, CITY LIFE

지하철을 타고, 춘시루 역에 내려 올라갔다. 비까번쩍하다. 제주도, 서귀포에서 살다 보니, 마치 미래 도시로 라도 퉁하고 떨궈진 듯하다. 나인봇, 전기스쿠터 등 어색한 것들이 꽤나 자연스럽게 굴러다닌다. 군데군데 널찍널찍 빌딩들을 보기 좋게 심어놓았는데, 그리 어질어질한 느낌은 없다. 오래된 건물과 새 건물들의 조화로움에 자연스러운 인상이 풍긴다. 뚜벅뚜벅 걷다 보니 건물을 타는 판다 모형 엉덩이가 보여, 판다 얼굴을 보기 위해 오랜만에 쇼핑센터에 들어가 본다. 쓰촨 성에 와서 판다에 관련된 디자인을 천 가지쯤은 본 듯, 어딜 가도 판다 사랑이 대단하다. 한참을 떠돌아다니다, 느낌 좋은 한 카페가 보여 들어가 본다. 감각적이다. 소소한 소품 하나, 글씨체 모두 좋다. 바리스타 들의 패션 또한 신선하다. 개성 있는 공간의 개성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브라질산 원두를 사용한 플랫화이트를 2,500원 정도에 마신다.

참, 좋다. 앉아 있는데 멋있게 차려 입은 아펑이 다가와 자연스럽게 잠시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그에게 사진을 한방 찍어 달라 부탁했고, 다시 그 모습을 마주 보고 찍어 추억에 담아본다. 검색을 해보는데 한 레게 바가 있다. 나이스! 처음으로 택시를 타고 당장 �i아간다. 레게 바에는 연주공간과 야외 화로, 레게음악, 거칠고 자연스러운 레게풍 인테리어가 나를 잡아끈다. 노래에 ��춰 누군가 드럼을 두드리니, 누군가 기타를 치고, 전자 키보드를 신나게 연주한다. 잼으로만 이루어지는 공연이 몇 시간 내내 계속된다. 맥주 두어 병마시며, 좋은 연주로 귀를 호강시켰다. 자정을 넘겨서야 집으로 돌아와 고양이들과 인사를 하고 오늘을 생각해 본다. 도시는 역시나 피곤하지만 괜찮다. 청두의 도시 라이프는 꽤나 인상적이다. 다 챙겨져 있는 듯하면서 크게 과하지 많은 않은 느낌이 있다.

가벼운 마지막 발걸음, 긴 여운

마지막 날, 십 분 거리에 공원 안에 있는 찻집에 들어가 화차를 한잔 시켰다. 오늘 찻잔이 참 이쁘다. 차를 따라주시는 할아버지께 말을 걸어본다. “이곳은 얼마나 오래되었나요?” 회상하시는 듯이 깊은 눈으로 미소를 띄시며 “한 삼십 년은 넘었지?” 대답해 주신다. 건너 테이블의 할아버지들의 웃음소리가 풍겨와 귀를 보내본다. 뉴발란스를 신으신 한 할아버지가, �C있는 성조로 못 알아들을 사자성어를 털어내며 만담을 하고 계시는데, 신발의 진품 여부는 모르겠으나 입담 한번 일품이시다. 주변 할아버지들이 좋아하신다. 사람들이 먹다 버린 해바라기씨를 참새들이 날아와 쫀다. 참새들은 이 테이블 저 테이블 모두 순찰 후 대나무 숲으로 날아간다. 한 겨울에도 따뜻했던, 짧은 청두 여행은 아마도 꽤 긴 여운을 남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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