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JU ISLAND
다시 제주의 여름, 숲으로 

 

제주도의 여름은 변함이 없다. 제주도의 여름은 ‘초록빛으로 넘실댔다. 앳된 신부의 부케 같은 풍성한 수국, 천년의 고목들이 버티어 선 비자림, 비밀의 숲 같은 곶자왈, 에메랄드빛 바다까지 여름의 생명이 왕성한 초록의 물결 속으로, 에코 여행을 떠나보자.

에디팅 편집부 글과 사진 정기영 트래블 인플루언서 

꽃동산 ‘카멜리아힐’

코로나19라는 돌림병이 창궐하기 전, 지난여름에 다녀온 제주도는 온통 생명의 왕성함으로 넘실거렸다. 언덕배기 카멜리아힐은 톡 터질 것 같이 팽팽하게 피어난 수국이 만발했다. 수국은 매년 7월에 절정을 이루는데, 카멜리아힐 입구를 지나면 예쁜 풍경이 펼쳐진다. 매표소에서부터 입구에 들어가면 수국은 좀 더 들어가야 볼 수 있다. 그 대신에 잘 가꿔진 초록빛 숲을 따라서 산책로 곳곳을 거닐다 보면 구멍이 송송 난 붉은 화산송이가 눈에 띈다. 오직 제주에만 존재하는 화산성토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인체 혈액과 유사한 광물질이며 공기를 정화하는 공기 비타민B를 배출한다. 

내리쬐는 햇살을 피할 겸 들어간 온실에도 갖가지 꽃들이 피어 있다. 한여름 찬란한 햇살 때문에, 이따금 눈을 찌푸리게 되긴 했지만, 그럴 때마다 나무 그늘이 드리운 오솔길을 따라 걸으며 더위를 피하기도 했다. 수국이 화사하게 핀 카멜리아힐의 모습은 소녀시절 상상 속 비밀의 화원이 따로 없다. 카멜리아(Camellia)는 '동백나무'라는 뜻이다. 왜? 매년 3월이면 카멜리아힐을 정열의 붉은빛으로 가득 채우는 동백꽃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국만으로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동백꽃은 또 얼마나 수려할까. 카멜리아힐은 6만여 평 규모로, 동양에서 가장 큰 동백 수목원이다. 가을부터 봄까지 시기를 달리해서 피는 80개국의 동백나무 500여 품종 6,000여 그루를 보유하고 있다. 제주자생식물 250여종, 동백꽃, 수국으로 사시사철 꽃향기가 가득하다. 겨울에 카멜리아힐에 다시 오고픈 이유는, 동백꽃이 지면서 만들어진 붉은 꽃길과 순백색 눈길을 느껴보고 싶기 때문이다.

1,000년 ‘비자림’

힐링 명소로 각광을 받는 비자림은 ‘천년의 숲’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일생 100년 살까 말까 한 인간이 수백 년의 세월을 살아 온 고목들의 사이를 거닐며 신령스럽고 영험한 기운마저 감돈다. 산책로에는 '송이'가 깔려 있다. 송이는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화산 쇄설물로 알칼리성의 천연 세라믹이라고 한다. 비자열매와 나무는 예로부터 민간과 한방에서 귀중한 약재와 목재로 활용되어 오고 있다. 비자는 "눈을 밝게 하고 양기를 돋군다"라고 하였고 강장 장수를 위한 비약이라 하였다. 콜레스테롤을 제거하는 작용이 있어 비자를 상시 먹으면 고혈압 예방 치료에 도움을 주며, 요통이나 빈뇨를 치유한다. 

기침, 백탁을 다스리고 폐기능 강화, 소화촉진, 치질, 탈모, 기생충 예방에도 좋다. 목재로써 고급 가구재, 장식재 등으로 쓰이는 귀중재이며 특히 비자나무로 만든 바둑판은 시중에서 보기가 어렵고 고가로 거래된다. 비자림 코스는 크게 A코스와 B코스로 나뉜다. A코스(짧은 길)는 왕복 40~50분이 걸리며, B코스(긴 길, 오솔길)은 왕복 1시간~1시간 20분이 소요된다. 비자림에서도 ‘새천년 비자나무’는 이곳의 터주대감이다. ‘새천년 비자나무는 ’500~800년 된 3,000여 그루의 비자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고려 명종 20년(1189)에 태어나 나이가 800살이 넘는다. 키가 14m, 둘레는 네 아름(약 6m)에 달한다. 장구한 세월 동안 온갖 풍상을 이겨 낸 비자나무로 비자나무숲에서 최고령이며, 도내의 모든 나무 중에서도 최고령 나무이다. 

또한, ‘벼락 맞은 비자나무’도 있다. 이 나무는 약 백여 년 전인 20세기 초에 벼락을 맞은 나무이다. 나무는 앞쪽은 전부 타버렸지만 용케 뒤쪽으로 불이 번지지 않아 생명을 이어갈 수 있었다. 벼락을 맞고 불까지 났는데 살아남은 비자나무를 사람들은 신성하게 생각하며 귀하게 여겨 왔다고 전해진다. ‘사랑나무’라는 이름의 연리목도 있는데, 걸음을 멈추는 비자나무의 사연들이 오늘날 가십 기사 보다 재밌게 여겨진다. 비자나무의 우물터는 물이 귀한 제주도에서 비자나무들의 뿌리가 물을 머금고 있다가 조금씩 흘려보낸 탓에 항상 맑은 물이 고여 있던 곳이라고 한다. 땅 밑에는 비자나무 잔뿌리가 정수기 필터처럼 물을 걸러주었다. 신비의 비자나무 정기를 물속에 그대로 녹여 낸 약수인 것이다. 비자나무 우물물을 한 사발 들이켜고 다시 발길을 재촉한다.

LED 연꽃의 ‘선운정사’

제주도 애월읍에 있는 선운정사는 제주도의 야경 명소이다. 저녁이 되면, 18,000여 개의 연꽃들이 은은한 빛을 내기 시작한다. 선운정사 빛마루 축제는 하절기인 4월부터 10월까지는 일몰 후부터 저녁 10시까지, 동절기인 11월부터 3월까지는 일몰 후부터 9시까지 감상할 수 있다. 고즈넉한 사찰의 분위기와 은은한 LED 꽃들의 향연이 마음의 번뇌를 잠시나마 씻겨주는 듯하다. 꽃이 바람결에 흔들리듯이, LED 꽃들도 제주도의 바람에 몸을 맡긴다. 오후 내내 생생한 수국이 흐드러지게 핀 정원에서 시간을 보낸 후 밤에는 절대로 시들지 않는 LED 연꽃이 만발한 사찰에 당도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선운정사의 석조약사여래좌상은 2018년 7월 제주특별자치도의 문화재자료 제10호로 지정되었다. 선운정사 안에는 소원돌도 있다. ‘설문대할망 소원돌’인데, 소원을 빌고 소원돌을 들어서 번쩍 들리면 허탕이고, 무거워 들 수 없거나 당겨지는 힘이 강하면 그 소원이 이뤄질 징조라고 한다. 설문대할망은 세상에서 가장 키가 크고 힘이 셌다. 어느 날 누워서 자던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 앉아 방귀를 뀌었더니 천지가 창조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설문대할망 설화에 따르면 탐라(제주)가 이렇게 탄생되었다.  

오래 된 서책에서 효경을 읽다가/ 책을 덮고 연잎을 본다/ 제절근도 만이불일/ 연잎은 빗방울이 고이면/ 한동안 물방울 유동으로 일렁이다가/ 어느 쯤엔 미련 없이 쏟아 버린다/ 자신이 감당할 무게만 싣고/ 그 이상은 비워버린 까닭이다/ 연잎에 지혜를 어찌 배울까/ 일만 권의 책을 가슴에 담아도/ 행함은 연잎 한 장만도 못 하다

연잎 한 장 中/정인창

에코랜드와 곶자왈

곶자왈 증기기관차 여행을 떠날 준비가 되었는가? 30만 평에 달하는 곶자왈 원시림을 기차로 체험하는 테마파크이다. 1800년대 증기기관차인 볼드윈 기종을 모델화해 영국에서 수제품으로 제작했다. 4.5km의 기차여행을 하며 다양한 동식물과 곤충이 서식하는 신비의 숲 곶자왈을 한눈에 둘러볼 수 있다. 입구에 비치된 에코랜드 맵을 들고 내리고 싶은 역에 내려서 둘러보면 그만이다. 레이크사이드역에서 정차해서 내렸더니, 네덜란드에 온 것처럼 풍차가 있는 이국적인 곳이다. 강한 향기를 뿜어내는 라벤더가 곱게 핀 보랏빛 정원도 펼쳐져 있다. 증기기관차 '포레스트 트레인‘을 타고 여름철 더위를 식혀주는 바람을 충분히 만끽했다. 

곶자왈은 ‘곶’과 ‘자왈’의 합성어로 된 고유 제주어로서, 곶은 숲을 뜻하며, 자왈은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서 수풀 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으로 ‘덤불’을 의미한다. 곶자왈 생태에 대한 학술적 가치 및 보전의 필요성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가 커지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청정지역인 곶자왈에서는 운이 좋다면 반딧불이 체험도 가능하다. 반딧불이는 빛이나 소리에 극도로 민감한 생명체이기 때문에 어두운 밤을 불빛 하나 없이 걸어서 곶자왈 숲을 걸어보면 정작 자신의 시각이 작은 빛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숲이 내는 고요한 작은 소리도 더 잘 들리는 걸 느낄 수 있다. 

제주의 여름 그리고 바다

처음 제주도에 여행을 갈 때는 대개 ‘바다’ 때문이다. 에메랄드빛의 청정 바다는 세계 어느 휴양지의 아름다움에 못지않다. 그래서 해외여행을 다니다 보면 바다의 빼어난 경치를 보게 되지만, 제주도 바다의 아름다움을 실감하길 되풀이하기도 한다. 그 바다가 가장 돋보이는 계절은 다름 아닌 여름 아닌가. 여전히 아름다운 제주도의 바다가 늘 거기 있었다. 제주도 지도를 펼치고, 북으로 남으로 아직 가보지 못한 해수욕장을 따라서 여행을 하기도 한다. 잘 몰랐던 금능으뜸원해변도 발견하고 말이다. 금능으뜸원해변은 협재해변에서 차로 고작 3~5분 거리인데 협재해변만큼 아름다우면서 한적해서 좋은 곳이다. 

해질녘 적당히 따사로운 햇살에 솔솔 잠이 오듯 나른해진다. 뽀얀 살갗이 탈까 봐 긴팔옷, 모자 등 중무장을 하고 모래성을 쌓는 어린 아이들은 더위를 모른다. 그 모습을 찬찬히 보며 어른들이란 언제쯤부터 모래성 쌓는 놀이를 관둔 걸까, 곱씹어보기도 한다. 5시쯤 되자, 바다는 산란하는 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사진을 찍기에는 조금 빛이 모자랐다. 아, 하얀 풍력발전기들이 느리기 돌아가는 월정리 바다는 어떤가. 무풍지대처럼 맑고 적요한 바다. 물때가 맞는다면 행원리 바다가 만들어내는 천연 수영장을 가봐야 한다. 

물살이 세고 바위가 울퉁불퉁하기 때문에, 자칫 다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바닷속에서 무엇이 움직이기에 해녀인가 했는데 자세히 보니, 바다 위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모양이 영락없는 돌고래이다. 제주도 연안에 서식하는 남방큰고래가 가족인지 서너 마리 무리를 이루고 수평선 위로 노닐고 있었다. 고래 한 마리가 신이 났는지 수면을 박차고 일자로 뛰어 오르는 모습도 보여준다. 수온이 높아져서 증가했다는 갈색 '괭생이 모자반'이 둥둥 떠 있는 모습이 못내 씁쓸했지만, 바다에서 근심걱정 없는 듯 수면을 박차는 한여름의 돌고래들은 보석처럼 반짝이는 잔물결을 남기고 멀리 헤엄쳐 간다.

 

제주도 뭘 먹을까?

덕승식당

모슬포항에 있는 덕승식당은 함바식당과 비슷한 분위기로 소박한 반찬으로 구성된다. 갈치조림 맛집으로, 맛을 보면 맵지도 짜지도 않은데 밥 한두 끼는 거뜬하니 맛집으로 인정하자. 갈치 속살이 많진 않아서 성인 둘이 먹기에 살짝 아쉬운 정도다. 

올레칠돈

맛집인 거에 앞서서 사장님의 친절이 기억에 남던 곳이다. 역대급 두툼한 흑돼지가 불판 위에 놓일 때 눈이 휘둥그레진다. 고기는 또 얼마나 정성스럽게 구워주는지, 고기 속에 육즙이 빠지지 않게 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장인정신이 느껴진다. 멜젓은 서귀포의 큰 멸치를 염장해서 만든 젓갈인데, 육즙이 가득한 흑돼지를 멜젓에 콕콕 찍어먹어 보자.

칠돈가

웨이팅 30분! 파무침, 상추, 무초절임까지 기본적인 반찬이 먼저 서빙되고 메뉴판도 간소하다. 제주산 흑도야지 근고기 2인분을 시켜서 구워 먹는다. 육즙이 자르르~ 흑돼지는 언제 먹어도 맛있다.

놀맨

제주도 해물라면 맛집 '놀맨'에서 기다리다가 겨우 만난 해물 라면. 웨이팅 끝에 받은 라면 속의 큼직한 해물은 누가 뺐기라도 할새라, 정신없이 먹게 된다. 정신을 가다듬고 나면 가격이나 기다림에 비해 해물 양이 약소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봄날카페 

놀맨에서 걸어서 멀지 않은 봄날 카페로 이동할 수 있다. 애월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배경의 봄날 카페는 입지도 으뜸이다. 카페 안에서도 창가자리에선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볼 수 있다. 카페 마당에는 분명 식곤증이 있어 보이는 웰시코기들이 배를 드러내고 누워 있다. 벽화마을처럼 해녀 그림과 좋은 글귀가 벽면을 알록달록하게 채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