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_Jordan_JERASH

 

JERASH

예수의 역사가 남은, 제라시

 

요르단이 낯선 나라인 건 맞지만 신기하게도 요르단은 매년 수많은 한국인이 찾는 나라였다. 해외여행 자유화가 생긴 1989년부터 일본이나 미국, 서유럽만큼이나 요르단은 인기였다. 믿지 못하겠지만 바로 ‘성지순례’ 때문이다. 

글과 사진 이두용 트래블 인플루언서

 

제라시 유적은 거대한 돌기둥과 조각상, 건물이 많아서 시간을 두고 보는 걸 추천한다.

 

1990년대에는 TV 프로그램 중간에 유명 여행사마다 자신들의 성지순례 프로그램을 소개하며 모객하기도 했는데, 이때 이스라엘과 함께 반드시 포함하는 나라가 요르단이었다. 여전히 한국에서 요르단이라는 나라는 여행지로 생소하지만, 그때 역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나라와 도시들을 그저 ‘성경에 나오는 지역’이란 이유로 신자(信者)가 되어 패키지로 여행했다. 재밌는 건 매년 수천에서 수만 명의 한국인이 요르단에 방문하지만 10여 년 전까지 나라 안에 한국 음식점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평균 나이 40~60대인 성지순례자의 가장 큰 어려움이 ‘음식이 입에 안 맞아서’였다고.

 

길을 걸으며 타임머신이 있다면 제라시가 번성했던 그때로 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도 성경의 유적은 여럿이지만 굵직한 인물에 얽힌 지역은 따로 있다. 먼저 암만에서 북쪽으로 48km 떨어져 있는 제라시(Jerash)다. 암만이 지도에서 서북쪽에 위치해 있는데, 이보다 한참이나 위에 있어 시리아 국경과 인접해 있다. 이곳은 성경에 거라사(Gerasa)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예수가 이 지역을 지날 때 귀신 들린 자가 나타났는데, 그 귀신을 쫓아내 치료했다는 기록이다. 유적지에 들어서면 양쪽으로 늘어선 신전의 기둥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대리석으로 정교하게 깎아 세운 건축물들이 이탈리아 로마의 포로로마노나 남부의 폼페이 유적을 떠올리게 한다. 덕분에 제라시를 ‘중동의 폼페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다. 

 

제라시는 보석과 비단, 상아로 유명했던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이곳은 로마제국의 동방거점 도시였지만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 유적이 혼재한다. 종교와 민족, 문화의 융화는 요르단 문화와 유적지의 특징이기도 하다. 동서의 문화교역이 활발하게 이뤄지던 시기, 육로를 따라 이곳에 온 사람들은 각자의 문화와 예술혼을 요르단 곳곳에 남겼다. 제라시 유적은 1806년 독일인에게 발견된 이후 190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발굴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현재 약 20%만 발굴이 이뤄졌다고 하니 전체규모는 상상조차 안 된다. 요르단 유적이 대단한 건 최대 명소인 페트라와 와디럼에서부터 전국에 산재해 있는 기원전부터 근대까지의 유적 중 발굴하지 않은 게 더 많다는 것이다. 최소의 발굴만으로도 국가 수입의 근간을 관광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세계적인 역사학자와 발굴팀이 곳곳에서 세계사의 신비를 찾아내고 있다고 하니 다음이 기대된다. 

 

요즘 시대로 비교해도 석조 건물로는 거대한 유적이 많아서 걸음마다 놀라웠다

 

제라시의 대표 유적으로는 AD 129년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지은 개선문과 주피터신전, 아르테미스신전, 1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던 전차경기장 히퍼드롬, 5000명이 한 번에 공연을 관람했던 원형 야외극장, 거대한 목욕탕, 시장터, 타원형 광장, 화려한 코린트식 대리석 돌기둥을 양쪽으로 세워놓은 열주(列柱)거리 등이 있다. 유적으로 유추해보면 이곳이 보석과 비단, 상아 등의 판매가 활발하게 이뤄지던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였다는 걸 알 수 있다. 넓은 유적지 곳곳에 남아 있는 흔적이 번성했던 당시 모습을 대변해준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제라시는 로마 제국의 멸망과 대지진으로 인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폼페이와 다시 오버랩 되는 부분이다. 

 

MOUNT NEBO

모세가 올라선 언덕, 느보산

사해와 마인 온천까지 봤다면 요르단 여정을 제법 챙긴 편이다. 여기에 다시 성경의 역사적 명소를 추가하고 싶다면 가까운 거리에 느보산(Mount Nebo, 817m) 성지를 추천한다. 느보산은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모세가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탈출해 40년간 광야 생활을 마치고 마지막 설교를 했다는 곳이다. 느보(Nebo)는 ‘높은 곳’을 의미하는 아랍어 니부(Nībū) 혹은 바빌론의 신 나부(Nabu)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느보산으로 향하는 길 만난 풍광은 영화에서 봤음직 한 묘한 하늘과 벌판의 연속이었다

 

모세는 홍해 물길을 갈라서 건너고, 사막에서 식량을 구하는 등 여러 기적을 행하면서 백성을 이끌었지만, 결국 희망하던 땅인 가나안을 밟지 못하고 이곳에서 사망한다. 가나안은 성경에서 ‘내가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에게 말하기를 ‘내가 너의 자손에게 줄 것이다’라고 야훼가 약속한 땅이었다. 하지만 ‘너의 눈으로 보도록은 하였지만 너는 그곳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기록한 것처럼 모세는 멀리서 바라만 보고 죽을 때까지 들어가지는 못했다. 먼 발치인 느보산 정상에서 그리워만 했다. 느보산 성지에 발을 디디면 가장 먼저 요한 바오로2세 교황의 방문 기념 조형물이 반긴다. 2000년에 성지순례를 나섰던 요한 바오로2세가 이곳을 방문해 비잔틴성당 옆에 올리브 나무를 심고, 방문 기념 조형물을 세웠다고 한다. 1933년에는 느보산의 정상 시야가(Siyagha)에서 비잔틴교회와 수도원의 유적이 발견되었다. 시야가는 모세가 가나안 땅을 바라보았다는 봉우리로 전해지는데 실제로도 가나안땅을 바라보기에 가장 전망이 좋다.

 

언덕 위로 올라가면 이곳 유적이 발견된 자리에 모세기념교회가 세워져 있다

 

시야가 유적은 발견된 1933년부터 1976년에 걸쳐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있는 프란체스코회 성서연구소가 발굴했고, 많은 건축물을 찾아 복원했다. 모세의 죽음을 기념해 4세기에 세운 소성당을 비롯해 제의방과 세례당, 장례당을 두루 갖춘 대성당이 발굴되었다. 이 대성당은 5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제의방에서는 시골 풍경과 사냥하는 모습을 그린 모자이크가 발굴되기도 했다. 이 모자이크는 531년에 제작되었다는 기록이 함께 발견되었다. 현재는 이 유적에 모세기념교회를 지어 오롯하게 보존하면서 관람할 수 있도록 시설을 유지하고 있다. 

교회 앞 전망대에 서면 여리고 광야가 펼쳐지고, 멀리 사해도 볼 수 있고, 날씨가 맑은 날에는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감람산까지도 볼 수 있다고 한다. 감람산은 예수가 십자가에 달렸던 겟세마네 동산이 있었던 산으로 알려진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프란체스코회 성서연구소가 세운 느보산의 모세 기념비

 

정원 위에는 커다란 지팡이 십자가가 서 있다. 모세의 지팡이로 불리는데, 이탈리아 피렌체의 예술가 지오바니 판토니(Giovanni Fantoni)의 작품 ‘놋뱀 기념물(the Brazen Serpent Monument)’이다. 모세가 만들었다는 놋뱀과 예수가 매달린 십자가의 형상을 조합한 것이라고 한다. 모세의 놋뱀은 성경에서 야훼의 지시에 따라 만든 것이다. 

성경을 모른다고 해도 시야가 탁 트인 언덕에 올라 국경 너머의 이스라엘 땅을 관망하며 쉬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요르단을 여행하다 보면 이렇게 멀리까지 조망할 수 있는 곳이 잘 없기도 하다. 

 

<더 자세한 내용-2020년 10월호 참조>