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ONA

로미오와 줄리엣을 만나다

 

아르코에서 뜻밖의 동화 속 체험을 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동화에서 시작했으니 이번엔 셰익스피어의 명작인 로미오와 줄리엣(Roméo et Juliette)이다. 아르코에서 자동차에 올라 남쪽으로 1시간 30분쯤 달려가면 베로나(Verona)에 도착한다. 이곳이 바로 로미오와 줄리엣의 아름다운 사랑이 이뤄진 곳이다. 
에디팅 편집부 글과 사진 이두용 트래블 인플루언서

베로나에 도착하면 광장의 원형 경기장을 마주하고 로마에 온 거로 착각한다

예술적으로 승화한 요새 도시
베로나는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주에서 세 번째 큰 도시로 가르다 호수 동쪽에 위치한다. (가르다 호수 권역을 벗어나지 못한 걸 보면 호수가 정말 크긴 크다) 베로나는 과거 독립된 지역이었으나 BC 89년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고 40년 뒤 로마 시민으로 편입됐다. 이탈리아와 북유럽 국가 사이에서 중요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오랜 시간 수도의 통치를 받으며 성장했다. 

아레나는 원형 경기장으로 콜로세움, 카푸아에 이어 이탈리아에서 세 번째로 크다

 

2000년에는 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도시 구조와 건축 면에서 이전 시대 최고의 예술적 요소들을 잘 갖추고 있고, 유럽 역사에서 여러 중요한 시기를 거치면서 발달한 요새 도시의 개념을 독특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아르코보다 큰 도시라는 생각만 하고 베로나에 들어섰는데, “헐!” 광장 중앙에 콜로세움이 있다. 

로마인가 하고 착각할 정도로 비슷하다. 알고 보니 이 건물은 콜로세움이 아니라 아레나(Arena)였다. 로마 시대 건축물로는 콜로세움, 카푸아 경기장에 이어 이탈리아에서 세 번째로 큰 원형 경기장이라고 한다. 혼돈할 만하다. 심지어 로마의 콜로세움보다 원형이 잘 보존돼 있어서 아레나를 바탕으로 콜로세움의 최초 모습이 어땠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줄리엣의 집에 들어서면 마당 정면에 줄리엣 동상이 서서 관광객을 맞는다

 

아레나를 지나 건물이 밀집한 골목을 따라 5분 정도 걸으면 드디어 로미오와 줄리엣의 발자취를 따르게 되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이 나타난다. 지도가 없어도 인파를 쫓다 보면 자연스레 찾게 되는 곳, 줄리엣의 집(Casa di Giulietta)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줄리엣이 살던 집이라고 알려진 이곳은 단지 그 가설만으로 전 세계 연인들을 이곳으로 날아오게 만든다. 

베로나의 유적은 대부분 줄리엣 집 인근에 있어 도보로 관광할 수 있다

세계 연인들이 찾는 이유?

실제 셰익스피어가 베로나를 방문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다만 그의 희곡이 베로나의 적대적인 두 가문 몬태규(Montague)와 캐풀렛(Capulet)을 기록하고 있어서 유명해졌다. 신기한 건 현재 줄리엣의 집이라고 알려진 저택이 실제로 ‘델 카펠로’라는 가문의 소유였던 적이 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셰익스피어가 붙인 캐풀렛이라는 가문의 이름이 여기서 왔다는 가설도 있다. 아치 꼭대기에 박힌 돌에는 아직도 델 카펠로 가문의 문장을 볼 수 있다. 

덕분에 희곡의 등장인물들 역시 실제 인물에 근거한 것인지에 대해 오늘날까지 열띤 논쟁의 대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로미오나 줄리엣이 정말 존재했든 아니든, 그들의 이야기는 역사 속에서 지금까지 쓰인 가장 훌륭한 러브스토리 중 하나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 사실 만으로도 이곳이 극 중 무대로의 자격은 충분하다. 지난해 TV 프로그램 <비긴어게인 3>에서 베로나를 다룬 것도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베로나의 골목은 여느 이탈리아 번화가보다 깔끔하고 정갈해서 좋다

시공간의 교차점, 베로나

인파를 헤치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넓지 않은 마당과 벽면 한편의 발코니, 정면의 줄리엣 동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발코니는, 로미오가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 줄리엣이 그를 내려다보며 서 있던 발코니다. 그저 러브스토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잔잔한 미소가 흘러나온다. 이 짧은 순간을 위해서 먼 곳까지 찾아온 보람이 있다. 

정면 마당 안쪽에 세워진 로미오 동상은 과거 이탈리아 여인을 형상화한 것 같다. 순결함과 고혹스러움을 표현한 듯하다. 줄리엣의 머리 각도와 손짓 등은 마치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을 떠올리게 한다. 줄리엣 동상의 오른쪽 가슴을 만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덕분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슴에 손을 얹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전 세계에서 찾아왔으니 간절함이 어느 정도 좌우할 것 같다. 

쇼핑 거리를 지나면 베로나의 먹자촌 격인 레스토랑 광장이 나온다

 

로미오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피아차 에르베(Piazza Erve) 광장이 있다. 한 편에는 신곡(神曲)으로 잘 알려진 단테의 석상이 세워져 있다. 그 뒤로는 건물 꼭대기에 로마시대 인물들의 석상이 여럿 올라서 있다. 베로나를 거닐면서 과거와 현재, 소설과 실제가 공존한다는 생각에 감정의 교차가 반복됐다.

<더 자세한 내용-2020년 8월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