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N T H E C O V E R

아직 많이 다루지 않은 북부 이탈리아의 아르코, 베로나 그리고 밀라노까지 다녀오면서 북부 이탈리아로의 여행은 그저 아름다운 경치를 보러 가는 여행이 아니라 꿈같은 여행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이는 세 지역이 갖고 있는 독특한 역사와 풍경이 동화처럼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꿈같은 여행이 언제까지 꿈으로만 남아 있어야 할까? 코로나19가 어서 빨리 종식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글 이두용 트래블 인플루언서

ARCO · VERONA · MILANO
북부 이탈리아로의 꿈같은 여행

 

이탈리아 북부의 산악도시 아르코(Arco)에 들어섰을 때, 마법이 존재하는 동화 속으로 들어간 기분이 들었다. 마을의 모든 것이 동화에 나오는 풍경을 닮아 있는 아르코였다. 세익스피어의 명작인 <로미오와 줄리엣>이 살아 숨 쉬는 예술로 승화된 요새 도시 베로나, 두오모 성당 및 예술과 진배없는 명품 패션의 본고장 등 역사와 패션이 가슴 떨리게 하는 밀라노 등 북부 이탈리아로의 긴 시간 여행을 떠나보자.
ARCO
작고 생소하지만, 세계적인 명소 아르코

아르코는 이탈리아 북부 트렌토(Trento) 주의 1만7,500여 명이 사는 작은 마을이다. 해발고도 91m이며,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호수로 수평선이 보이는 ‘라고 디 가르다(Lago di Garda)’에서 10㎞ 거리에 인접한 산골 마을이기도 하다. 관광지로는 생소해 보이는 이곳이 과거에는 유럽에서 손꼽히는 휴양지였다. 특히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유럽에서 가장 막강했던 합스부르크(Habsburg) 가문이 이곳을 특별 지역으로 정해 관리했다고 한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아르코의 뛰어난 풍광과 청정 산악도시의 매력에 반해 그들의 재활 치료와 휴양을 위한 거점을 이곳으로 정했다. 
에디팅 편집부 글과 사진 이두용 트래블 인플루언서

아르코 산 정상에서 바라본 이탈리아 북부 산악지대 풍경이 장쾌하다 

생소한 도시, 아르코에서도 만나는 대한민국
고전 동화의 무대에는 마법이 존재했다. 못된 계모가 마녀이기도 하고, 마법에 걸린 왕자가 야수나 개구리로 돌변하기도 했다. 그들은 진정한 사랑을 받을 때까지 인간이 되지 못했다. 그런 동화에 등장하는 성(城)은 대부분 산꼭대기에 있었다. 마을 한 편에 우뚝 선 봉우리에 세워있어서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다스리기도 하고, 때로 저주하기도 했다. 아르코의 첫 인상은 바로 동화 속으로 시간이동을 하는 바로 그 기분이다.

산 중턱에 다다르면 동화에서 봤음직 한 아르코 성이 눈앞에 나타난다

대공 알버트(Archduke Albert) 7세는 가문을 위한 아름다운 정원과 마을 사람들을 위한 공원, 자유를 상징하는 별장과 화려한 궁전을 지어 이 작은 도시에 왕가의 품격을 새겨 넣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합스부르크 가문 외에도 유럽 전역에서 이곳을 찾아 관광과 휴양을 즐기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국내에는 자료가 없는 데다 관광지도 아니다 보니 아르코를 향하면서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트렌토 주에 들어섰을 때도 고요하면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생소한 풍경에 그저 이탈리아의 시골에 온 느낌이 들었다. 

아르코 산에서 내려다본 마을 풍경, 높은 건물이 하나 없어 고즈넉하다

 

아르코에 가까워질수록 오스트리아와 산맥으로 어깨를 맞댄 산악도시다 보니 사방에 암벽과 숲이 유난히 많다는 생각만 들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이곳이 클라이밍의 세계적인 명소였다. 현재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스포츠클라이밍의 성지이자 탄생지라고 한다. 암벽 여제로 통하는 김자인 선수도 이곳에서 자연암벽 루트에 올라서 세계 두 번째로 완등 기록을 보유했다. 현재도 국내의 많은 선수가 이곳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한다고 한다. 이렇게 고요하고 인적도 드문 곳에서 대한민국의 함성이 울려 퍼진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다.

아르코 성에서 멀리 맞은편 봉우리 뒤로 내륙의 바다로 불리는 가르다 호수가 보인다

스포츠클라이밍의 원조

코로나19로 인해 1년 연기됐지만 2020년 도쿄올림픽을 시작으로 클라이밍이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볼더링과 리드, 스피드 3종목으로 나뉘어서 열리는데 국내 선수들이 세계적으로 높은 실력을 인정받고 있어서 메달을 기대 해봐도 좋을 것 같다. 클라이밍의 인기가 높아지고 올림픽 종목으로 손색없기 때문에 오랜 검증 끝에 채택이 되었지만, 정식 대회 역사는 의외로 짧다. 고작 40년 전 1980년대 초 이곳 아르코에서 세계 최초의 암벽등반 경기가 열렸다. 이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으며 해외의 유명 선수들을 초대해 경기를 치렀고, 국제 경기로 급부상하면서 ‘스포츠클라이밍’이라는 단어가 탄생했다고 한다. 

시대를 거슬러 오면서 대부분 허물어 졌지만 성의 외관이 어느 정도 남아있다

 

마법의 성, 아르코 캐슬로 향하다   

마을의 문턱을 넘는데 이미 ‘합스부르크 왕가의 휴양지’, ‘세계적인 클라이밍 성지’라는 단어를 들었음에도 그냥 시골이다. 높지 않은 구옥이 즐비하고 사방은 온통 숲과 암벽뿐이다. ‘내가 기대를 많이 했나’하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때 마을을 호위하는 병풍처럼 뒤편에 우뚝 선 봉우리 하나가 보였다. 마을과 대비되는 비현실적인 봉우리 위에 중세 유럽의 성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마을 한 편에 봉우리가 있다니!”, “산봉우리 꼭대기에 성이 있다니!”

이 두 번의 감탄으로 이미 아르코는 방문객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마을로 들어선 버스가 광장을 돌아서 호텔로 향하고 있었지만, 눈은 계속 창밖으로 흐르는 성에 고정돼 있었다. ‘내일 반드시 저 성에 올라봐야지.’ 아무런 정보도 없이 다다른 마을에서 자연스레 뚜렷한 목적이 생겼다. 

성당 옆에는 17세기 이탈리아 양식으로 지어진 분수대가 마을의 쉼터 역할을 한다

 

아르코 성(Arco castle)은 중세 시대에 최초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다. 남아있는 정확한 기록은 없다. 이후 합스부르크 가문의 손을 거쳐 이 지역 백작의 재산으로 관리됐다. 실제로 어떤 용도로 사용됐는지도 알려지지 않는다. 이 아름다운 성이 기록조차 모호하다는 건 슬픈 일이다. 정확한 기록은 1703년부터다. 당시 프랑스군이 이곳을 점령했을 때, 일부가 부서지면서 오랜 시간 폐허로 남게 됐다고 한다. 아픈 기억이지만 역사가 남아 있다는 건 다행이다. 1986년 정부의 관리가 시작되었고 내부 주요한 유적을 비롯해 중세 기사와 궁녀들을 묘사한 프레스코 벽화 등의 복원이 이루어졌다. 관광지로 요건이 맞지 않아서인지 성의 외형을 복원하지 않은 건 아쉽다.

아르코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전형적인 이탈리아 시골 마을의 정취가 느껴진다

백번 카메라에 못 담을 환상적인 풍경

날이 밝기가 무섭게 지도를 챙겨서 아르코 성으로 향했다. 아기자기한 골목을 몇 개 지나니 곧바로 산길로 접어든다. 마을이 정말 작기는 작다. 아르코 캐슬이라는 그림으로 된 이정표가 정말 동화 속 풍경을 묘사한 것처럼 신비롭다. 이곳에 오지 않으면 절대 모를 그림이다. 1시간 남짓 걸었을까, 오르막 끄트머리에 성의 단면이 나타났다. 하늘이 열리면서 환상적일 줄 알았는데, 이 대목에선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정상에 올랐는데 시시하면 어쩌지?’

마을 중심과 외곽을 나누는 강을 사이에 두고 아르코 성이 동화의 풍경처럼 보인다

 

하지만 기우였다. 성곽을 따라 이어지는 정상에 다다르니 사방이 내 발밑이다. ‘우와!’라는 탄성보다는 ‘꺄!!’라는 외마디 비명이 더 어울렸다. 외국인들은 저마다 “Unbelievable!”을 연발했다. 이건 긴 설명보다 사진으로 보여주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고 열심히 찍었다. 사실 사진도 실물의 10%도 담지 못한다. 아르코의 현장감과 사방이 트인 개방감을 어찌 사진으로 표현할까. 그저 묵묵하게 셔터를 눌렀다. 

현재 호텔과 회의 장소로 사용되는 과거 아르코 휴양지의 풍경

 

아르코 성은 마을로 향해 세워져 있고 마을 뒤편으로 다시 높은 봉우리가 품고 있다. 그 뒤로는 내륙의 바다로 불리는 가르다 호수가 시작된다. 눈에 가리는 것 하나 없어 이탈리아 산맥의 정기를 한 몸으로 받는 기분이다. 시원한 바람이 쉴새 없이 불어 땀도 금방 말랐다. 

성의 반대쪽에는 아르코 산이 다시 이탈리아 북부 산맥으로 이어진다. 이 산맥을 따라 한참을 향하면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을 것이다. 그 오랜 시절 첩첩산중을 타고 넘어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를 오가며 휴양을 즐겼을 합스부르크 왕족이 부럽다. 

관공서가 밀집한 곳은 반듯한 건물이 촘촘하게 이어져 있다

마을로 내려오니 이제야 광장 중앙에 성모 승천 대성당(Collegiate Church of the Assumption)이 눈에 들어온다. 17세기에 지어진 이 성당은 사제들의 공간으로 쓰이며 가톨릭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 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입구의 성모상과 내부의 조각들이 소박하고 아름답다. 규모는 작아도 이곳은 조각가 가브리엘 카글리아리 다 베로나와 도메니코 로시, 펠리체 브루사소르지 등이 조각하고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시골 마을이라고 하지만 좁은 골목, 작은 건물 하나도 허투루 만든 것이 없다. 마을과 그 옆을 지나는 강, 아르코 성을 함께 사진에 담으니 진짜 동화에 들어갈 그림이 됐다. 이 마을에서 찍는 사진은 카메라가 아닌 마음에 담는 기분이 들었다. 

<더 자세한 내용-2020년 8월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