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창조하는 도시국가, 싱가포르

The city-state that creates nature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란 사람도 자연을 그리워하며 산다. 노쇠한 뒤엔 누구나 자연으로 돌아간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당연한 이치다. 사람은 고층 빌딩을 세운 자리에 가로수 거리를 만들고, 호수와 숲이 있는 공원을 조성한다. 이 역시 도시에 살지만, 우리가 자연에 기대며 존재하는 이유다. 마천루 가득한 도시국가지만 어느 나라보다 자연주의를 지향하는 나라가 싱가포르다. 비좁은 국토와 가진 자원이 아무것도 없지만 아름다운 자연을 창조한 이상한 나라. 그런 저력이 싱가포르를 미국과 일본, 영국 등을 제치고 1인당 GDP 세계 6위의 일류 국가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에디팅 편집부 글과 사진 이두용 트래블 인플루언서

 

Small but not Small Potential
작지만 전혀 작지 않은 저력

 

살면서 처음 알게 된 ‘싱가포르’는 ‘잘 사는 아시아 국가’ 또는 ‘벌금이 엄청나게 센 나라’였다. 잘 사는 건 그렇다고 해도 언뜻 생각하기엔 큰 잘못도 아닌데, 위반 시에 상상 이상의 벌금을 부과한다는 건 이해하기 어려웠다. 알고 보니 싱가포르의 입지적 특성과 국가 운영 전반을 고려한 사법제도를 가진 이유에서였다. 싱가포르에는 엉덩이에 매를 맞는 태형도 존재한다.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어서 중죄를 저지르면 죽음에 처해지기도 한다. 한편으론 신기하지만 이런 강한 법이 존재할 수 있는 건 정부를 신뢰하는 국민이 있기 때문이다. 

 

싱가푸라?
오늘의 싱가포르를 이해하기 위해선 이 나라에 대해서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싱가포르의 국명은 ‘싱가푸라(सिंहपुर, Singapura)’다. ‘사자의 도시’라는 의미인데, Simha는 Lion(사자)란 뜻이고 Pura는 City(도시)라는 뜻이다. 이 나라 전설에 의하면 인도네시아 스리위자야 왕국의 ‘상 닐라 우타마(Sang Nila Utama)’ 왕자가 이곳으로 표류해 바닷가에 있는 사자를 보고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덕분에 싱가포르의 마스코트는 현재 머라이언이다. 바다사자를 생각하기 쉬운데 상반신은 사자, 하반신은 물고기를 한 가상의 동물이다. 이름도 사자의 라이언(Lion)과 인어의 머메이드(Mermaid)에서 따왔다. 처음부터 이 캐릭터가 있던 건 아니다. 1964년 전설을 형상화해서 싱가포르 최고 특산품 위원회에서 로고로 만들어 사용하다가 싱가포르의 상징이 됐다.

 

싱가포르의 국토 면적은 600㎢로 서울의 크기와 비슷하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순위에 늘 손꼽힌다. 국토가 작으니 바다를 개간해 매년 간척지를 넓혀간다. 간척지를 포함한 국토 면적은 721.5㎢로 우리나라의 부산광역시(769.89㎢)보다 약간 작다. 간척으로 국토를 넓힌 나라 순위로는 세계 1위다. 인구는 오히려 서울의 절반인 약 576만 명이다. 그저 작은 도시국가로 치부하기에 싱가포르의 경제는 세계 일류 수준이다. 2019년도 국가별 1인당 GDP 순위도 미국과 일본, 영국, 캐나다, 프랑스 등을 제치고 6만4,582달러로 세계 6위에 올랐다. 한국은 3만3,346달러로 26위다. 

아시아권조차 영미권 국가로 생각하는 싱가포르

작지만 대단한 나라라고 속단하기에 싱가포르는 앞에서 얘기한 대로 가진 자원이 너무 없다. 아무도 살지 않던 모래섬으로 수 세기를 이어왔다. 입지적 조건 때문에 항구로 쓰이기도 하고 사람이 정착하기도 했지만, 무인도로 존재했던 기간이 가장 길다. 본격적으로 개발된 건 1819년이다. 동인도 회사의 토머스 스탬퍼드 래플스 경이 이 빈 땅에 조호 왕자 한 명을 왕으로 추대하면서 영국의 영향 아래에 집어넣었다. 래플스는 이후 4년 동안 싱가포르를 빈 섬에서 항구도시로 개발했고, 이를 계기로 오늘날 동남아시아의 대표적 무역항으로서 싱가포르의 역사가 시작됐다. 덕분에 래플스는 리콴유(李光耀) 초대 수상과 함께 싱가포르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존경 받는다.

 

이후 자유무역을 선언하면서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 최대의 무역항으로 성장했다. 덕분에 동인도 회사의 식민지에서 대영제국의 공식적인 식민지로 지위 상승하면서 영국의 엘리트 관료들과 트라팔가르 해전 이후 적수가 없던 대영제국 해군의 비호 또한 얻게 된다. 그리고 영국군의 동남아시아 최고 거점으로 자리 잡으며 싱가포르의 경제는 수직 성장한다. 화교가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만큼 중국 문화의 영향력이 강해서 싱가포르를 중화권 국가로 꼽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싱가포르를 중국의 영향권에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구 중엔 중국계 외에 말레이계나 인도계도 상당수라 중화권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진짜 법정 국어는 오히려 원주민인 말레이인들의 말레이어이다. 

 

놀라운 건 싱가포르 사람들 역시 자신들을 중화권이나 말레이시아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아시아인 또는 싱가포리언이라고 생각한다. 신기하게도 싱가포르와 유사해 보이는 중화권 국가인 홍콩, 마카오, 대만조차 싱가포르를 영미권 국가로 취급한다고 한다. 

 

The Government's ill to Protect Nature

싱가포르가 깨끗한 이유

싱가포르가 독립한 건 생각보다 최근이다. 영국의 통치 이후 일본의 식민지를 거치기도 했던 싱가포르는 1965년 독립했다. 불과 50여 년 전이다. 독립과 함께 지도자인 리콴유를 중심으로 경제발전을 국가의 최우선 목표로 정하고 다양한 정책을 펼쳤다.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개입은 싱가포르를 눈부신 경제 성장으로 이끌었고 단기간 아시아의 부자 나라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다. 

85만 원짜리 껌?

싱가포르에 머물면 나라가 아니라 도시에 와 있는 느낌을 받는다. 당연히 도시국가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단기간 급속한 성장으로 인해 주요 시설이 밀집해 있어서 더욱더 그렇다. 좁은 국토에서 이룬 경제발전은 자연스레 여러 문제로 쏟아져 나왔고, 정부는 이에 맞는 극단적인 대안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껌’을 없애는 것이었다. 

 

청결한 거리를 위해 껌은 정부의 최대 골칫거리였다. 그래서 1992년 껌을 수입하거나 판매하는 것을 법률로 금지한다. 실제로 껌을 판매하는 사람은 최고 2년의 징역이나 1,000S.G.D(싱가포르 달러)의 벌금형에 처한다고 한다. 한국 돈으로 약 85만 원이다. (2004년부터 미국과 맺어진 FTA 협정 때문에 의료용 목적으로는 껌을 판매할 수 있다.) 처음 들었을 때 조금 우습게 들렸는데 알고 보니 정부의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싱가포르의 자연보호 정책을 하나 더 들자면 2017년 발표한 ‘운행증명서(Certificates of Entitlement, COE)’가 껌보다 단호하다. 싱가포르 정부는 도시의 환경문제와 매연, 교통체증, 소음 등을 없애기 위해 운행 중인 오토바이와 승용차 대수를 3년간 더 늘리지 않기로 했다. 말 그대로 지금 숫자로만 운영되는 것이다. 누군가 신차를 사고 싶다면 다른 사람의 COE 증명서를 사서 차를 구입할 수 있다. 물론 증명서를 판 사람은 자신의 차도 같이 팔거나 폐차해야 한다. 놀라운 건 경매에서 판매된 소형차의 COE가 4만1,617싱가포르달러(약 3,450만 원)였다고 한다. 차도 아니고 증명서 한 장이 그 가격이라니 말 그대로 ‘헐’이다. 사실 싱가포르는 차량 가격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수준이다. 중형차 기준 미국의 4배에 달한다고 한다. 

무서운(?) 벌금의 도시

벌금만 따지자면 워낙 분야별로 세밀하게 나뉘어 있어서 조금 무서울 정도다. 몇 개만 예를 들어봐도 놀랄 게 뻔하다. 우선 공공기관이나 버스, 박물관, 도서관, 엘리베이터, 슈퍼마켓 등에서 흡연을 했을 때의 벌금이다. 지정 흡연 구역 외 적발 벌금은 5,000S.G.D다. 한화로 430만 원 정도다. 금연까지도 고민하게 할 만큼의 벌금이다. 대중교통 탑승 시 생수를 포함한 음식물을 섭취하면 1,000SGD, 약 85만 원의 벌금을 물 수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대중교통 이용 시 섭식을 금지하고 있지만, 싱가포르는 터무니없는 수준이다. 이 밖에도 공중화장실 사용 후 물을 안 내려도 불법이다. 요즘은 대부분 센서로 바뀌었다고 한다. 

구급차나 소방차, 경찰차 등이 사이렌을 울리고 달릴 때 길을 터주지 않으면 흉악 범죄로 간주해 벌금과 함께 태형에 처해진다. 음주운전도 같은 처벌을 받는다. 음주운전으로 인명 사고를 내면 살인미수 또는 1급 살인으로 즉시 구속된다고 한다. 덕분에 싱가포르는 거리가 깨끗하고 치안도 세계적이다. 교통 역시 차량이 많아도 의외로 러시아워가 적고 어디를 다니든 서울보다 쾌적한 느낌이었다.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도시를 돌아보는데 공기가 맑으니 창밖 건물과 가로수가 푸르러 보였다. 건물 양옆으로 나무가 신기하리만큼 울창하다. 열대우림기후인데 시원시원하게 느껴졌다.

 

<더 자세한 내용-2020년 7월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